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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학생 "한국하면 떠오르는 것? 포켓몬!"

해외리포트] 어느 미국 중학교의 '아시아 데이'가 준 교훈  - 고은아 (gracenuri) 기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65916&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9



아시아 데이 중 한국 부분.
ⓒ 고은아
아시아데이
'비무장지대, 건너가지 마시오.'
ⓒ 고은아
아시아데이

군사분계선을 상징하는 철조망, '비무장지대, 건너가지 마시오(DMZ, Do not cross)'라고 적힌 글귀, 카툰 캐릭터들, 그리고 천장에 매달린 연등. 연등마다 눈에 익은 한글 단어들이 적혀 있다. 사랑, 평화, 은혜, 기대, 그리고 '안녕하세요?'

지난 5월 6일 메트로 애틀랜타 지역 풀톤 카운티 밀턴 시에 있는 홉웰중학교의 7학년 사회 과목 강의실들이 모여있는 복도에서 만난 풍경이다. 이날은 세계사를 공부하는 7학년 학생들이 아시아 5개국을 하루 동안 좀 더 밀도 있게 체험하는 '아시아 데이'였다.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인도 등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들을 표현하기 위해 제법 애쓴 흔적들이 복도를 따라 쭉 전시되어 있었다.

일본은 '곤니찌와 클럽', 한국은?

조지아 주 커리큘럼에 따르면, 중학교 과정인 6학년과 7학년 2년 동안 세계사를 공부하는데 6학년 때는 라틴아메리카, 캐나다, 유럽,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해 배운다. 7학년 때는 아프리카, 서아시아, 남아시아, 동아시아를 배운다. 주로 각 나라의 지리, 정치, 경제, 역사에 초점을 맞춰서 교과가 진행된다.

아시아 데이는 2년에 걸친 세계사 공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피날레 같은 것인 모양이다. 이 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루스 웨버씨는 지난 3월부터 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 대해 공부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처음 웨버씨와 이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한 게 그때쯤이다. 지난 3월 초 나는 칸(KAAN, Korean American Adoptee Adoptive Family Network)으로부터 메트로 애틀랜타 지역의 한 중학교에서 7학년 학생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해 줄 사람을 찾는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한국을 소개하는 일이라면 내가 해 보겠다고 답신을 보냈고, 칸에서는 담당 교사와 직접 연락할 것을 권했다.

강의식 발표를 염두에 두고 연락한 나에게 담당교사는 자신의 학교에서 매년 열고 있는 '아시아 데이' 행사 때 7학년 5개 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두 개의 한국'에 대해 '뭔가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활동(hands-on activity)'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자신에게 할당된 나라가 일본이었고, 그때 일본인 자원봉사자 네트워크인 '곤니찌와 클럽'에서 여성들이 나와서 전통 기모노를 보여주고 학생들이 직접 입어볼 수 있게 했으며, 종이 접기 워크숍을 하고, 마지막으로 일본 홍보 비디오를 보여주며 1시간을 꾸렸다고 했다. 그렇게 하루 동안 다섯 번 시연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별도의 사례비는 없다는 말도 전했다.

행사장에서 종일 다섯 번에 걸쳐 발표를 하기에는 시간이 허락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뭔가를 만드는 것은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 부분은 다시 칸으로 바통을 넘겼다. 칸에서는 애틀랜타 로컬팀원들과 한국 관련 단체들에게 이메일을 돌렸다.

웨버씨는 나에게 행사 한 주 전에 와서 따로 강의식 프레젠테이션을 해달라고 했다. 특별히 남북한의 분단과 관련해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으면 더 좋겠다는 말과 함께. 그래서 한국에 대한 소개와 함경북도 청진 태생으로 해방 전에 제주도로 시집 왔던 내 외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시간 관계상, 한국 문화 관련 비디오(The beauty of Korean style)는 직접 내려 받을 수 있는 한국정부 웹사이트를 알려 주고 내가 방문하기 전날 학생들이 미리 관람하도록 했다.

