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222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창세기15:1-6, (16:1-2,15, 17:4-7,15-19, 18:10-14, 21:1-2) 



성경이야기의 본뜻을 찾는 질문
1. 아브라함 부부가 자식이 없을 때 대안으로 생각한 길은?
2. 아브라함이“자식”이라고 할 때, 어떤 자식을 생각했을까? 이 성경 이야기에서 천사는 어떤 "자식"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3. 이런 아들이 태어날 것을 약속하실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과도“언약을 세운다는 말로 시작했는데, 그 뜻은? 또 이런 아들을 낳기 이전에 먼저 부모가 될 저들의 이름을 고쳐주셨다는 뜻은?
4. 아이를 낳을 수 없이 이미 늙었을 때에, 이런 아들을 약속했다는 뜻은? 
5.“다음해 이맘때에”아들이 있게 된다는 말씀은 저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뜻일까?
6. 아브라함이 체념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밖으로 나가 하늘을 쳐다보라”고 하셨다는데, 그 뜻은?
7. 자식이“먼지처럼,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고 했는데 어떤 자식이 그렇게 많아진다는 것일까?
8) 엘리에젤(종)이나 이스마엘(몸종의 자식)을 언약상속자로 삼았어도 되지 않았을까?




자식이 없어 종을 상속자로

아브라함은 이미 부자가 되어 있었고(창13:2), 그가 거느린 사병을 출전시켜 다섯 왕의 동맹군을 칠 정도로 힘도 있었습니다.(창4:1-16) 그러나 그를 어둡게 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상속자가 될 자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는 음성을 들었을 때, “주 나의 하나님, 주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식이라고는 다마스쿠스 녀석 엘리에셀 뿐입니다. 주께서 저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 이제, 저의 집에 있는 이 종이 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라고(창15:1-3) 항의하듯 말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식에 대해서는 이미 단념하고, 상속자 문제는 양자로 대처한다는 결론을 짓고 있으면서도, 아들이 없는 데 대한 서운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일이 있기 이전에, 하나님이 “네 눈이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준다.”라고(창13:15) 하시면서“내가 너의 자손을, 땅의 먼지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누구든지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의 자손을 셀 수 있을 것이다.”라고(창13:16) 하셨는데도, 아직 자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풍습대로 엘리에셀이라는 종을 상속자로 양자 삼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 대하여“그 아이는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너의 자손이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적자가 없어 서자를 자식으로

그 후 그가 아흔 아홉이 되고, 부인이 여든 아홉이 될 때까지도 아내의 몸종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을 뿐, 부인에게서는 아들이 없었답니다. 이때 다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부인이 아들을 낳도록 축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나이를 생각하여 혼자 웃으며, 아내의 몸종 하갈에게서 얻은 아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면서 살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이 아이를 자기 대를 이을 아들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시“아니다. 너의 아내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라고 하셨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처음 종을 상속자로 삼지 말라는 말씀을 하실 때에 하나님이“그 아이는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너(아브라함)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고(창15:4) 되어 있는데, 여기“너의 몸에서”라는 말을 아브라함과 그의 부인이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창세기 16장 2절에 보면, 부인이 아닌 다른 여인(몸종)에서라도 자식이 있으면 그(남편)의 몸에서 난 것으로 치는 관례에 따라 부부가 합의 하고, 아브라함이 부인의 몸종과 동침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관례에 의해서 부인의 몸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이 태어났을 때“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네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는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생각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런 것이 아니었답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너의 몸에서 낳을 아들”이라는 말은“너와 네 아내 사라에게서 난 아들”이라는 뜻이라고(창17장 15-16, 19, 18:10) 밝히고 있습니다. (남자만이 아니고, 부부를 한 몸으로 보는 혈통을 뜻한 것입니다. 이 성경이 쓰인 그 옛날 이미 자식에게는 남편의 혈만이 아니고 부인의 혈도 전해지는 것으로 되어 있는 셈입니다. 우리말에“아주머니”라는 말은“아기 주머니”의 줄인 말이라는 풀이가 있는데, 여자는 그저“주머니”같은 격이 아니고, 남편과 함께 한 몸을 이루어 한 혈통을 전승하는 동등한 인격으로 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재산 상속자, 대를 이을 상속자, 사명(언약) 상속자
이 이야기는 "상속자”또는“대를 이을 자”로서의“자식”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무엇을 이어받을 상속자이고, 어떤 대를 이을 상속자 인가? 하는 문제를 주제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재산 상속자나 혈통을 이을 자식보다는 복의 근원이 된다는 언약의 상속자로서의 자식 문제를 주제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생각할 때, 재산 상속자로서의 자식을, 그리고 혈통의 대를 이을 자로서의 자식을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관심은 재산이었고 혈통이었습니다. 처음 재산상속자 문제는 종을 양자로 삼는 노예제도에 따라 해결하려 했었고, 다음에 재산상속 및 혈통을 이을 자식 문제를 부인의 몸종제도에 따라 해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제도들은 다 과거의 전통과 관습을 따르는 길이었습니다. 옛 땅을 떠나기는 쉬우나 과거의 전통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된 습관을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어려움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휘말려 들어갔는지를 이 성경 이야기는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경 이야기를 이해함에 있어서 그가 있던 곳을 떠났어야 할 이유는 과거의 전통이나 관습을 따르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길을 가기 위함이었고, 이 길을 찾아감으로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식을 약속하실 때는 재산 상속자나  대를 이을 자라기보다는 하나님이 보여주실 길을 감으로 복의 근원이 되는 사명을 이어받을 자식을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런 아들을 약속하실 때, "나는 너와 언약을 세우고 약속한다. 너는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 내가 너와 세우는 언약은, 나와 너 사이에 맺는 언약일 뿐 아니라, 너의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도 대대로 세우는 언약이다.”라고 해서, 이 아들이 언약 상속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님이 그의 제자 디모데를“아들"이라고(딤전 1:2) 한 것도 재산 상속자나 혈통을 이을 자식이 아니고, “믿음의 아들”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사상을 이어받을 자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도, 재산 상속자나 대를 이을 자식이라는 뜻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언약 상속자이면서 언약을 실현시키는 "구세주"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런“아들”은 아무렇게 태어날 수도 없고, 아무나 이런 아들을 낳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재산 상속자로서의 아들은 전통적인 제도에 의해서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이고, 대를 이을 아들도 나이가 젊으면 누구나 거의 낳을 수 있는 자식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을 아들은 어떤 제도나 젊은 생산력에 의해서 낳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조화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운이 다 소진된 다음에야 이런 아들이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부모가 있어야

