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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2 02:17

문동환 인터뷰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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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때에 민중들은 민주주의 자각했다
이명박 정권에서 민중들은 다시 깨어날 것"
[인터뷰②] '떠돌이 신학자' 문동환 목사의 희망
최경준 (235jun) 기자


▲ 문동환 목사의 집 벽 한 켠에 8년 전 자녀들, 조카들과 함께 고향인 북간도 명동촌에 가서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 최경준 문동환

'문익환 목사의 동생', '떠돌이 신학자' 문동환(90) 목사. 2년 전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 <떠돌이 목자의 노래>에서 "무엇보다 세계 도처에서 빈부 격차를 조장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신자유주의의 악랄한 횡포가 나를 가만히 있을 수 없게 했다"고 했다. '박정희 독재' 밑에서 신음하던 민중을 보면서 분노했던 그의 마음에 다시 불을 지른 것이다.

그는 지난 4일(미국 현지시각) 기자를 만나서도 "산업문화 제도로부터 벗어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 시키기 위해서는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는 정신을 확산 시켜야 한다"며 "그러한 각(覺, 깨달음)과 단(斷, 끊음)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 이명박 정권까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왔다"고 강조했다. 이제 구순으로 접어든 20011년 새해 벽두, 그는 여전히 '민중 신학에서 떠돌이 신학으로'라는 신념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었다.

하루에 1달러로 사는 22억 명의 떠돌이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기차로 약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뉴저지주의 작은 시골마을 블룸필드. 역에서 나와 그의 자택으로 가는 길 곳곳엔 지난 연말에 내린 폭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문동환 목사는 지난 1992년 4년간의 정치 활동을 끝으로 현장에서 나와 이곳에서 은퇴 생활을 시작했다. 그와 함께 세파를 견뎌온 '푸른 눈과 흰 머리'의 아내 문혜림(헤리엇 페이 핀치벡)씨의 고향인 미국에서 남은 여생을 함께 보내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좋은 대통령 만나서, 언론하는 사람들은 취재할 일이 많겠네."

소파에 앉다 말고 의아한 생각이 들어 그를 한 번 돌아봤다. '미국이 처음이냐'는 질문에, '2008년 봄 청와대 출입기자 시절, 이명박 대통령 방미 취재차 온 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더니, 그가 한 말이다. 당시 '광우병 쇠고기' 파동 때 밤 새워 촛불집회를 취재하던 일이 떠올랐다. 이내 그 뜻을 알아채고 함께 웃었다.

- 뉴욕 시내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살고 계신다. 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현장에서 한 발 물러나 있지만, 아직 완전히 끈을 놓은 것은 아니구나 하는.

"'은퇴할 때는 깨끗이 하라, 질질 끌면서 노욕을 부리면 안 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거든. 여기 와서 정원이나 가꾸고, 수채화도 좀 그리고, 여유 있게 생각을 했어. 민중 신학을 위한 교육 이론을 착실히 세워보자는 생각도 했지. 사실 우리 형님이 북에 가서 난동을 치고 난리를 쳤으니까, 나까지 거기 한데 엉켜들어가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내가 필요할 때가 올 것이다, 그랬지.

그리고 김대중 선생의 6·15 남북공동선언이 나오잖아. 그래서 내가 도와줘야겠구나, 했지. 그게 김 선생과 내가 함께 밤낮 했던 얘기거든. 해서 6·15 선언실천위원회를 해외에 만들었고, 그 문제로 좀 분주하게 놀았지. 그러다가 나이 90이 다 되니까,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했는데. (후배들이) 열심히 하려고는 하는데, 마음을 부어서(쏟아서) 하는 사람들이 없어. 무리(단체)가 돌아가지 않는데, 해야 할 일들을 보지 못해. 그래서 좀 안타까울 때 이따금씩 충고도 하고 있어. 마음은 밤낮 한국에 가 있고."

은퇴 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자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긴 터널을 하염없이 걷고 있는 것 같은 심정" 속에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도 날로 커져갔다. 교회에서 설교도 해보고, 학교에서 신학 교육도 해봤지만 미주 한인 교회 대부분이 산업문화에 완전히 병들어 버린 현실에 실망했다. 아메리칸 드림에 사로잡힌 동포들의 희망은 자식의 일류대학 입학과 교외에 큰 집을 사는 것이 전부였다. 교회가 사회 문제에 동참해야 한다거나 남북 화해와 통일을 강조하는 설교라도 할라치면, '빨갱이 목사'라는 수군거림이 되돌아왔다.

미국에서 사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한반도의 문제에만 천착했던 그에게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됐다.

"뉴욕이라는 곳은 전 세계가 한 눈에 환히 들어오는 곳이야. 고향에서 쫓겨난 떠돌이들(의 참상)이 내 눈을 확 틀어잡았어. 하루에 1달러로 사는 사람이 22억 명이거든.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하루에 1달러로 살면서 고생을 해. 한국에서는 소외된 사람들이 투쟁이라도 해서 자기 몫을 찾는 것을 민중 신학이라고 했는데, 이 22억 명은 아무 소망도 없는 사람들이야. 그래서 떠돌이라고 내가 이름을 붙였어.