아시아 각국을 상징하는 캐릭터들.
ⓒ 고은아
아시아데이

일제시대∙한국전쟁 배경 소설이 미국 중학교 권장 도서

웨버씨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알게 된 바로는, 사회 과목에서 아시아에 대해 배우는 시기에 7학년 랭귀지 아트 과목에서는 한국계 미국 작가 최숙렬씨의 <떠나보낼 수 없는 세월(Year of impossible goodbyes)>을 읽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 책은 일제시대 평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한 소녀의 눈에 비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징용의 실태, 그리고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가족의 이야기로 그려낸 소설로 미국 중학교 과정에서 학습의 연장으로 읽을 것을 권하는 도서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2007년경 미국에서 <요코 이야기>(1986년 발표) 논란이 불거졌을 때 국내에서도 이 책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작가 자신이 <요코 이야기>를 읽고 난 후 역사 왜곡에 충격을 받아 썼다고 전해지는 이 책은 미국에서는 1991년에, 국내에서는 2006년에 발간됐다. <요코 이야기>는 2007년부터 미국 독서 교재 목록에서 퇴출됐고, 2008년 11월에는 미국 내에서 가장 큰 교재 시장인 캘리포니아의 주정부 교재채택위원회 공청회에서 만장일치로 퇴출이 결정되었다.

아시아 데이 중 일본 부분.
ⓒ 고은아
아시아데이

우수학생들만 따로 공부하는 태그 프로그램

흔히 미국 사회 과목 교육, 특히 세계사 교육을 일컬어 '넓이는 1마일, 깊이는 1인치(a mile wide and an inch deep)'라는 조롱 섞인 말들을 하기도 하는데, 학생들이 이 정도의 학습경험에 노출될 수 있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모든 학생이 이런 학습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었다.

"각 학년에서 약 20~30% 정도의 학생들이 태그(TAG, Talented and Gifted)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선 질문이 끊이지 않아요."

태그 프로그램 소속 교사인 웨버씨의 말이다. 태그 프로그램은 지적으로 우수하고 창의적인 학생들에게 더 풍부한 학습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것인데, 풀톤 카운티의 경우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다른 카운티들에도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존재하는데, 이 프로그램에 들어온 학생들의 특성과 관심, 필요와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특별히 훈련된 교사들이 학습을 담당한다.

이 프로그램에 들어갈 학생들을 선별하기 위해 풀톤 카운티에서는 일 년에 두 차례씩 자격 조건을 심사한다. 심사는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시험 성적을 기초로 한 자동 선별 방식이고 또 하나는 매년 가을 학년 초에 2주 동안 담임교사의 관찰을 통해 선별하는 방식이다.

중학생의 경우 자동 선별 방식에 의해 선발되려면, 전 학년도에 치른 국가 표준시험(standardized test)에서 최소한 상위 15% 안에 들어야 하고, 독해와 수학, 그리고 전체 점수 중 두 개 영역에서 상위 10% 안에 들어야 한다. 또 조지아 주 학력평가고사(CRCT, Criterion-Referenced Competency Test)의 독해와 수학에서 상위 20% 내에 들어야 한다.

담임교사의 관찰을 통해 뽑히려면 동기 유발, 관심도, 의사소통 기술, 문제 해결 능력, 기억력, 탐구심, 통찰력, 이해력, 창의력, 유머 등의 관찰영역 중 5개 부문 이상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야 한다.

아시아 데이 중 중국 부분.
ⓒ 고은아
아시아데이

미국 역사 교육의 허점

그러면 대다수의 학생들이 받는 역사교육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미국식 역사 교육의 허점은 저술가 수잔 바우어가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쓴 책 <잘 훈련된 정신(The Well-Trained Mind: A Guide to Classical Education at Home)>에 잘 나타나 있다.

"여러분(미국 사람들)은 아마 역사 교육을 미국 역사(이것은 알다시피 역사의 거의 끝에 가까운데)에서 시작해서 미국 역사를 공부하는 데만 나머지 세계 역사의 적어도 두 배 이상의 시간을 쏟을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미국 역사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처럼 근시안적인 커리큘럼은 오히려 우리의 선조들을 구박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제퍼슨이나 워싱턴과 그의 동료들이 사용한 고전적 모델들에 대한 지식 없이 미국혁명 공부에 몰입하는 아이들은 미국 정부와 그것이 추구했던 이상에 대해 아주 부분적인 이해밖에는 얻지 못할 것이다. 미국 역사는 원근법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인류 역사는 7000년에 달하는데 미국의 역사는 고작 올라가봐야 500년밖에 되지 않지 않는가.

