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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굴드에 엮인 세 가지 이유

[김동광이 사랑하는 저자] 스티븐 제이 굴드

기사입력 2012-01-06 오후 6:11:17


'프레시안 books'는 2012년 신년호를 '내가 사랑하는 저자'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열두 명의 필자가 사랑하는 저자와 만났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사랑하는 저자와 만나는 기쁨을 누리길 기대합니다.

올해는 스티븐 제이 굴드(1941년 9월 10일~2002년 5월 20일)가 암으로 예순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지 꼭 10년이 되는 해이다. 2011년에 굴드의 책을 내면서 평소 알고 지내던 출판사들과 굴드의 귀토(歸土) 10주년을 기념해서 2012년에 조촐한 행사라도 기획해보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문득 자유분방한 전형적인 뉴요커로 격식이나 엄숙주의를 싫어했던 그가 이런 행사를 좋아할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사실 10년이라는 주기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손가락이 다섯 개라는 진화의 우연적인 사건으로 인류, 좀 더 정확하게는 서양인들이 오래전부터 10진법을 채택했고 우리 역시 이를 사용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감안한다면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닌 셈이다. 어쩌면 굴드도 이런 내 생각에 절반쯤은 동의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시쳇말로 굴드와 엮이게 된 것은 그가 과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관점과 과학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매력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다른 자리에서도 여러 번 밝혔듯이 나는 굴드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내가 처음 굴드의 책을 접한 것은 <판다의 엄지>(세종서적 펴냄)였다.

1998년에 처음 번역했다가 절판되어 지금 재출간을 위해 원고를 다시 손보고 있지만, 그제나 지금이나 이 책은 내게 '과학에 대해 이런 관점도 가능하구나'라는 깨달음을 준다. 생물학자가 아닌 내가 처음 굴드에게 매료되었던 것은 다윈주의나 진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보다는 과학에 대한 그의 깊이 있는 통찰이었다.

가령 <판다의 엄지>에 실린 '필트다운인 사건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글에서 굴드는 근본적인 과학적 주제에 접근하는 그의 전형적인 방식을 잘 보여주었다. 필트다운인 사건은 고생물학 분야에서 자주 나타나는 사기 사건으로, 프랑스가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을 비롯한 풍부한 고인류 화석을 자랑하는 반면 인류 화석이 전혀 없던 영국의 필트다운에서 1912년에 인간의 두개골과 유인원의 턱뼈를 조잡하게 조합한 화석이 발견되어 당대를 뒤흔들었던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처음 문제의 아래턱뼈를 발견했던 영국의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던 찰스 도슨의 소행이라고 추측되고 있지만 아직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영구 미제 사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진범이 누구인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물론 생물학 논문보다 과학사를 주제로 한 논문이 훨씬 많은 굴드답게 그 역시 과거의 편지와 문헌들과 같은 일차 사료를 직접 뒤지면서 사건의 범인이 단독범이 아니며 도슨과 과학자이자 신학자인 테이야르 샤르댕의 공범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정작 굴드가 이 주제를 다시 끄집어 낸 것은 범인 찾기 놀이보다는 과학이라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사회와 문화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행이라는 주장을 펴기 위한 예증이었다. 그는 이 글에서 왜 이처럼 엉성하기 짝이 없는 조작이 영국의 과학자 사회에서 그처럼 열렬히 받아들여졌고, 그 후에도 조작이라는 사실이 일찍 밝혀지지 않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한다. 그는 이 조작극 밑에 영국에서 프랑스나 중국보다 훨씬 오래된 고인류화석이 발견되기를 바라는 영국인들의 바람이 그대로 투영되어서 조작된 사실을 의심해볼 여유를 갖지 못했고, 일부 과학자들이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어도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사례가 과학 연구란 오로지 견고한 사실에만 입각하는 활동이라는 통념을 깨뜨리고 과학이 개인적 희망이나 문화적 편견, 영예를 얻으려는 욕구에 의해서도 추진될 수 있으며, 또한 실수나 잘못으로 엉뚱한 경로를 거치는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하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과학적 주제를 통해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비뚤어진 갈망을 성찰한다는 굴드의 접근 방식은 황우석 사태 당시 어쭙잖게 당시 상황을 비판하는 과학 칼럼을 쓰던 나에게 큰 지침이 되었다. 내가 과학사회학이라는 분야를 전공했고, '시민과학센터'라는 과학기술 민주화를 지향하는 단체에 몸을 담고 있기도 했지만, 황우석 신화가 온 나라를 취하게 했던 2004년 무렵 <한겨레 21> 칼럼에서 애국주의와 과학의 결합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지적할 수 있었던 데에는 굴드의 영향이 컸다. 아직도 황우석의 논문 조작이나 배아 연구에서 나타난 윤리적 문제를 덮어두고 국가 경쟁력이나 배아 연구의 주도권을 더 걱정하는 우리의 상황에서 "과학이 그 사회의 갈망이나 열망으로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가"에 대한 굴드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경문사 펴냄). ⓒ경문사
{#8972827541#}그렇지만 굴드가 과학의 중요성을 폄하하거나 진화론의 중요성을 덜 강조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굴드는 과학 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사회 구성론과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굴드는 과학사회학자로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굴드는 생물학뿐 아니라 과학사와 과학사회학에 조예가 깊었고, 캄브리아기 폭발 이후에 남은 버제스 셰일의 발굴과 이 화석에 대한 고생물학자들의 다양한 해석을 다룬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김동광 옮김, 경문사 펴냄)와 같은 책은 월코트라는 대과학자의 과학에 대한 고정관점과 당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지적하고 있어서 과학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례 연구가 될 정도이다.

