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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4 17:04

종을 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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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왈 "한국사회는 이 소설을 꼭 읽어야 한다" 
[서평]우리의 교육현장을 다룬 장편소설 <종을 훔치다>
김현자 (ananhj) 기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75611&PAGE_CD=N0000&BLCK_CD=N0000&CMPT_CD=M0011

종은 승명학원의 상징이었고, 이사장에게 각별한 것이었다. 이사장이 고향을 등지고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삼팔선을 넘을 때, 모든 것 다 버리고 오로지 그 종만을 품에 안고 왔다고 했다. 북에서 만석꾼 지내며 조부가 일제 관리 노릇까지 했다던 이사장네는 삼대에 걸친 독실한 기독교 집안으로 동네에 교회를 세우고 적잖은 돈을 대어 왔다고 했다. 해방이 되고서 북쪽에 들어선 김일성 정권이 친일 지주 세력이라며 토지를 압류하고, 교회까지 탄압하자 야밤에 교회 종을 떼어 남쪽으로 탈출했다는 것이다.

그 종 안쪽에는 이사장네가 세웠다는 교회 이름인 '반석'과 교회를 봉헌한 이사장의 부친 이름이 적혀 있다고 했다. 적어도 이사장에게 그 종은 빼앗긴 가문의 영화를 증명하는 것이며 자신의 집안이 겪은 고초와 핍박을 증거하는 가보나 다름없었다. 그 종이 사라진 것이다.

- <종을 훔치다> 중에서
 
 
▲ <종을 훔치다>겉그림 
ⓒ 검둥소  교육현장


이시백의 장편소설 <종을 훔치다>(검둥소 펴냄)에서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승일종합고등학교(승명학원, 이하 승일종고)는 미션스쿨로 매일 아침 여덟 시면 어김없이 종이 울리곤 했다. 운동장에서 열리는 전체 예배 때도 울렸다. 종은 작지만 종루에 마이크 시설까지 한지라 종소리는 쩌렁쩌렁 울렸다.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민원이 이따금씩 들어오기도 했다.

이사장이 학교를 인수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학교 가장 높은 곳에 종을 매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도 한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저녁으로 두 차례씩 대추나무로 깎아 만든 망치로 종을 칠 만큼 중요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이런 종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 그리고 종루 계단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정미가 훔쳤다는 것이 밝혀진다.

"내가 그 종을 왜 훔쳤는지 아세요? …그딴 종을 아무리 울리면 뭐해요. 전 이제 하나님을 믿지 않아요.… 그 종은 다시는 울리지 못할 거에요" (소설 속 정미)

정미는 학교 인근의 기지촌 '양갈보'의 딸로 혼혈아였다. 이제는 흥행이 사라진 기지촌인지라 정미네는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아이들 대부분이 정미처럼 불우했다. 외모가 특이해 아이들의 놀림과 따돌림을 받던 정미가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된 것은 연극 덕분이었다. 정미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이런 정미에게 '대학 4년 전액 장학금 지원'이라는 특별전형 입학자격이 주어진다. 정미가 주연인 연극이 고교연극제에서 대상을 차지했고, 정미가 특별상을 받았기 때문. 하지만 치졸하고 간악한 교장의 '학교장 추천서' 거부로 정미의 대학 입학은 꺾이고 만다. 그리하여 정미는 승명학원의 상징이요, 하나님을 대신했던 종을 훔쳐 없애 버린 후 사라지고 만다.

교장이 학교장 추천서를 거부한 이유는 따로 있다. 얼마 전에 교장이 된 이사장의 큰아들은 기업가 출신답게 학교의 모든 것들을 경제적 가치로 따진다. 그리하여 돈이 안 되는 실업계 승일종고를 인문계로 바꾸겠다는 발표를 한다. 인문계로 바꿀 경우 주변 땅값까지 자동적으로 올라갈 거라는 등의 장삿속 기대와 함께.

이때 정미를 비롯한 불우한 환경 때문에 실업계를 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이를 반대했고, 그 앞에 학생부장인 정미가 있었던 것. 교장은 추천서를 써주는 조건으로 잠시 양보했던 인문계고 전환 찬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마감 날짜가 되어 정미의 대학 입학은 좌절되고 만다.

이사장과 학교장이 절도죄로 고발한 정미를 학부모들과 몇몇 선생님들이 선처를 호소해 정미는 풀려나게 된다. 그리고 정미가 다시 등교한 첫날 교장은 보란 듯 퇴학 처분을 내린다.

결국 정미는 종루에 목을 매 자살하고 만다. 소설은 정미의 자살과 함께 그동안 늘 아이들 편에 서 있던 박 선생이 학교를 떠나는 것으로, 어떻게든지 학교를 바꿔보겠다는 묵묵한 신념으로 선생님들의 갖은 오해와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교장 편에 섰던 교감 선생이 평교사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난다.

아니, 임용 동기라 그 누구보다 박 선생을 많이 알고 있고 이해하기에 박선생과 함께 학생들 편에 있던, 박 선생이 학교를 상대로 어떤 결단을 할 때 가장 큰 도움이 되어 주리라, 당연히 그래 주리라,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생각해 버린 변 선생이 교장의 문자 메시지를 받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그래서 더욱 우울하게 덮은 소설이다.