역사 교과에서 흔히 발견되는 전제는, 아이들이 자기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서는 이해를 못하거나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일학년 역사 수업은 사회 탐구라고 명칭이 바뀌었고, 아이들이 잘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우선 자기 자신, 가족, 커뮤니티, 자기가 살고 있는 주, 나라, 그런 다음에 나머지 세계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이처럼 강박적으로 자기중심적인 학습 패턴은 학생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자기 자신과 연관 시키도록 하고 다른 문화와 관습들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도록 한다. (…) 이런 태도는 언제든 파괴적이지만, 특히 요즘과 같은 글로벌 문명사회에서는 더 폐해가 크다."

인터넷상의 미국 역사 교사 토론 모임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이 책에서 지적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주장들이 많다. 교사들이 가끔 외국에서 온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그들의 역사 지식이 일반 미국 학생들보다 훨씬 넓고 포괄적임을 알게 된다는 지적들이다. 또 한 가지, 중학교 학생들이 세계사를 2년 동안 공부하는 것은 근자에 와서야 바뀐 일인 듯하다. 'lynn30k'라는 아이디로 글을 올린 한 교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제가 1960~1970년대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닐 때에는 역사 교과가 거의 미국 역사로 일관돼 있었어요. 유럽을 좀 건드리긴 했지만 그것도 탐험가들을 다루기 위해서 곁들이는 정도로만요. 세계 역사는 한 학기나 잘해야 1년 배웠을까요? 우리가 이처럼 세계 역사에 무지하니까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 말고는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고 생각하지요. 크게 보면 그들의 지적은 옳다고 봐야 합니다."

아시아 데이 중 인도 부분.
ⓒ 고은아
아시아데이

긴장의 순간

자, 그럼 이제 다시 아시아 데이로 돌아가 보자. 사실 나도 한국 문화를 소개하러 누가 오는지 궁금했다. 내가 맡은 프레젠테이션을 일찌감치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홉웰중학교를 다시 찾았다.

행사 시작 약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다른 동양인 여성들이 삼삼오오 눈에 띄었다. 혹시나 한국 사람들인가 해서 가까이 가봤더니, 일본인들이었다. 웨버씨가 언급한 바 있는 '곤니찌와 클럽' 아줌마들이다. 그들의 손에는 바리바리 공작 재료들이 들려 있었다.

사회과목 교실들이 몰려 있는 복도로 들어서자 'KOREA'라고 색지로 붙여 놓은 게 보였다. 그곳에서 사진들을 찍고 있는데, 웨버씨가 나왔다. 누가 오느냐고 물으니까, 에모리대 학생들이 오기로 했는데 줄곧 이메일을 주고받던 대표학생이 갑자기 한국에 가게 되는 바람에 며칠째 연락이 잘 안돼서 누가 올 지 안 올 지 잘 모르겠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처음 발표자를 찾아 15개 한국 관련 단체들에 이메일을 보냈는데 아무도 연락이 없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기사 마감 전에 15개 단체가 어느 곳들인지 알려달라는 이메일을 웨버씨에게 보냈는데, 답장을 받지 못했다.)

걱정스런 마음을 안은 채 나라별로 전시된 풍경들을 돌아보는데, 화려하게 꾸며진 중국과 일본 벽면이 더욱 커 보였다. 인도와 베트남도 그런대로 볼 만했다. 그런데 한국은 찬란한 5000년 역사가 다 어디 가고 한국전쟁 상징물과 카툰 캐릭터만 남았단 말인가. 그나마 어떻게 알았는지 한글로 연등마다 낱말을 적어 넣은 노력들이 위안이 될 뿐이었다. 여기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사람들마저 나타나지 않는다면? 더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웨버씨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준비한 연등 만들기 재료들을 꺼내 놓고 학생들을 맞았다. 어느 책에서 구한 도안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할 무렵, 에모리대에서 온 세 명의 한국 유학생들이 교실로 들어왔다.

