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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30 14:14

예수님은 세상의 빛-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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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세상의 빛-1                          요 1: 1-14, 사 5: 20-25

시작하는 말

    어려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밤에 변소로 가는 것이었다. 그 당시 변소는 마당 한 쪽 돼지우리 옆에 있었다. 울타리 있는 집 마당에서 무슨 일이 있으련만 어두운 밤에 문을 열고 변소에 갔다 오는 것은 도깨비가 와서 뒷덜미를 잡을 것만 같아서 그렇게도 싫었다.
    나는 동경 신학교 기숙사에 살았을 때 미국 폭격기가 침입 시 불 단속을 하는 책임을 맡은 일이 있었다. 하로는 기숙사 회의를 하는데 공습경보가 울렸다. 나는 급히 방 밖 복도 저쪽 끝에 있는 스위치를 끄고 방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캄캄해지니 나는 방향감각을 잃었다. 급히 회합하던 방으로 들어오려고 하다가 문설주에 이마를 찌어서 눈썹 있는데서 피가 터져 혼란을 일으킨 일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빛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했었다.
    요한 복음서는 그 서두에서 예수님을 빛이라고 선언을 한다. 어둠을 제거하고 모두 밝은 세상에서 살게 하려고 오신 빛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마태복음서에 있는 별을 따라 아기 예수를 찾아온 동방박사의 이야기가 새삼스러운 의미를 준다. 온 인류는 다 이 빛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누가 복음서에는 밤하늘에 천군 천사가 나타나셔서 새날을 불러오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려주었다. 그것도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목자들에게 알려주셨다. 그러기에 크리스마스 메세지는 어둠 속에 사는 자들에게 전해지는 기쁨 소식이다.

1. 어둠의 세게

    예수님 오셨을 때 세계는 어둠의 장막에 뒤덮여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지중해 연변은 로마 제국의 폭정 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유대 민족은 이중의 무거운 멍에를 메고 살았다. 간 데마다 듣는 로마 구변의 말발굽소리는 물론 율법의 일 점 일획도 범해서는 아니 된다는 율법학자들의 준엄한 목소리가 저들의 마음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법은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까지 제약했다.
    안식일에는 2 천 보 이상 걸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에서 시작해서 구걸을 하는 사람의 손에 무엇을 놓아주어도 안되고, 병을 고쳐도 되지 않고, 심지어 부러진 다리를 바로  잡아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결법에는 밖에서 들어올 때에 발을 씻는 법, 음식 먹을 때 팔꿈치까지 손을 씻는 법, 쪽발 가진 동물의 고기는 먹어서는 안 된다는 법, 이방인과 접촉해서는 아니 될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잔치가 벌어진 동리에서는 음식을 먹어서는 아니 된다는 등 그 세법이 한이 없었다.
    이 법들은 나날이 일하는 가난한 자들은 도저히 섬길 수가 없었다. 이 법을 지키는 사람만이 아부라함의 자손이요 이 법을 범하는 자는 하느님의 저주를 받을 죄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땅에 붙은 자들의 삶이란 캄캄 칠야에서 허덕이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법을 지킬 수 있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맑고 개인 것이 아니다. 예수님 앞에 엎드려 구원의 길을 물은 부자 청년을 보라.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재생의 길을 찾은 니고데모를 보라. 바리새파 사람 중의 바리새파 사람이라고 자처한 바울이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다”라고 부르짖은 것을 보라. 그들의 마음 눈은 율법으로 가리워 져서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생명의 소중한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웃과 격리된 저들의 심정에 평화가 깃 드릴 수 없었다.
    로마와 손을 잡고 권력을 누리는 대 사제들도 나날이 불안 속에서 살고 있었다. 언제 로마 총독이 대사제 직을 다른 사감에게 줄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암흑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2. 빛으로 오신 예수님