한국 민중 신학도 지금 난관에 부닥쳤는데. 전태일 분신 이후 노동자·농민이 민주화운동을 강하게 하지 않았어? 그래서 민중 신학이 나왔잖아. 그래서 김대중까지 갔는데도 이 밑바닥 사람들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거든. 해방된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말이야. 그리고 이명박이 들어와서 이 꼴 아니야?

물질욕과 권욕으로 자기 배만 채우는 것이 극성을 부리는 제도, 산업문화 제도가 그런 제도야. 많이 소유하면 행복해진다는 거 아니야? 그래서 많이 생산하잖아. 많이 소유하니까, 양육강식과 빈부격차가 일어나잖아. 정치는 돈 가진 놈들이 하는 것이거든. 이 제도 자체가 문제야. 이 제도 문화가 우리를 세뇌 시켜서 우리 모두 그것을 해보고 싶어 하거든. 그것을 집어 치우고 새 것을 창출해야 하는데, 그것에서 한 자리할 생각밖에 안 하거든. 그것이 악순환이야. 왜 이것을 보지 못해? 이것을 보지 못하면 악순환이 계속 돼."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농토에서 쫓아내는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로 인해 전 세계에 양산되고 있는 '떠돌이들'의 참상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민중을 가슴에 품은 떠돌이 민중 신학자"

사실 문 목사 자신이 '떠돌이의 삶'을 살았다. 그는 북간도 명동에서 일제를 피해 고국을 떠나 만주로 밀려난 떠돌이들의 후예로 태어났다. 6살 때 떠돌이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김약연 목사를 보며 목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 때 목사가 되겠다고 한 것은 반드시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었어. 김약연 목사는 맹자를 낭독한 선비이고, 동북아, 동만주의 대통령이라고 불린 사람이야. 종교와 민족운동을 하나로 만든 분이지. '민족을 위해 살겠다'는 표현만 쓰지 않았지, 김약연 목사처럼 살겠다는 것이었지. 결국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 내가 한 것이 바로 종교와 민족정신을 불어넣기 위한 교육이었던 거야."

그는 고향인 북간도에서조차 억지로 떠밀려 나와 서울에서 떠돌이 생활을 이어갔고, 10년간의 미국 유학 시절 내내 또다시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모교인 한국신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목회 활동을 하는 중에 뜻이 맞는 청년들과 함께 '새벽의 집'을 열어 생명문화를 일구기 위한 공동체 생활을 했다. 그가 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떠돌이의 삶'을 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1975년 유신정권의 탄압으로 한신대에서 해직된 뒤, 그는 다시 떠돌이의 길로 나섰다. 76년 3·1민주구국선언문 사건으로 투옥되어 2년 가까이 복역했고, 동일방직 및 와이에이치(YH) 노조원의 투쟁을 지원하다 다시 투옥됐다. 79년 10·26으로 유신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대학으로 돌아갔지만, 결국 신군부에 의해 해직되고, 미국으로 망명길을 떠나야 했다. 당시 미국에서 그와 마찬가지로 '떠돌이 신세'였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85년에 한국에 돌아와 재야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중,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88년에 정치에 발을 들여놓게 됐고, 평민당 수석부총재,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미국 땅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떠돌이로 살아가고 있다. 문동환 목사의 자서전에 실린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의 서평 중 일부다.

"문동환은 가장 비정치적 사람이면서도 DJ가 가장 필요로 하고 신뢰했던 청렴한 정치인, 가장 합리적인 진보 신학자이면서 무당 같이 신비한 영통 경험을 하는 사람, 북간도 민족주의 기독교 인맥의 물줄기이면서 전체 지구의 민중을 가슴에 품은 떠돌이 민중 신학자다."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 MB 때문에 민중들 다시 깨어난다"

▲ 고 문익환 목사의 동생 문동환 목사
ⓒ 최경준 문동환

그는 "다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산업문화 속에서 민중은 떠돌이 신세"라고 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계속 심화되고 있다. 민중이 떠돌이 신세를 면하고 정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그는 거듭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는 정신의 확산을 강조했다.

"문제는 국익이야. 국익 때문에 평화를 볼 수가 없어. 한국이 일제에게 36년간 지배받은 것도 미국의 국익 때문 아니었어? (해방 된 이후) 분단된 것도 (주변국의) 국익 때문이지 않아? 국익이 다 망쳤어.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문제야. 지역적이었던 문제가 이제는 글로벌화 하게 됐어. 이 글로벌화된 문제를 해결해야 돼.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는 게 우리의 정신이 되어야 한다는 거야.