아시아 데이 중 베트남 부분.
ⓒ 고은아
아시아데이

무산된 멀티미디어 쇼

휴우, 안도의 한숨이 다 나왔다. 에모리대의 케임(KAME, Korean Adoptee Mentorship Program at Emory)이라는 한국계 입양아 지원 동아리에서 나온 김승규(4학년), 한별(1학년), 성승용(1학년)씨. 학부생인 이들은 9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에모리대에 진학한 수재들로 평소 입양아들과 여러 가지 공작들을 해 온 경험을 살려 처음에 '부채 만들기'를 제안했었다고 한다.

"150명 정도가 액티비티(activity)를 하려면 재료비가 150달러 정도는 들겠더라고요. 그래서 웨버 선생님한테 얘기했더니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다른 걸로 해달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처음에 연락을 하던 친구가 갑자기 한국으로 나가게 되는 바람에 빨리 다른 아이템을 찾지 못했고, 마침 기말고사가 어제까지 있어서 정말 여력이 없었습니다. 해서 한국의 팝 문화를 보여주면 아이들이 신이 날 것 같아서 파워포인트에 링크를 잔뜩 걸어서 갖고 왔는데, 교실에서 인터넷 영상을 띄울 수가 없네요. 저희가 에모리대 환경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나 봐요. 인터넷을 못 쓰는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김승규씨가 못내 아쉬워하며 한 말은 한 주 전에 나 역시 동일하게 느낀 점이었다. 지은 지 7년밖에 안 된 학교 교실에 '스마트보드(붙박이형 인터넷 스크린)'가 없는 건 좀 납득이 안 갔다. 최소한 이동식 프로젝터라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왔다가 30인치 정도의 TV 수상기로 영상을 보여줘야 했었지만 내 경우는 다행히 인터넷 링크를 만들지 않아 별 문제가 없었다.

내가 사는 동네의 경우 초등학교 부속 유치원 클래스까지 스마트보드를 이용해 멀티미디어 수업을 하는데, 지역별로 학교 수준에 편차가 심하고 하드웨어에도 차이가 많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사실 이 학교에서 차로 20분 거리 안에는 조지아 주 공립고등학교 랭킹 10위 안에 드는 학교가 세 곳이나 있다. 그리고 이들 학교에는 한국 학생들도 상당수 있다. 아마 그런 학교들에서는 한국 학부모들만 동원해도 충분히 발표나 공작을 하고도 남았을 텐데 정말 등잔 밑이 어두운 세상이다.

케이팝(K-Pop)이라는 강력한 볼거리로 미국 중학생들을 즐겁게 해 주려던 에모리대 학생들의 애초의 의도는 무산됐지만 세 명의 오리지널 한국 대학생들이 교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연등에 학생들의 이름과 여러 낱말들을 한글로 쓰게 도와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들은 아침 10시 반부터 오후 3시 반까지 다섯 개 반을 대상으로 연등 만들기를 돕는 사이사이 한글에 대해 설명하고 한국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행사가 다 끝난 후 보낸 이메일에서 웨버씨는 에모리대 학생들의 노고를 치하해 마지않았다.

KAME 소속 에모리대 학생들. 왼쪽부터 김승규 씨, 성승용 씨, 한별 씨.
ⓒ 고은아
아시아데이

아시아 데이가 남긴 교훈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웨버씨가 처음에 접촉한 한국 관련 단체들 중에 왜 칸에서만 응답을 했을까 하는 점이다. 에모리대의 경우도 학부과정에만 한국 학생이 500명에 이르고 대학원생 200여 명까지 700여 명의 한국 학생이 있다고 한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에모리대 한국학생회도 이번 행사는 모르고 지나간 것이다.

