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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문학·영화로 버무린 어둠의 세계
제프리 버튼 러셀의 <악마의 문화사>

김대홍 기자 bugulbugul@hanmail.net 

"1987년 8월 24일에 <타임>은 생전 처음 보는 소녀의 등에 여섯 발을 쏴서 '재미로' 죽인 스물세 살 난 마이클 해건의 정신 상태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는 희생자 켈리 모시어나 그녀의 가족, 혹은 그녀가 모델이 되고 싶어했던 모범생이었다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난 해냈어! 유명해졌다구!' 로스엔젤레스 주립 교도소의 철책 뒤를 어슬렁거리며 만면에 웃음을 띠고 그가 외쳐댄 말은 바로 이 한 마디였다.

유물론과 합리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는 요즘 악마는 신화 속 인물이 되어버렸다. 악마를 논하는 것은 우스갯거리나 미신으로서만 치부될 뿐이다. 그런데 여기 제프리 버튼 러셀은 '악마는 존재하며, 지금이야말로 악마를 제대로 응시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악마의 문화사>(황금가지 刊/1999 초판 발행)에 바로 그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는 악마가 존재하느냐 아니냐는 세계관에 따른 것이며 서구사회를 거의 300년간이나 지배해온 유물론적 세계관에서라면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곧바로 이 관점에 스러져감에 따라 이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악에 대한 작가의 강한 집념을 느낄 수 있는 책이지만,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서술하는 과정에서 대단히 흥미진진한 악의 문화를 접하게 된다. 단테, 아리스토텔레스, 조셉 프루동, 괴테, 세익스피어의 오셀로와 멕베스, 밀턴의 실낙원, 사드, 프로이트, 융,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영화 '엑소시스트'와 '2001년 오디세이' 등 문학, 종교, 철학, 심리학, 연극, 영화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저자의 악마 탐구과정을 볼 수 있다.

흔히, 어떠한 저작들을 볼 때 특정한 관점에 서서 다른 관점들을 비판하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고, 이러한 서술방법이 익숙한 편이다. 그러나, 러셀은 이러한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을 상당히 경계하며, 비판적이다. 이러한 상호 비판과정이 악을 악으로 다스리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는 이원론과 일원론, 유신론과 무신론, 사탄 숭배주의와 반대파의 대결속에서 악이 어떻게 해석되었는지를 서술하면서, 각각의 관점들이 가진 맹점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각각의 관점들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해설하며, 그것이 옳다고 독자들이 생각할 때쯤이면, 그 관점들이 가진 문제점에 대해 작가의 질문이 던져진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이론에 기초해서 신에서 멀어질수록 가장 덜 선하고 가장 덜 영적이라고 보았다. 천사가 가장 선하고 신하고 가까우며, 인간, 동물, 식물, 광물 등으로 내려갈수록 악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간결하게 설명하고 난 뒤에, 저자의 문제제기가 잇따른다.

그렇다면 건강하고 젖도 잘 내는 소와 타락한 인간 중에 더 선한 것은 어느 쪽인가. 존재론적으로 천재가 정신지체자보다 더 위에 놓이는데,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정신지체자와 잔인무도한 천재 중에 더 선한 쪽은 어느 쪽인가.

악마이론 이면에 담긴 의식도 저자는 분석해낸다. 악마는 거의 남자로 그려지는데, 그 저변에 깔려 있던 생각은 그토록 어마어마한 권능을 지녔으면 남자일 것임이 틀림없다는 성차별적인 생각이 담겨있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기독교나 신비주의에서 말하는 마왕 개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악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대와 종교의 갈등, 종교간의 대립에 따라서 끊임없이 재해석돼왔다는 서술 등에서 그러한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중세의 성경학자 테르툴리아누스는 연극을 보러 가는 것을 악마와 교섭한다고 생각했다. 죄 중에서 가장 무거운 죄가 거짓말인데, 연극은 무엇인 체 하는 새빨간 거짓말인 탓이다. 유태교-기독교적인 이야기에 튜튼적인 생각들을 도입한 수많은 고대 영문학 작품들은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대적에 맞서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며 가망없는 전투를 외로이 수행하면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 루시퍼를 영웅으로 그리기도 했다.

한 때 혁명가들에게 사탄은 구체제의 폭군에 맞선 저항을 상징하는 존재로 추앙받은 때도 있다. 셀무스가 보속이론을 만들어 인간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신과의 계약을 어겼다는 이론을 만들어냈을 때는 마왕이 인간과 신 사이에서 아무 의미없는 존재로 추락하기도 한다.

저자는 민주주의와 진보주의, 상대주의적인 시각에 대해서 모두 비판적이다. 이러한 시각들은 악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간과함으로써 근본적인 해결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애가 얻어맞는 것을 보고 윤리학에 근거해서 추상적인 계산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악이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악은 현실적이고 손에 쥘 수 있는 그 무엇"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민주주의, 사회주의, 종교, 공산주의 등의 추상적 개념들은 증오가 발산하는 악마적인 것으로 위장하고 숨기며 자양분을 공급한다. 이런 추상적 개념들을 한켠으로 치워둘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고통에 흡족한 웃음을 띠는 악마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된다."

수많은 이론과 설명 속에서 저자의 생각을 읽어내기란 쉽지가 않다. 더구나 책의 모든 내용이 악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는데 할애돼 있고, 저자는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나면 저자의 생각이 뚜렷하게 다가온다.

"폭력은 항상 폭력을 불러오고 증오는 어디서나 또다른 증오를 불러온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 이를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고 있음은 날마다 확인할 수 있다. 악마는 마치 햇살 아래 버티고 선 맹인 같은 자여서 신이 창조한 눈부시게 빛나는 푸른 평원 위에 있으면서도 오로지 어둠만을 보는 자다. 지금까지 우리는 악마적인 방식을 질릴 정도로 답습해 왔다. 이제 다른 식으로 생각해 볼 때다." 



제프리 버튼 러셀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산타 바바라 분교의 역사학 석좌 교수이며, 버클리, 하버드, 뉴멕시코, 노틀담, 리버사이드 대학 등에서 역사 및 종교학을 가르쳤다.

17권의 저서가 있으며, 1977년부터 서구의 정신사속에 나타난 악마의 개념을 시대순으로 추적, 분석한 '악마' '사탄' '루시퍼' '메피스토펠레스' 네 권의 저서를 종합한 것이 '악마의 문화사'이다.

번역은 고려대 사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최은석이 맡았다.


2003/10/17 오전 10:03
ⓒ 2003 OhmyNews 

http://www.ohmynews.com/article_view.asp?menu=s10600&no=135116&rel%5F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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