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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책과 사람 등록 2003.02.21(금) 18:20


친일과 반공이 보수를 죽였다

해방정국 반빈족세력, 좌우대결 구도로 권력찬탈, 건강한 보수 뿌리 못내려


시민단체를 ‘홍위병’이라고 비하해 양식 있는 시민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던 작가 이문열씨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해방 공간에서 민족반역자들이 보수주의 뒤에 숨으면서 진짜 보수주의자들이 피해를 봤다”며 “한국사회에 굳어진 보수주의라는 개념을 받아들인 것은 내 실수였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전후 맥락이나 그간의 행적 때문에 진정성을 의심받았지만,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한국적 보수주의’의 실체를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진짜 보수주의’와 ‘가짜 보수주의’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쓴 <대한민국사>는 학문적으로는 명쾌하게 정리된 지 오래이지만, 기회주의적 지식인·언론인들의 터무니없는 오용으로 만신창이가 된 보수주의의 정확한 뜻을 되새기게 해주는 책이다. 주간지 <한겨레21>에 연재될 때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글들을 모은 이 책은 ‘한홍구의 역사 이야기’라는 부제가 알려주는 대로, 재기 넘치는 화술과 필력으로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우리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한반도의 역사, 특히 20세기 현대사 속에서 의미심장한 일화와 사건을 끌어내 오늘 우리 현실의 어두운 지점을 통렬하게 가격하고 있는 까닭에 충격과 전율을 동반한다.

많은 사학자들이 지적하듯이 한국 현대사를 뒤틀어버린 결정적 국면은 ‘해방과 분단’이었다. 현대사 전공자로서 지은이도 이런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겨레를 배반한 친일 모리배들이 해방 공간에서 미군정을 등에 업고 ‘반공 투사’가 돼 권력을 장악한 것은 이후 50년 동안 이어질 비극의 서막이었다. 해방 직후 최대의 정치적 이슈였던 민족 대 반민족 구도를 좌익 대 우익의 구도로 바꾸어 버림으로써 친일파들은 기사회생과 권력찬탈의 기회를 얻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리하여 “일제의 밑에서 떡고물을 주워먹던 친일파들은 이제 해방된 조국에서 떡판을 송두리째 차지한 것이다.”

떡판만 차지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권력의 방패막이로 내세운 ‘반공지상주의’는 한국전쟁중 100만명의 죄없는 생명을 앗아간 ‘민간인 학살’이라는 가공할 범죄로 심화했다. ‘좌익 소탕’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이들의 학살행위는 일제가 난징대학살이나 간도토벌에서 자행한 초토화 작전을 그대로 전수받아 제 겨레, 제 피붙이에게 적용한 결과였다. “민간인 학살은 일제잔재 청산의 좌절이 우리 민족에게 어떤 비극을 가져다주었는가에 대한 생생한 증거다.” 또한 좌익 혐의가 있거나 그와 인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면치 못한 이 역사의 기억은 “한국 사회에 오랜 기간 군사독재가 유지되고, 군사독재가 물러난 뒤에도 반공주의, 보신주의가 횡행하는” 심리적 토양이 됐다.

우리 근현대사의 불행 중 하나는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고 그 일제에 빌붙은 세력이 나라의 주류가 됨으로써 “건강하고 합리적인 보수주의가 이 땅에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보수주의자들은 ‘뿌리없는 것’에 대한 깊은 혐오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 ‘보수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 바로 ‘뿌리없음’이며, 전통적 보수주의와의 단절이다.”

가령, 조선 말기의 청렴강직한 관료였던 이건창은 동학교도의 난을 반역으로 보고 소탕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장하면서도, 난에 이르게까지 한 학정을 더 매섭게 질타했고, 서재필 같은 개화파의 서구숭배적 태도를 경솔한 짓이라고 비판한 보수주의자였다. 그는 마흔일곱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건창과 절친했던 매천 황현도 “동학난을 일으킨 무리를 깡그리 잡아죽여야 한다”던 보수주의자였지만, “나라가 망하는 날에 죽는 사람이 하나 없다면 어찌 통탄할 노릇이 아니겠냐”며 음독자살했다. “이들이 죽자 이건창의 동생 이건승과 동지 정원하와 홍승헌은 멀리 만주로 망명의 길에 오른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씩 송장이 돼 고국에 돌아왔다.”

지은이는 이 보수주의자들의 명맥이 남아 있다면, 친일파의 후예인 현재의 수구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진보주의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장준하·함석헌·문익환·계훈제·김수영·리영희 등 “실천과 이론으로 한국의 재야와 진보진영에 뚜렷한 영향을 끼친 분들”이 해방 직후 또는 한국전쟁 전후에 보인 행적은 이들이 하나같이 진보주의자라기보다는 반공적 보수주의자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들은 민족분단의 특수상황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지은이는 수구가 지배해온 현대사의 ‘뿌리없음’을 상해 임시정부와 그 법통을 이었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비교를 통해서도 확인시켜준다. 이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군사주권에 있다. 중국 땅에서 광복군을 만든 임시정부는 중국 정부의 재정지원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하는 상황에서도 광복군 지휘권과 인사권을 3년에 걸친 끈질긴 투쟁 끝에 제 것으로 찾았다. 이에 반해, 이승만 정권은 전쟁이 나자 작전지휘권을 미국에 스스로 넘겨주었다. 이승만은 맥아더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 국민과 정부는 귀하의 전체적 지휘를 받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자주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그런 권력의 상속자인 이 땅의 수구세력, “귀축미영(미국 귀신과 영국 귀신)을 박멸하자!”고 살벌하게 외치던 일제하 친일파의 후예들이 촛불시위와 같은 “너무나도 온건한 반미감정에 호들갑을 떨고 있으니”, 이것이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지은이는 개탄해 마지 않는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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