박노자 왈 "한국사회는 이 소설을 꼭 읽어야 한다"

'사립학교'라는 알량한 미명하에 운영되는 악덕 기업에서는 '교육'도 '상식'도 없어진 지 오래다.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대한민국 헌법과 무관하게 특정 종교를 폭력적으로 강요하기까지 하는 그곳에서는 '법'마저도 없다. 남은 것은? 아이들을 '고객'도 아닌 볼모나 재료로 취급하는 불량한 장사와, 밑의 평교사부터 위의 고위 당국까지 올가미처럼 얽어매는 부정부패의 사슬이다. 읽기에는 매우 고통스러운 이야기지만, 기업형 고문실이 돼 버린 '학교'를 다시 한 번 아이라는 그 본래의 합당한 주인들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서 한국 사회는 이 소설을 꼭 읽어야 한다. 쓴 약이야말로 효과가 좋은 법이다.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학 한국학 교수) 추천 글

집안의 영화나 다름없는 종을 안고 월남해 자수성가하여 학교를 이룬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에게 학교는 교육시설이 아닌 사유재산이다. 그리고 교사들은 '그저 학교에 매인 머슴'에 불과했다. 교사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 대마초를 피우지 않는다'는 각서와 날짜를 공백으로 둔 사직서를 맡기고서야 교사가 될 수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지만 선생들은 퇴근 후 학교나 전교조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 술을 마시기도 하는데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술을 마신 교사들이 교장에게 불려간다. 또한 사사로운 이야기들까지 교장에게 전달된다. 교사들은 간첩이 있다며 서로를 의심한다. 와중에 전교조 가입 이야기도 나오지만 교사들은 결국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다.

<종을 훔치다>는 단지 정미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미가 종을 훔쳐 없애버리고 자살하는 소설의 끝부분. 최근 몇 년 우리가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아이들을 죽이고도 여전히 명쾌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교육현장의 실태와 교육관련 문제들이 얼기설기 엮어져 소개된다.

선생의 밀고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던 졸업생이 나타나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학교가 제시하는 '기부금'이라는 명목의 금품을 건네고서야 교사가 될 수 있었다는 양심선언을 하는 교사도 나타나고 수학여행 업체나 체육복 업체로부터의 금품 수수설,교원평가제 등, 우리의 교육 문제들이 속속 이야기된다.

소설은 정미가 종을 훔칠 수밖에 없기까지의 과정 그 몇 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교사들의 회상 등을 통해 전교조가 태동하던 무렵부터 일제고사 거부로 교사들이 해직된 최근에 이르기까지, 사립학교의 비교육적 구조와 교육과 관련된 여러 계층 간 갈등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어 책을 통해 최근 몇 년간 시끌벅적했던 교육문제들을 돌아보게 했다.

참교육을 지향하고 실천한다는 목표는 같지만 자신이 처한 입장과 이상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전교조 교사들의 이야기도 쉽게 흘려 읽지 못한 부분이다. <종을 훔치다>는 이처럼 우리의 교육 현장을 자꾸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피해를 입은 한 아이가 그 때문에 종을 훔치고 자살까지 하지만 학교는 표면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 분노스럽게도.

"백 선생,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싸움이 아니라 아이들이라는 것을 싸우는 데 정신이 팔려 종종 잊어버리곤 했어. 백 선생은 그러질 않길 바래" (소설에서 박선생)

저자 이시백은 몇 년 전 학교를 떠난 교사 출신 소설가다. 그만큼 학교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치밀하고 우울하고 답답하게 우리의 교육 현실을 들려준다. 교육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청소년 둘을 둔 학부모인지라 이 책을 더욱 복잡하고 착잡하게 읽은 것 같다.

내 아이들이 제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무덤에 갇히지 말고 무사하게 이겨낼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면서 말이다. 그래도 우울하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요즘 무슨 꿍꿍이 속인지는 몰라도 홍역 걸린 아이 솜이불 싸매듯, 가리고 덮기 급급하던 교육계의 비리들을 들춰내고 있다. 스스로의 종아리에 회초리를 치고 싶다고 한다. 가슴이 뻐근해질 정도로 감동적인 말이다. 낭창거리는 회초리로 정신이 날지 의문스럽다. 야자 빼먹고 달아나는 애들 잡던 박달나무 몽둥이라도 빌려 주고 싶다. 두엄 내 낭자한 사립학교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던 이들이 또 다른 종을 울리고 나섰다. 요란히 종 치지 말고, 자신의 가슴부터 치기를 권한다. 이 책에는 비교적 건실하다는 소리를 듣는 서너 사립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엮여 있다. 혹 호기심 많은 독자께서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겠다. 사실은 이보다 더욱 참담하고, 차마 글로 옮기기 부끄러워 누구처럼 좀 마사지를 했다.-저자의 말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종을 훔치다 |이시백 (지은이)|검둥소|2010-03-29 |10,000 

2010.05.04 12:07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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