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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요한의 복음서 8: 14,15)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으니 내가 비록 나 자신을 증언한다 해도 내 증언은 참되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너희는 사람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만 나는 결코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

 (마태오의 복음서 7: 1,2) "남을 판단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1. 내 마음속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이자 강도입니다. 그는 아테네에 살면서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강도질을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자신의 철제 침대에 눕혀서 침대보다 길면 잘라서 죽이고, 침대보다 짧으면 늘려서 죽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다 보면 간혹 침대에 맞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하겠죠. 하지만 침대의 길이를 조절할 수가 있어기에 그 누구도 침대에 맞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이 소문을 듣고 찾아가서 프로크루테스를 잡아다가 똑같은 방식으로 그의 침대에 눕혀서 머리와 다리를 잘라 죽였다고 합니다. 본인도 남을 죽인 방식과 똑같이 죽은 것이지요.

이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지금도 있고,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쉽게 남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마음과 말들은 모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나 다름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들이 있을까요?

 

2. 판단한다. 고로 존재한다.

작년 부산의 한 대학에서 전도유망한 교수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건이 있기 얼마 전 이 교수가 성추행을 했다는 대자보가 학교에 붙었습니다. 사람들은 수군덕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전혀 그런 사실이 없었던 교수는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자신의 결백을 인정 받았지만 대자보를 통해 확산된 소문은 쉽게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 교수가 지나가면 벌레 보듯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교수는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풀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교수는 자택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 되었었습니다. 이후 경찰이 조사해본 결과 성추행을 한 교수는 따로 있었습니다. 같은 학과에 있던 다른 교수가 학생들을 성추행 했던 것입니다. 성추행 교수가 자기의 죄가 드러날까 두려워서 자살한 교수가 성추행을 한 것처럼 소문을 흘렸습니다. 대자보를 쓴 사람은 바로 성추행 한 교수의 제자였습니다. 주위사람들이 사실을 확인해 보고 행동하라고 타일렀음에도 불구하고 대자보를 써서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대자보를 쓴 학생은 자기 교수가 거짓 정보를 흘렸을 뿐인데 마치 자기가 본 것처럼, 관련 자료를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대자보에 썼습니다. 이 학생의 섣부른 판단이 한 사람을 죽음에 몰아 넣은 것입니다. 이 학생은 결국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입니다. 그러나 이 학생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소문을 듣고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명을 쓴 교수에게 혐오와 경멸의 시선을 보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 공범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떤가요? 우리 교회는 캐나다에서 가장 큰 교단인 캐나다연합교회에 소속된 교회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진보교회가 아니라 예수의 뜻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약자와 소수자, 소외된 자들의 편에 서는 것이 예수의 정신이라 믿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정치에서 약자와 소수자의 편을 드는 것이 진보정치라서 지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보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 소문만 듣고서 우리교회를 이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독설들, 악플들을 보고 있으면 지난 주 설교 때 했던 본문이 떠오릅니다. 지난 주 본문 중 야고보서 3장 8절에서 “혀는 겉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했던 말이 딱 들어 맞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쉽게 판단하고 정죄한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함부로 판단 받아본 경험이 있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자신은 결코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도 판단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는데 그를 믿고 따른다는 무리들이 일반인들보다 더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러니합니다. 결코 아무도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도 하셨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3. 판단한다. 고로 판단 당한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섣부른 판단에 이단으로 몰리시고,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판단을 잘 하는지 모릅니다. 천국행 티켓과 지옥행 티켓이 자기 손에 달린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예수님의 충고에도 그의 자녀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마저 쉽게 판단하는 우를 범하는 것일까요?

첫째,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선사시대 때부터 학습된 것입니다. 지난 번에 편견과 선입견에 대해 이야기 한적이 있습니다. 적과 아군을 즉각 구분 하려고 하면 작은 정보, 겉으로 보이는 정보로 전체를 판단해야 합니다. 이런 판단은 당연히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지만 판단이 늦어서 생길 수 있는 피해가 더 크기 때문에 오류가 많음에도 선입견에 의지합니다.

