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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khan.co.kr/view.html?med_id=khan&artid=201211142105225&code=900306

ㆍ실크로드의 숨결, 천년의 시간을 건너오다

실 크로드는 모래바람이 부는 머나먼 땅을 연상시키는 단어다. 사막 한가운데서 고독과 대면하고 싶은 구도자들이 꿈꾸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터키까지 이어지는 실크로드 육로에서 ‘병목’ 구실을 했던 곳이 중국 간쑤성(甘肅省) 둔황(敦煌)이다. 동방 문물은 둔황을 거쳐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고, 서역 각지에서 밀려든 문물은 둔황을 통과해야만 동방에 전파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서 문명이 교차하던 지점이니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데다 한국과 비교적 가까워 접근성도 좋다. 지난달 둔황 명사산과 막고굴을 찾았다. 실크로드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오아시스 도시 둔황에는 수백, 수천년의 시간이 샘처럼 고여 있었다. 

시가지가 보이는 도시의 사막 

둔 황은 베이징에서 비행기로 3시간 거리에 있다. 서울부터 베이징까지 비행 시간이 2시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베이징에선 서울보다 둔황이 더 먼 셈이다. 기후가 베이징보다 춥고 건조해 10월 말에도 아침 최저기온이 0도까지 내려간다. 지난달 24일 둔황공항에 내렸을 때도 날씨가 초겨울 같았다. 코끝은 시리고 하늘은 청명했다.


공 항을 떠나 시내로 이동하는 길, 저 멀리 거대한 모래산이 위용을 드러냈다. 중국 풍경명승구 가운데 하나인 명사산(鳴沙山)이다. 바람이 불면 모래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길이가 남북 20㎞, 동서 40㎞에 이르고 높이도 1600m나 된다. 모래산이기 때문에 거센 바람이 한바탕 지나가고 나면 산의 모습도 달라진다고 한다. 둔황 시내에서 자동차로 20~30분이면 닿을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명사산 입구에 도착하면 두 가지 진풍경이 벌어진다. 하나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수십마리의 낙타들이다. 관광객들은 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이라도 된 듯 낙타를 타고 수백m 떨어진 모래산 기슭까지 갈 수 있다. 낙타를 타지 않는다면 관광차를 탈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명사산을 오르려면 또 다른 진풍경에 가담해야 한다. 신발 안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도록 장화 모양의 주황색 주머니 한 쌍을 대여해 신어야 하는 것이다. 

준 비를 마쳤다면 이제 모래산을 오를 때다. 경사면에는 로프로 나무발판을 연결한 사다리가 깔려 있었다. 모래만 밟고 올라가는 것보다야 수월하지만 그래도 걸음 떼기가 쉽지 않다. 오르면 오를수록 밑에선 보이지 않던 모래더미가 계속 나타나면서 정상이 멀어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을 밟자 그제서야 한줄기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겪은 모래 입자는 밀가루처럼 고왔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모래가 물결을 일으키며 산 아래로 흘러내렸다. 

정 상에 서면 모래산 너머로 둔황 시가지가 보인다. 월아천(月牙泉)의 초승달 모양도 더욱 또렷이 내려다볼 수 있다. 월아천은 명사산 기슭에 있는 초승달 모양의 샘이다. 등산구역과 100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길이는 남북으로 최대 39m, 동서로 224m이며 깊이는 2m 정도다. 월아천은 그 옛날 사막을 지나는 행인들에게 마실 물을 제공하던 곳이었다. 2000여년 전부터 샘이 흐르기 시작해 지금껏 마르지 않았다. 연대를 짐작할 수 없는 명사산의 모래알처럼, 월아천에도 장구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사막의 ‘노천 박물관’ 막고굴 

둔 황에 새겨진 실크로드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둔황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25㎞ 떨어진 명사산 동쪽 절벽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막고굴(莫高窟)이 있다. 1000명의 부처가 모셔져 있다고 해서 천불동(千佛洞)이라고도 한다. 20세기 초 중국을 탐험했던 영국 선교사 밀드레드 케이블은 막고굴을 ‘사막의 위대한 박물관’이라고 불렀다.


