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이전에 ‘가족’임을 되새겨야

by 운영자 posted Jan 2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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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이전에 ‘가족’임을 되새겨야

http://www.hani.co.kr/arti/happyvil/happyvil_news04/97573.html

▲ 설이나 추석 등 명절 때 ??다른 종교를 가진 가족들이 모이다 보면 차례 문제를 놓고 의견차를 보이기도 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다른 종교 가족간 명절 나기
설 연휴가 3일 앞으로 다가왔다. 가족들이 모처럼 만에 함께 하는 명절에 부모·자식, 형제·자매간 다른 종교적 문화로 인해 갈등을 빚는 집이 적지 않다. 불과 100여년 만에 서구 종교문화가 안방 깊숙이 들어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다종교 사회가 돼 가족간 이종교가 많아졌다. 어찌 보면 한국만의 특수성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명절 때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전통은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모처럼 함께 한 가족 중 자신의 종교만을 내세우는 이가 있으면 가족 간 반목을 야기하거나 자칫 서먹해질 수 있다.

1년 만에 만난 가족들의 차례상 앞 갈등

서울에 사는 직장인 정명진(42)씨는 즐겁기만 하던 고향길이 몇 년 전부터 부담스러워졌다. 5년 전부터 개신교 교회에 나가게 된 한 누나는 명절 때면 연로한 어머니가 차례상을 차리는 것에 대해 “귀신에게 무슨 제사냐”며 싫은 소리를 했다. 정씨는 무종교인이고, 그의 아내는 1년에 몇 차례가량 절에 나가는 불자다. 그런데 누나는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늘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고,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고 천국 간다”며 전도에 적극적이다. 수십 년 전부터 교회에 나갔던 다른 형제·자매들은 명절날이면 가급적 종교보다는 공통의 얘기를 화제 삼아 덕담을 나누지만, 그 누나는 달랐다. 그 누나의 말을 듣다 못한 정씨가 반론을 펴게 되면 그 때부터 가족의 분위기는 썰렁해지기 시작한다. 정씨는 “1년 만에 한 두 번 얼굴만 봐도 좋기만 하던 누나로부터 매번 자신의 문화와 종교를 강요당하다 보니, 명절 때가 돼도 마주 대하는 게 부담스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종교만 내세우면 분위기 서먹해지기 십상
다른 종교 비방 삼가고 덕담 나누며 서로 이해해야


경기도 안양에서 교회에 다니는 직장인 박지환(45)씨의 형제 자매들도 개신교, 가톨릭, 불교, 무종교로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종교 때문에 갈등을 빚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머니는 종교가 다른 자식들을 배려한 때문인지 새벽 일찍 혼자서 차례상을 차렸다가 치우는 경우가 많고, 차례상을 본 가족들도 대부분이 차례상을 고유한 전통으로 인정하는 편이다. 또 “자기도 모르게 다른 종교나 성직자에 대한 비방이 입 밖에 나올 때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경우도 있어, 가족들이 함께 모여 대화할 때는 가급적 다른 종교에 대한 비방은 삼가고 덕담을 해주려 애쓴다”고 했다.

종교인이 안내하는 기쁜 명절 맞이

◇ 불교단체 정토회 박석동 기획실장= 명절 때 왜 가족들이 만나는가. 자기 종교를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종교 때문에 모인 게 아니고, 단지 가족이기에 모인다는 것만 분명히 알아도 종교로 인해 갈등을 빚지는 않는다. 갈등이란 ‘내가 옳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만 옳다’는 아집을 내려놓을 때 진정한 가족으로 만날 수 있다. 불교가 관용의 종교라고 하면서도 의외로 더 아집이 심한 경우에 많다. 이에 대해 불자들이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부처님이 법당 안에만 있는 게 아니고, 십자가를 단 그리스도인이나 무종교인으로 있다고 여긴다면, 다른 종교나 문화의 차이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 서울 신수동 성당 주임 김민수 신부= 가톨릭은 우리 나라에 들어온 초기에 제사를 반대해 많은 박해를 받았지만 오래 전부터 조상 제사를 허용한다. 성묘도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가족과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선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으로 대해선 곤란하다. 자기 종교만 생각하는 근본주의적 입장보다는 다른 종교도 이해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 서울 천호동교회 홍순원 목사= 개신교인들이 갈등을 빚는 것은 대부분 제사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제사를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조상묘에 절도 하게 한다. 조상을 주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예배로 승화시키는 게 제사의 참뜻으로 본다. 우상 숭배란 제사와 같은 전통 문화가 아니라 ‘국가 이데올로기’나 ‘천황 숭배’같은 게 아닌가. 구약성서에서도 제사장이 제사를 지내고 제사 음식을 먹는다. 다른 종교인들을 모독하는 것은 종교인이기 이전에 ‘함께 하는’ 가족의 자세가 아니다. 가족과 이웃과 평화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가장 성경적인 삶이다.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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