이 이야기는 또 물욕이 있고 성욕이 있는 인간 누구나 재산 상속자나 혈통의 대를 이을 자를 낳는 부모는 될 수 있지만, 하늘이 맡긴 사명을 이어받을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부모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식을 낳기 어려운 것이기 이전에, 하늘의 사명을 받고 그렇게 사는 부모가 거의 없는 것입니다. 재산 상속자와 혈통을 이어받을 자로서의 자식을 가진 부모가 되면 그것으로 만족하게 되는 것이 세상인데, 이 성경 이야기에서 아브라함 부부는 그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모 없이 이런 자식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장차 이런 아들이 태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먼저 아브라함 부부가 이런 부모가 되도록 하셨다는 것인데, 이 사실을 저들의 이름을 바꿨다는 말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내가 너로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만들었으니, 이제부터는 너의 이름이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다. 너의 아내 사래를 이제 사래라고 하지 말고, 사라라고 하여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겠다. 내가 너의 아내에게 복을 주어서,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고...’”라고.(창17:5,15)

젊어서 가질 수 있는 재산 상속자로서의 자식, 또는 젊어서 낳을 수 있는 대를 이을 자로서의 자식의 필요성을 사람은 누구나 다 알고 산다고 봅니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노후에 이런 자식에 대한 기대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마련일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 많아지면서 또 하나의 다른 감정이 살아나는 경우가 드물지는 몰라도 있다고 봅니다. 곧 재산이나 혈통 이상의 것을 이어받을 자를 갈망하는 감정입니다. 이런 자식의 필요성은 늙어서 이미 늦은 때에야 깨달을 수 있지만, 낳을 수는 없다는 것 이전에, 자신이 그런 자식을 낳을 부모로 살아오지 못했다는 것도 동시에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이미 늦은 때에 이런 아들을 약속받았다고 한 것도 이런 깨달음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도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직 신의 개입이 있어야만 성취되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된 자의 미래와 화의 근원 된 자의 미래

화의 근원이 된 자들의 미래는 있어 보여도, 복의 근원이 되는 이들의 미래는 없어 보이는 것이 세상입니다. 재산 상속자와 대를 이을 자의 미래는 있어 보이지만 언약 상속자의 미래는 없어 보이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이었지만, 아브라함은 바로 사는 자의 미래, 언약 상속자의 미래가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자의 미래를 대대손손 영원한 것이 되도록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음성대로 사는 것이“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길”을 가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음성을 듣기 이전에는 “자식이(미래가) 없을 것이다”라는 단정에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미 늦은 때에도