서 기 366년 낙준이라는 승려가 구름에 싸여 있는 1000명의 부처를 본 뒤 화공을 구해 절벽을 파고 석굴을 지었다. 그 후 1000여년 동안 다른 순례자들이 석굴 수백개를 추가했다. 현재 남아있는 석굴 735개 가운데 492개에 채색벽화와 조각상이 보존돼 있다. 벽화 면적은 총 4만5000㎡, 조각상 수는 2000개가 넘는다. 벽화가 발견되지 않은 석굴은 당시 화공들의 숙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막 고굴에서 가장 유명한 석굴은 16호 굴의 한쪽 벽을 뚫어 만든 곁굴인 ‘장경동(17호 굴)’이다. 1900년 5월 왕원록이라는 도사가 16호 굴 입구를 막고 있던 흙더미를 치우다가 우연히 벽에 난 작은 문을 발견하면서 장경동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사방 3m쯤 되는 이 작은 방에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포함해 5만여점에 이르는 그림과 문서가 발견됐다. 장경동은 당초 어느 승려를 기리기 위해 만든 굴이었으나 10세기 송나라 때 외침에 대비해 이곳에 각종 문서를 숨겨둔 것으로 추정된다. 문서에 쓰인 언어도 한문, 티베트어, 산스크트리어 등 다양하다. 장경동 문이 열리면서 출토 문서와 그림을 연구하는 ‘둔황학’이 창시됐다. 


유 물들의 학문적 가치가 워낙 높다보니 장경동에는 ‘도굴꾼’들이 끊이지 않았다. 일단 왕원록이 그림과 문서를 하나씩 빼내 쑤저우 지역의 군부 고위 인사들에게 상납했다. 1904년 간쑤성 란저우 당국이 이 사실을 알고 왕원록에게 ‘문서를 보호하라’고 명령했지만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 왕원록은 막고굴을 찾아온 서구 고고학자들에게 설득당해 수많은 문서와 미술품을 선선히 넘겼다.

영 국 고고학자 오렐 스타인(1862~1943)은 장경동 문서를 서양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인물이다. 그는 둔황에서 ‘금맥’이 터졌다는 소문을 듣고 1907년 막고굴을 찾았다. 스타인은 왕원록을 어르고 달래 환심을 산 뒤 장경동 유물을 헐값에 대량 확보했다. 이어 문서 24상자와 회화·자수 등 미술품 5상자를 영국 대영박물관으로 실어날랐다. 

스 타인이 한 차례 휩쓸고 간 자리에 프랑스 고고학자 폴 펠리오(1878~1945)가 도착했다. 그는 1908년 왕원록을 구슬러 장경동에 들어갔고 스타인이 미처 가져가지 못한 유물들을 넉달 동안 조사했다. 펠리오가 검토한 문서와 미술품도 여지없이 프랑스로 반출됐다. 이것이 파리 루브르박물관과 대영박물관이 장경동 유물 상당수를 수장하고 있는 이유다. 막고굴 안내원 장옌링은 “장경동에서 발견된 5만여점 가운데 4만여점이 해외로 반출되고 1만여점만 중국에 남아있다”고 말했다. 

보존 위해 개방구역 축소 추세 

일 본, 러시아, 미국 발굴팀도 질세라 막고굴을 훑어갔다. 미국의 랭던 워너(1881~1955)는 경쟁자들보다 뒤늦게 막고굴을 방문했지만 전리품은 남들 못지않았다. 1924년 워너는 화학약품을 사용해 석굴 내부의 벽화 12점을 떼어냈고, 328호 굴에 있던 보살상 하나도 하버드대 박물관으로 들고 갔다. 328호는 1200여년 전 당나라 때 만들어진 석굴로, 막고굴의 대표적 조각상인 석가모니상과 보살상이 놓여 있는 곳이다. 워너가 불상을 들어낸 자리는 덩그렇게 비어있었다.