굴드가 내게 친화력을 가지는 두 번째 이유는 그의 정치적 경향이다. 젊은 시절에 운동권에 몸을 담았던 내 또래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신과 비슷한 인생 경로를 걸었던 사람을 만나면 왠지 반갑고 살갑게 느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굴드 자신의 회고로 그는 박사 과정 시절부터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적 활동에 참여했고, 이후 과학의 남용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포괄적인 비판을 지속해나갔다. 그는 흔히 '민중을 위한 과학'이라고 알려진 SESPA(Scientists and Engineers for Social and Political Action)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 단체는 개방된 구조였고, 당시 급진적인 입장을 가진 많은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과학이 우생학, 생물학적 결정론, 인종 차별 등에 이용되는 것을 비판하고 쿠바, 남미, 중국 등의 공회주의 정부에서 당시 새롭게 실험되던 '새로운 과학'의 건설을 위해 직접 그 나라들에 가서 활동하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굴드는 이 단체의 연구 그룹인 사회생물학 연구 그룹에서 활동했고, 특히 리처드 르원틴과 함께 같은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을 비판하는데 주력했다. 여담이지만, 이 세 사람은 하버드 대학의 같은 건물에 있었는데 1층에는 굴드, 3층에는 르원틴, 그리고 한 층 위인 4층에 윌슨이 있어서 르원틴은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혹시 마주칠까봐 고민했다고 한다. 내가 부족하기 짝이 없는 실력으로 굴드와 르원틴의 저서를 여러 권 번역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공명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굴드를 좋아하는 이유 세 번째 이유는 그가 대중적 글쓰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관점이다. 나는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운동권을 맴돌다가 뒤늦게 과학책을 기획하고 번역하는 '과학세대'에 몸을 담게 되었고, 그 후 번역과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고 지금도 내 자기소개에는 늘 과학 저술가라는 호칭이 붙어 다닌다. 과학 글쓰기. 즉 과학저술이라는 활동은 우리 사회에서는 늘 과학 대중화라는 말과 동일시되고, 어려운 과학을 일반인들에게 말랑말랑하게 쉽게 풀이하는 활동쯤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나는 처음 과학에 대한 글을 쓸 때부터 과학 저술이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에 대한 성찰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어렴풋하게 가지고 있었고, 이런 생각이 명료해진 것은 굴드 덕분이었다. 그는 전문적 과학 글쓰기와 대중적 과학 글쓰기를 구분하지 않았다. <과학,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라는 책의 서문에서 굴드는 자신의 과학 글쓰기 원칙을 밝히기도 했다.

굴드는 라틴어가 아니라 이탈리아어로 문답 형식으로 글을 쓴 갈릴레오, 전문 용어를 쓰지 않고 평이한 산문체로 빼어난 저서를 쓴 토마스 헉슬리의 예를 들면서 흔히 저급한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대중적 과학 저술이 실은 과학 저술의 위대한 전통에 서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요즈음은 대중적 과학 글쓰기를 은퇴한 과학자들의 소일거리로 곡해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굴드에게 과학저술은 과학 논문과 동일한 중요한 행위였다.

나는 지금도 과학저술가라는 호칭을 가장 좋아한다. 그것은 과학 글쓰기가 우리 시대의 과학에 대한 중요한 관여, 성찰적 관여이기 때문이다.

/김동광 과학저술가·고려대학교 교수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010617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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