아이 낳기 일 년 전에 있었던 일로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다음해 이맘때에, 내가 반드시 너를 다시 찾아오겠다. 그때에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사라는 월경마저 그쳐서, 아이를 낳을 나이가 지난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라는‘나는 기력이 다 쇠잔하였고, 나의 남편도 늙었는데, 어찌 나에게 그런 즐거움이 있으랴!’하고 속으로 웃으며 중얼거렸다. . .‘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 다음해 이맘때에, 내가 다시 너를 찾아오겠다. 그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창18:10-14)

잘못된 과거 전통과 관례대로 살아 온지 아브람이 99세, 부인 사래가 89세 되던 해에, 저들은 전통적인 방식에서 떠나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고, 이때 하나님은 저들의 이름을 고쳐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 후에 둘 사이에 이삭이 태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는 저들이 죽음을 더 가까이 둔 때, 곧 이미 늦은 때였습니다. 이들을“믿음의 조상”이라고 한 것은 이미 늦은 때에도 과거의 사람에서 떠나 미래의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어려서부터 굳어진 잘못된 습관 고치기가 힘들다는 뜻으로 “세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지만, 성경은 세살 적 버릇이 여든에라도 고쳐져야 한다고 할 정도로, 종전 관례와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거듭남을, 새 역사창조를, 요청합니다.

사람이 100세가 되고 90세가 되면 흔히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요? 죽어 묻힐 묏자리, 장례식 비용, 유산 분배 정도를 생각하기 쉬울 것이고, 죽어서 "천당" 갈 생각이나 하면 장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울 텐데, 성경은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한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새로운 미래를 탄생시키는 일입니다. “그가 웃다”라는 뜻인(창21:3) “이삭”을 낳았다는 말은 다음 대가 살 미래가 보다 나은 미래가 되게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실 그런 미래를 탄생시킨다는 뜻으로 보아서도 좋겠습니다.

사람은 일이 잘 안되면 정도를(바른 길) 버리고 영리하다는 편법에 의존하기가 쉽습니다. 때가 늦어지면 조급해서 더욱 그렇게 됩니다. 하갈의 몸에서 상속자를 보려던 것도 이런 편법이었다고 하겠습니다. 100세가 되고 90세가 되어 이미 늦은 때에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정도를 찾아가도록 하심으로 저들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신 것이겠습니다.

“다음해 이맘때에”

여기“다음해 이맘때에”하나님이 저들을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셨다는 말에 중요한 뜻이 있다고 봅니다. “사라에게 약속하신 것을 주께서 그대로 이루시니, 사라가 임신하였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때가 되니, 사라와 늙은 아브라함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는 말 대로(창21:1-2) “다음 해 이맘때”는 바로 해산의 때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라가 임신한 것은 언제였겠습니까? 그 전해가 아니었겠습니까? 일 년 전“내년 이맘때에”라는 말씀을 들은 그 순간부터 저들이 젊어졌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이미 늦은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없는 부부처럼 살지 않아야 하고, 자식이 없을 부부처럼 살아도 안 된다는 뜻일까? 이미 늦었으나, 자식이 있을 부부처럼, 그리고 이미 이런 자식의 부모가 된 자세로 일 년 전부터 살아왔던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믿음으로 사는 삶의 비결과 지혜와 힘이 있는 것이겠습니다. 오늘을 살되 목적이 달성된 다음해 이맘때의 자기 모습으로서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에서 오늘, 오늘에서 내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거꾸로 다음 해 이맘때라는 종점을 시발점으로 삼고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것이 믿음으로 산다는 뜻이겠습니다.

우리는 오늘을 살되 과거의 나로서 오늘을 살면서 늙어간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믿음으로 삶은 미래의 나로서 오늘을 사는 삶입니다. 믿음은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다음 해 이맘때 이루어질 그때의 모습으로 살 수 있게 하는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포자기했던 아브라함과 사라를 이렇게 살 수 있도록 해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 천사를 대접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손님 대접을 잘해서 복 받아 득남했다고 하여 흔히 이 이야기를 손님 접대를 강조하는 본문으로 삼습니다. 신약에도 “나그네 대접하기를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어떤 이들은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천사들을 대접했습니다.”는 말이 나옵니다.(히13:2) 그러나 이 이야기의 본뜻은 언약상속자의 부모가 되기 위하여 미래가 없어 보일 뿐 아니라 이미 늦은 때에도 하나님이 보여 주실 길을 가는 것이 어떤 길인지를 말하려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절망과 희망, 땅과 하늘의 만남