입양아의 미국인 부모들이 주축이 된 칸의 경우 미국인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훨씬 매끄러웠을 거라고 짐작되지만, 이번 일은 지금까지 한인단체들이 주로 한인들 사이의 친목과 연계, 그리고 소수민족의 권익 신장 쪽에 초점을 맞춰서 활동해 온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미국 사회 속으로 파고들어 영향력을 끼치는 쪽으로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이와 관련해 애틀랜타 총영사관에 문의했는데, 지난 2월말부터 3월까지의 이메일 내역을 다 훑어봤지만 루스 웨버씨의 이메일은 찾지 못했다. 웨버씨는 나에게 '코리안 엠버시(대사관)'로 이메일을 보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 대사관으로 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덧붙여서 총영사관에서는 이메일보다는 전화나 편지로 요청할 때 공식적으로 대응한다는 얘기도 했다. 또 재외공관은 한인들의 편의와 민원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요청할 경우 성심성의껏 응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홉웰중학교에서 20분 거리 내에 있는 차타후치고등학교를 예로 들었다. 그 학교는 얼마 전부터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해 한국어 교사가 있는 곳이다. 한국어 교사의 요청으로 담당 영사가 직접 학교를 방문해 한국을 소개하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한인 매개자가 있으면 일이 쉬워지는 건데, 외국인들이 직접 부딪히기에는 한국 공관의 벽이 너무 높아 보인다. 일본 '곤니찌와 클럽' 얘기를 전했더니, 일본 정부는 홍보 예산이 엄청나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 일의 경우는 돈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문제였다. 외부에서 어떤 요청이 들어오면 일단 예산이 들어가는 거 아닌가 하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인 듯하다. 돈 들이지 않고도 열의와 노력만 들어가면 한국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데 말이다.

애틀랜타 한인회의 박철효 사무총장은 이번 일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칸에서 이메일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한인회는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곳이고 민원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 일을 한인회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일이라고는 보지 않았고 개인적으로 누굴 연결해 줘야 하나 생각하다가 누군가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는 얘길 듣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복도에 색지로 'KOREA'라고 붙어 있다.
ⓒ 고은아
아시아데이

영어권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재로 사용되는 <인테그레이티드 코리안(Integrated Korean)>에서 한국 사람들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 중에 인그룹(in-group), 아웃그룹(out-group)이라는 말이 나온다.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인그룹은 가족이고 친구, 동료 등 자신과 연결고리가 있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아웃그룹은 자기와 상관없는 타인들의 집단을 일컫는다.

한국 사람들은 아웃그룹에 대해서는 냉담한 반면, 인그룹에 대해서는 대단한 친밀감을 표시한다고 한다. 이는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활짝 웃어주는 미국 사람들과 달리 시선을 돌려 버리는 우리의 무의식적인 습관과도 관련이 있다. 이번 일에 대한 우리의 대응방식도 이런 습성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이 글로벌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하려면 우리와 연결고리가 없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알려달라고 요청할 때 지금과 같이 안이한 태도로 대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처음 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었다. "한국 하면 떠오르는 게 뭐예요?" 그러자 "한국음식이요", "태권도요" 하더니 잠시 침묵. 그러다 누군가 소리친다. "포켓몬!"(기자 : 포켓몬스터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한국(South Korea)의 도시 중에 아는 곳 있어요?" "서울이요." 그러곤 또다시 침묵. 잠시 후 침묵을 깨뜨리던 소리, "평양!"

그러던 학생들이 아시아 데이 때 만나서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펩시콜라가 태극기를 모방한 건가요? 옆으로 돌리면 정말 비슷해요."

그러면서 눈앞에 있는 태극기를 직접 돌려 보이기까지 했다. 태극무늬는 동양의 철학사상이 담긴 것이라고 설명해 주자, "그거 참 멋진데요"라고 답하던 미국 중학생들. 앞으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학교, 한국 학생들이 거의 없는 학교일수록 한국을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값진 교훈을 얻은 것이 이번 방문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인 듯하다.

아시아데이 뷔페를 준비하는 학부모들. 행사를 위해 인근 중국식당 7곳에서 음식을 제공했고, 일부 아시아계 학부모들도 음식을 장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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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기 목사 "일본 대지진은 하나님 멀리한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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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통령, 무릎꿇고 통성기도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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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봉호 교수 "한기총은 해체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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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3 by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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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총은 어떤 대책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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