    이런 세상에 예수님은 빛으로 오셨다. 이 빛은 어떤 말로 가르치는 교훈이 아니다.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철학도 아니다. 그럴듯한 종교인의 설교도 아니다. 이 빛은 몸이 되어 오셨다. 몸으로 사는 삶으로 나타나자 온 세상은 밝아져서 무엇이 생명의 길인지, 무엇이 죽음의 길인지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것이 빛의 특징이다. 빛이 비치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된다. 선과 악이 들어 나는 심판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우리에게 삶의 결단을 촉구한다. 삶의 길로 갈 것인지 죽음의 길로 갈 것인 지를 결단을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처음 입을 열어 외치신 것이 바로 그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죽음의 길로 가는 자들아.
    이제 돌아서서 생명의 길로 가라.“

이렇게 선포하신 예수님은 죄인이라고 천대를 받아 신음하면서 사는
갈릴리 인들을 찾으셨다. 그 곳에 가셔서 소경을 보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시고,나병자를 깨끗이 하시고, 악령을 추방하셨다. 그리고 죄인과 세리와 더불어 떡과 포도주를 나누셨다.
    이와 같은 그의 삶은 경천동지하는 놀라운 변화를 초래했다. 절망 가운데 살던 무리들이 늠름하게 소생하여 하느님 나라 시민이 된 것이다. 기쁨에 차 넘치는 하느님 나라의 잔치가 버러진 것이다. 사랑의 길만이 참으로 사는 길이라는 것이 명백해 진 것이다.
나누는 길, 용서하는 길, 섬기는 길만이 참 생명의 길이라는 것이 실증 된 것이다.
    반면에 탐욕에 사로 잡혀서 재물을 독점하려는 길, 자기만 의롭다고 하면서 남을 정죄하는 길, 힘이 진리라고 믿어 남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길이란  죽음의 길이라는 것도 명백해 졌다. 무엇이 선이요 무엇이 악인지가 확실해 졌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모두 돌아서서 생명의 길로 가라는 것이다.

3. 거부하는 자와 받아드린 자.

    요한복음서는  “이 빛이 세상에 비쳤으나 세상은 그 빛을 받아드리지 않았다“ 라고 선언을 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그러나 그 빛을 받아드린 자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라고 말한다. 이것이 빛과 어둠을 가르는 심판이기도 하다.
    이 빛을 거부한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자기들만이 의롭다고 하면서 남을 정죄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었다. 물욕에 사로잡혀서 생명에 둔감한 부자들이었다. 로마와 손을 잡고 권력을 행사하는 대사제의 무리들이었다.  모든 일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독선자들이었다. 그들은 이 생명의 빛을 거부했다.
    예수님을 맞아드린 자들은 누구인가? 나날이 먹을 것이 없어서 허덕이는 자들, 각가지 병마들에 시달려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자들, 사회에서 죄인 취급을 받아 서러움으로 나날을 보내는 세리와 창녀들, 어디를 보아도 출구가 없어서 하늘을 향해서 호소하는 무리들이다. 서로 나누고 용서하고 섬기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무리들이다. 저들만이 예수님이 참 빛이라는 것을 알고 그리로 모여든다. 기쁨에 차 넘치는 하늘나라 잔치가 저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하느님 나라를 간절히 기다린 자들만이 이 빛으로 왔다.

맺는 말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떠한가? 무엇이 선이요 무엇이 악인지를 밝히 보는가? 우리들의 가정에 기쁨이 차 넘치고 사회에 정의가 강처럼 흐르고 억눌린 자들의 눈에서 눈물이 사라졌는가? 평화의 동산에서 하느님께 감사찬송을 올리는가? 이 세상은 생명의 빛을 받아드렸는가?  오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보면 나로 라고 하는 기득권자들은 대개 다 예나 다름없이 이 빛에 등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오늘도 이 빛을 받아드리는 자들이 있다. 하느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는 자들이 있다. 우리도 그런 특권을 받은 자들인가? 자기중심적인, 물질과 권력 지향적인 삶에서 돌아서서 서로 나누고 용서하고 섬기는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맛보는가?  우리는 정말 예수님을 생명의 빛으로 받아드렸는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했다. 서로 위하고 아끼는 하느님 나라를 갈구하라고 했다. 내 가정, 내 교회, 내가 사는 사회에서 하느님의 뜻이 강처럼 흐르게 하라고 했다. 목마른 사슴이의 시내 물을 갈구하듯이 우리는 이 하느님 나라를 구하는가? 그리면 우리는 빛의 나라의 시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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