끝으로 이 성경 이야기가 담고 있는 중요한 뜻 하나를 더 찾아보기 위해서 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 대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네가 받을 보상이 크다."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하여 "저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주께서 저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라고 대꾸하는 대목에서 시작됩니다. 이 말은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나왔는데, 언약 상속자의 미래가 없어 보이는 데 대한 좌절감에서, 그리고 자신의 한계에 대한 절망에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에게 이런 언약 상속자의 미래가 있어야만 한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그렇게 살게 하려고 할 때의 장면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주께서 아브라함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셔서,‘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보아라.’”(창15:5)

절망을 극복하는 길은 그런 절망을 낳는 잘못된 세상만을 들여다 볼 때는 열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잘못된 세상에서 마음의 눈길을 돌려, 저 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들을 쳐다봄으로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화의 근원인 인간만을 보지 말고, 저들이 저지르는 일만을 보지 말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절망은 잘못된 현실만을 들여다봄으로 좁아진 마음의 문제인데, 밖으로 나가 하늘의 섭리로 눈길을 돌림으로 바로잡혀지는 마음에서 희망의 별빛을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잘못된 현실에는 언제나 절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절망은 영원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또 한편 밖으로 나가 쳐다볼 수 있는 하늘의 별빛도 언제나 있는 것처럼 희망도 영원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밖으로 나가라는 말은 현실을 등지라는(예를 들면 자살 등) 말이 아니고, 또 밖으로 나가서 별빛을 보라는 말은 현실은 보지 말라는(예를 들면 환상에 잡힘) 말이 아닙니다. 절망적인 현실만 보거나 희망의 별만 보지 않고, 절망적인 현실과 희망 둘을 다 보고, 현실에 희망이 들어오게 하는 것, 또는 현실이 희망을 받아드리게 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삶의 예술인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절망을 낳는 현실을 땅이고 음이라 한다면, 희망은 하늘이고 양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과 하늘이,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어 미래라는 자식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술인들은 이 영원한 절망과 영원한 희망의 조화를 찾는 이들이라 하겠습니다.

복의 근원의 성장과 화의 근원의 성장: 축복과 저주 

자손이“먼지처럼”또는“별처럼”많아진다는 말은 성경이“양적인 성장”을 축복하는 예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런 대목을 읽을 때 “별처럼 많아질 그의 자손이 어떤 자손이어야 할까?”하는 질문을 함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고(창12:2) 하신 대로, 복의 근원이 되는 자손이 별처럼 많아질 것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화의 근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는 것은 저주이지, 축복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재산 상속자나 대를 이을 자식의 성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언약 상속자의 성장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배가 되고, 어떤 것은 육십 배가 되고,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었다.(마13:8) 라고 하셔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성장을 바람직한 것으로 보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계속하시기를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거둬드릴 때가 될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게 내버려두어라. 거둘 때에, 먼저 가라지를 뽑아 단으로 묶어서 불에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 드릴 것이다.”라고(마13:24-30) 하셨답니다. 좋은 씨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성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축복이지, 잘못된 씨가 성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복의 근원이 아닌 화의 근원인 패거리의 성장도 축복으로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도 성전종교의“장엄한”성장을 축복으로 착각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성전을 떠날 때,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하고 감탄했답니다. 예수님께서는“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막 13:1-2)

예수님은 당시 성전 종교의 성장을 복의 근원의 성장으로 보지 않으시고, 화의 근원의 성장으로, 곧 저주로 보셨기에 그 파멸을 바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의 근원과 화의 근원을 바로 분별해 보여 주셨습니다. 이런 분별의 눈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의 근원인 교세는 예수님에게 신성 모독의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데“성공”합니다. 군중들이“십자가에 처형하라”는 데모에 이용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리석은 군중이 별처럼 많아지는 것 자체가 저주입니다. 진주의 값을 몰라보는 돼지 떼가 불어나고 돼지우리를 크게 늘여놓고“성장”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을 모독하는 짓입니다. 진주의 값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성장이, 물욕만을 아는“재산 상속자”나 동물적인 혈육 만에 의한 인구성장이 아니고,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언약 상속자의 성장이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종"과 "노예제도" 문제, "서자"와 "몸종제도" 문제

이 성경이야기는 언약상속자 문제를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가) "종"을 상속자로(양자로) 삼으려고 했다는 대목에서 (1)"노예제도" 문제와  (2)"종"의 문제가 곁들여졌고,

(나) "몸종"의 자식을("서자"를) 상속자로("적자"로?) 삼으려고 했다는 데서 (1) "몸종제도"("첩 제도) 문제와 (2) "서자"문제가 곁들여졌습니다.