둘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모르는 영역을 남겨두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맹점 또는 암점이란 것이 있습니다. 우리 눈에서 시신경이 망막을 통과하여 뇌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시신경을 구성하는 신경 세포관이 지나가는 곳인데 이 부분은 빛을 감지하는 감광 세포가 없기 때문에 어떤 상도 맺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맹점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우리 뇌가 상이 맺혀 있지 않은 까만 점을 가상으로 메워버리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보고 있는 어떤 부분은 실제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뇌가 만들어 낸 가상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쉽게 파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안해 합니다. 초기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하나님은 불안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틈만 나면 보이고 만져지는 우상을 만들어서 위안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쉽게 판단하고 재단하려고 합니다. 모르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미지의 영역을 남겨둔 사람은 곧 나에게 불안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판단하고 정리하려고 합니다.

셋째, 사회가 판단을 부추깁니다. 우리가 접하는 많은 매스미디어는 시청률을 먹고 삽니다. 그러다 보니 보다 자극적인 소재와 표현을 즐겨 씁니다. 그리고 남보다 빨리 보도해야 높은 시청률을 챙길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기사들이 날마다 넘쳐 납니다. 매일 틈만 나면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속에 자극적인 내용과 확인되지 않은 판단으로 버무려진 부정적인 기사들이 반성 없이 우리에게 전달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악플들이 달립니다. 보다 깊이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쉽게 판단하고 분노하고 욕하고 넘어갑니다. 요즘은 과장되고 미확인된 뉴스를 너머 거짓 뉴스가 판을 칩니다. 이런 뉴스를 끊임없이 생산해내고 돈과 권력을 탐하는 기자들이 어느 때보다 많은 세상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자들을 기레기라 부릅니다. 기자와 쓰레기를 붙여서 줄인 말입니다. 이런 자극적인 정보들의 홍수 속에서 대중은 쉽게 판단하고 분노하고 정죄하는 데 길들여집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세요. 내가 그렇게 쉽게 사람을 판단하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누군가도 나를 쉽게 판단하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4. 에포케(epoche): 괄호에 묶어 두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쉽게 판단하는 것은 우리에게 본능적인 것입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학습된 것이기도 합니다. 자극적인 정보들의 홍수에 노출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의식적인 노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 중 한 가지 방법을 소개 하겠습니다. 바로 “판단중지”하기 다른 말로 하면 “괄호에 묶어 두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판단중지라는 의미를 지닌 “에포케”는 오래 전 그리스 회의주의 철학자들이 썼던 말입니다. 이 말을 근대에 와서 후설이라는 철학자가 자신이 만든 현상학이라는 학문에 적용합니다. 여기서 현상학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구요.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들 앞에서 쉽게 판단 하지 않기 위해 한 가지 기술적인 제안으로 드리는 말입니다.

당사자가 직접 하는 말이 아닌 경우, 다양한 이견이 있는 경우,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경우, 대체로 정보에 대한 판단이 부정적이거나 누구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경우는 판단중지 하는 것입니다. 일단 그 정보로 판단하지 않고 괄호에 묶어 둡니다. 더 많은 증거와 증언들이 모일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섣부른 판단으로 인해 생기는 어리석은 말과 행동들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내가 모르는 영역, 판단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매일 보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실수가 생길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내 기준으로 판단 할 수 없는 여백이 있다는 것을 받아 들일 때 성숙한 관계가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섣부르게 판단해서 정복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과거에 바른 판단이 지금은 그른 판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변하고 세상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일부 사람들이 악용하기도 합니다. 성범죄를 저지른 성직자들, 독재자를 옹호하는 종교 권력들이 “판단하지 말라”는 말을 악용합니다. 공공성이 있는 것들, 공인에 대해서 우리는 감시하고 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반면 사적인 관계,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는 문제, 소수자나 약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도 함부로 판단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쉽게 부정적으로 자신을 판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도 스스로를 죽이는 일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이나 다른 어떤 사람에게 판단받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나도 나 자신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하는 판단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자신을 자책하고 자괴감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이와 같이 타인에게나 자신에게 우리는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는 판단대로 우리도 판단 받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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