북한이 살아야 우리도 사는 것 아냐? 더불어 살아야 하지 않아? 이것만이 해결이야. 아시아도 중국, 한국, 일본, 러시아가 있는데, 어느 한 나라 혼자 살 수 없어. 더불어 살아야 되는 거야. 구라파는 그것을 해보려고 했는데, 아직도 글로벌 제도 안에 있기 때문에 미국에 공황이 오면 (구라파도) 영향을 받아. 서로 연계돼 있거든. 글로벌화된 문제가 해결되어야 인류에 평화가 온다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하루에 1달러로 사는) 22억 명이 살아."

- 무슨 말씀인지 이해는 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다.

"산업문화가 악하다는 것을 우리가 점점 깨닫게 돼. 처음에는 그것과 투쟁하려고 해. 투쟁하다가 힘이 부족하면 주저앉아요. 하지만 엄청난 힘이 같이 아우성을 치면 얘기가 달라진다. 박정희 정권과 투쟁할 때도 봐. 처음에는 작은 무리가 하잖아? 점점 커지잖아? 그럼 더 누르잖아? 그럼 더 싸우잖아? 나중에는 화이트칼라까지 나오잖아? 그럼, 역사가 바꿔진다는 얘기야. 산업문화라는 악을 보고, 거기서 밀려나오는 무리들이 제일 먼저 아우성을 쳐요. 우리도 모세처럼 그들을 보고 아파해. 그러면서 우리가 새 것을 찾아요. 새 것을 찾아서 내놓으면 그들이 호응할 거야. 이것을 이해해야 해."

- 한국에서는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 이들 역시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떠돌이들인데, 그들에게도 희망은 있을까?

"지금 그 사람들에게도 소망이 없어. 문제는 탐욕과 권력욕이야. 개인주의, 탐욕, 권력욕 등이 한데 엉켜서 산업문화가 되지 않았어? 주기도문에 '우리들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라고 하는데, 그게 산업문화야. 산업화,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한반도 전쟁 위험, 4대강 사업 등은 바로 여기서 나온 큰 죄악이지. 악이 극심해질수록 (민중들은) 깨닫는 것이 많고,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할 거야. 그런 과제를 가지고 오도된 것에서 탈출할 때가 됐다는 거야. 이 산업문화가 이젠 종국에 이르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아니라고 추궁해 가는 수밖에 없어.

'네가 살아야 내가 산다'는 각과 단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 이명박 정권까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왔어. 박정희 정권 때문에 민중들이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을 했어. 이제 이명박 대통령 때문에 다시 민중들이 깨어날 거야. 이명박 대통령이 되면 잘살게 될 거라고 착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역사는 그렇게 진행돼 왔어. 그런 의미에서 고생을 겪으나 고생이 우리로 하여금 각을 하게 한다는 것이거든.

고생을 겪는 동안에 각을 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해. 역사를 보면 무력으로 혁명하는 것은 악순환을 낳아. 집단적인 각이 이뤄져야 해. 물론 그것은 시간이 걸려. 하지만 한 번 시작되면 민중 속에 확 퍼지거든. 깨달은 사람은 단을 하는 사람으로 삶의 자세가 변해. 마음의 변화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니까. 그의 삶이 다시 확산되는 것이지."

문 목사는 교육자, 민중 신학자, 생태주의자, 귀농 운동가, 정치가 등 누구보다 다채로운 삶을 살아온 '근·현대사의 증인'이다. 그래서 물었다. "당신의 삶이 무엇으로 규정되길 바라느냐"고.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했어. 나 자신이 인간답게 살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살게 도와주고. 교육을 한 경험이 목사를 한 경험보다 더 좋아. 유치원 선생부터 국민학교, 중학교, 대학, 대학원까지 다 가르쳐 봤거든. 그냥 교육의 내용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접촉하는 삶을 통해서 새 것을 만들어간 거야. 그렇게 의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랬어. 새로운 생명이 살아나는 것을 보며 그렇게 감격을 받았어. 새로운 생명을 일으켜 세우면서 깨우쳐주는 거야. (나를 규정?) 교육자라고 말하는 것이 제일 나을 거야."

그는 지난 1998년 심장 수술을 받았다. 심장 질환은 그의 가계력이다. 심장 수술을 받은 뒤에는 주기적으로 피를 묽게 하는 약을 복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약을 오랫동안 과다하게 복용하면 핏줄이 터지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자택으로부터 멀지 않은 뉴욕 시내에 그의 젊은 동지들이 있어, 그나마 위급 상황이 벌어지면 달려와 준다.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구순을 넘긴 그에게 피곤함을 주었을까? 자꾸 몸이 소파 등받이로 깊숙이 파고든다. 비록 몸의 기력은 쇠한 듯보였지만, 그의 마음만은 여전히 '청춘'이었다.

"언제쯤 좋은 세상이 올까? 그런 세상이 2020년 정도 되면 확실히 올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내가 지금 90이니까, 몇 년을 더 살아야 해? 하하. 결코 절망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해. 우린 기어이 만들잖아? 그렇게 하면서 역사를 점점 깨우쳐라. 언제나 주시해야 한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인가, 어떻게 이런 변화가 오는 것인가. 이런 흐름은 모두 역사의 일부라는 것을 명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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