여기 몸종제도 문제도 결국 (가)에 나온 "노예제도" 문제와 같은 것이고, "종"과 "서자"문제는 노예제도가 있는 사회에서 천대 받고 소외당한 계층의 사람들을, "변두리 인생들"을, 말하는데,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느냐? 는 문제가 곁들여진 것입니다. 여기서 종 엘리에젤이나 몸종의 자식인 "서자" 이스마엘을 언약상속자로 삼았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게 됩니다. (수 천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쉽게 이런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노예제도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던 당시로서는 쉽게 제기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종이나 서자를 언약 상속자가 아니라고 하신 것은 이들 개인을 부인하신 것이 아니고, 집단적인 노예제도와 몸종제도를 부인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종이고 서자이기 때문에 언약상속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이들을 낳은 노예제도를 부인하신 것입니다. 곧 엘리에셀을 언약상속자로 인정하시면, 철폐되어야할 노예제도를 인정하시는 결과가 되고, 서자 이스마엘을 언약상속자로 인정하시면, 역시 철폐되어야 할 몸종제도를 인정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언약 상속자가 되지는 못했으나, 몸종 하갈에게서 난“서자”이스마엘이 학대받아도 되는 것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축복해 주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다음 27. "어디서 와서 어디로?"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종 엘리에셀도 천대받는다는 것으로 되어 있지 않고, 그가 중요한 직책을 맡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31."기도" -며느리 감 선택기준 문제- 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들이 언약상속자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들을 차별하고 소외시키던 노예제도가 없어져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노예제도가 없어지고 종과 서자 등 "변두리 인생들도 언약상속자가 되고, 언약대상자가 되고, 역사의 주역을 맡게 되는 것은 창세기 족장이야기가 다 지난 다음, 출애굽기에 나오는 히브리인 노예탈출 이야기에 가서야 언급되기 시작합니다./

Title
  1. 어떻게 생각되십니까? -목자들의 교회-

    Date2016.06.21 By이재형 Reply0 Views408
    Read More
  2. 주일 성경본문 해설 2015-10-11 (감사 주일) 오순절 후 20 주일 B

    Date2015.11.13 By이재형 Reply0 Views247
    Read More
  3. 성경본문 해설 2015/10/4 오순절 후 제 19 주일 (B)

    Date2015.11.12 By이재형 Reply0 Views238
    Read More
  4. 주일 성경본문 해설 2015-9-27 오순절 후 제 18 B

    Date2015.11.12 By이재형 Reply0 Views226
    Read More
  5. 주일 성격본문 해설 2015-9-20 오순절 제 17 주일 B

    Date2015.09.18 By이재형 Reply0 Views291
    Read More
  6. 주일 성경 본문 해설 2015-09-13 오순절 후 16주일 B

    Date2015.09.09 By이재형 Reply0 Views284
    Read More
  7. 주일 성경본문 해설 2015-09-06 오순절 후 제15주일 B

    Date2015.08.31 By이재형 Reply0 Views346
    Read More
  8. 선악과의 뜻 (2)

    Date2015.08.31 By이재형 Reply0 Views394
    Read More
  9. 새 원고에 앞서서 (1) - “하나님”? “하느님”? “한님교회”? (1)

    Date2015.08.26 By관리자 Reply0 Views365
    Read More
  10. 성서읽기 1

    Date2015.07.19 By관리자 Reply0 Views326
    Read More
  11. 선악과의 뜻 1

    Date2015.07.19 By관리자 Reply0 Views577
    Read More
  12. 이재형 목사의 성서강좌 재개

    Date2015.07.19 By관리자 Reply0 Views378
    Read More
  13. 머리말

    Date2011.02.13 By이재형 Reply0 Views2382
    Read More
  14. 26. "자식" -이미 늦은 때에-

    Date2011.02.13 By이재형 Reply0 Views2226
    Read More
  15. 43. 노예탈출 성공 후의 역경과 그 극복

    Date2011.02.13 By이재형 Reply0 Views2304
    Read More
  16. 새 공동체 형성의 이상 -노예근성과 주체교육

    Date2011.02.13 By 이재형 Reply0 Views2372
    Read More
  17. 노예의 탈출과 재앙이야기 -모세의 체험(5)

    Date2011.02.13 By이재형 Reply0 Views2416
    Read More
  18. 캐나다연합교회와 캘거리한인연합교회

    Date2010.11.29 By이재형 Reply0 Views5150
    Read More
  19. “떠나라: -혼돈에서 질서로-”

    Date2010.11.27 By이재형 Reply0 Views2550
    Read More
  20. 48. 제자 교회 -이민자와 신앙(교회)생활-

    Date2008.11.07 By이재형 Reply0 Views2443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