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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2016.04.13 23:38

"영성적 민주"라는 말은 제 말은 아니고 니니안 스마트라는 제 할아버지 뻘 되는 분입니다. 제 사부의 사부니까요. 실천이라는 말이 나오면 우리는 기가 죽는데 바른 생각은 바른 실천만큼 꼭 중요한 것이라고 봅니다. 각 사람의 성격(personality)은 항상 생각/느낌과 행동의 두가지로 나눠집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을 갖고 있을 때, 어떤 반응을 일으키죠. 이러한 반응은 다시 사고에 영향을 미칩니다. 즉 사고와 행위(thought and action)은 순환(circle) 관계에 있다는 것은 인간 성격의 쌩기초입니다.

이러한 사고와 행동의 순환을 해방신학자들은 정통(orthodoxy)과 정행(orthopraxis)으로 정리했습니다. 바른 이론을 갖출 때 바른 실천을 하게 되고 이러한 바른 실천은 바른 이론에 이른다는 것이죠. 이것을 해석학적 순환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민주시민으로서 바른 생각을 하면 대가리가 제대로 박힌 인간을 지도자로 뽑게 되고, 이러한 투표행위을 우리는 바른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사교집단이면 어떻습니까? 아직 대가족 수준도 아니지 않습니까? 주일하루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부도 아닐진대 매일의 삶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연습을 하면 되는 것이죠.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크리스챤으로서의 삶을 단순히 바른생각과 바른행동을 하는 일차원적인 면에 머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스마트 선생이 정례화 했듯이, 종교는 신화적, 의례적, 교리적, 경험적, 윤리적, 사회적 차원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중에 하나를 무시하면 종교적 기능이 사라지는 것이죠. 우리는 성서이야기 또는 성서라는 신화가 있고, 이러한 신화를 정리한 교리가 있고, 어느것과도 바꿀 수 없는 신과의 만남 또는 경험이 있고, 이러한 경험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의례(더 좁게는 예배)가 있고, 더불어 사는 인간으로서 윤리적 차원, 즉 도덕성(morality)을 무시할 수 없고, 이러한 것들은 "사회적" 인식과 실천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서구 기독교가 나쁜짓은 많이 했죠. 사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나쁜일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 나쁜짓이 좋은 일, 즉 신의 뜻을 시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서구 기독교 역사가 그렇고 우리가 사는 북미에서도 그들의 이른바 "선한 의도"를 갖고 한 나쁜 짓은 계속되었습니다. 필립 젠킨스라는 종교학자 또는 역사학자는 그의 [Dream Catchers: How Mainstream America Discovered Native Spirituality]라는 책에서 이것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원주민 아이들을 잡아다가 Residential Schooling을 한 것도 바로 "잘 해 보겠다"는 의도에서 자행된 "나쁜 짓"이었습니다. 이 원주민 아이들과 관련하여 가톨릭, 연합교회, 성공회, 침례교 등 모두 나쁜 짓한 부끄러운 과거사를 갖고 있죠. 우리의 실천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지려는 노력은 바로 과거를 돌아보는 실천이고 새로운 과학과 지식에 대한 앎과 사회적 적용은 미래를 바라보는 실천입니다. 그러므로 현재를 사는 우리는 과거와 미래의 순환고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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