중 국 정부는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보존 노력을 시작했다. 1961년 중화인민공화국 문물보호법에 따라 막고굴을 보호문물로 지정했다. 1987년엔 유네스코가 막고굴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중국 정부는 2006년부터 2025년까지 막고굴 보존 계획을 명시한 마스터플랜도 완성했다. 

관 광객들에게 개방하는 석굴 수도 점차 줄이고 있다. 성수기에 50~60개만 개방하는데 관광객들이 실제로 볼 수 있는 건 8~9개에 불과하다. 석굴 입구를 철제 문으로 막고 자물쇠로 잠가놓기 때문에 관광객이 안내원의 인솔 없이 개별적으로 석굴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안내원이 열쇠로 문을 열어주고 손전등으로 석굴 내부를 비추며 설명해준다. 이 경우에도 사진 촬영은 할 수 없다. 

중 국 정부는 보존 상태가 우수해 연구 가치가 높은 석굴일수록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642년 제작 벽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220호 굴이 그중 하나다. 서하 시대(1038~1227) 때 덧입힌 벽화가 1940년 저절로 떨어지면서 그 밑에 그려져 있던 당나라 때 원본 벽화가 발견됐다. 이 벽화는 등장 인물의 표정은 물론이고 당대 악기와 복식, 건축양식 등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어 사료 가치가 높다. 

막 고굴 측은 취재 편의를 위해 비공개 석굴을 포함한 15곳의 석굴을 안내해줬다. 비공개 석굴에 들어갈 땐 안내원도 함부로 자물쇠를 열지 못했다. 석굴 앞을 지키는 경비원에게 사전에 관람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야만 입장할 수 있었다. 장옌링 안내원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 막고굴도 흔적없이 사라질 수 있다”며 “좀 더 많은 후손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개방구역을 줄여 유물의 수명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실 크로드의 역사를 붙잡아두려는 노력은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비공개 석굴 내부를 일반인들이 인터넷에서 볼 수 있도록 웹사이트를 준비하고 있다. 학자들은 세계 각국에 흩어진 막고굴 유물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영국과 중국·러시아·프랑스·일본·미국 등의 학자들은 1994년 영국 국립도서관에 본부를 둔 ‘국제 둔황 프로젝트(http://idp.bl.uk)’를 결성하고 막고굴 유물 자료를 디지털 파일로 만들고 있다. 이들이 인터넷에 올린 데이터베이스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길잡이-
여 행사에 실크로드 상품이 나와 있다. 실크로드 패키지를 이용하면 열흘 안팎의 일정으로 산시성의 시안과 간쑤성의 둔황, 신장위구르자치구의 투루판·우루무치 등을 한꺼번에 돌아볼 수 있다. 더 짧은 일정으로는 시안·둔황 또는 상하이·시안·둔황으로 구성된 상품도 있다. 명사산·월아천과 막고굴은 오전·오후로 나눠 하루면 볼 수 있다. 패키지를 이용하지 않으려면 베이징~둔황 또는 시안~둔황을 연결하는 중국 국내선 항공편을 알아보면 된다. 

유 명 관광지이기 때문에 호텔 대부분은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있다. 4성급 호텔 1박 요금이 우리 돈으로 8만~10만원 정도다. 취재진이 머물렀던 둔황산장 호텔은 막고굴을 본떠서 지은 건축물이라 외관이 아름답고 명사산까지 자동차로 10분 거리여서 관광하기 편리하다. 

둔황의 기후는 춥고 건조하다. 한겨울에는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지고 낮 최고기온도 영하에 머무는 날이 많다. 가장 추운 때인 1월은 피하는 편이 낫다.

<둔황 | 글·사진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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