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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산다

(로마서7:14~25) 우리는 율법이 신령한 것인 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육정에 매인 존재로서, 죄 아래에 팔린 몸입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장31절)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감히 단언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하신 그 일로 내가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입니다.

(빌립보서4장11~13절) 내 처지가 어려워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비천하게 살 줄도 알며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에게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의 희망으로 다시 사셨습니다. 초대교인들은 주님을 다시 만날 소망으로 고난을 버티며 믿음을 지켜왔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듣고 아는 지식이 있으면서도,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까요? 우리 죄는 주님의 죽으심으로 같이 죽고 우리의 새 생명은 주님의 부활과 함께 다시 산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습을 버리지 못할까요?

데블스 에드버킷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알파치노가 악마로 키아누 리브스가 유능한 변호사로 나옵니다. 키아누 리브스는 악마인 알파치노와 거래를 맺습니다. 영혼을 파는 대신 출세 보장하는 것입니다. 거래 후 키아누는 승승장구 합니다. 모든 소송에서 승소를 이어갑니다. 법조계에 스타로 떠오릅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고 점점 불안과 공허가 몰려 옵니다. 사랑하던 부인도 점점 이상하게 변합니다. 계약을 끊으려 하지만 한번 맺은 계약은 죽지 않고서는 끊을 수 없습니다. 결국 키아누 리브스는 죽을 각오를 합니다. 자신의 생명을 끊을 용기와 각오를 통해 악마 알파치노에서 벗어 나게 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산 키아누는 날아갈 것 같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소송에서 양심 고백을 하고 패소하게 되었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화장실을 들르는데 화장실에 기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볼 일을 보며 기자가 가볍게 묻습니다. “당신 같이 잘 나가는 사람이 어떻게 양심고백을 할 수 있었지요. 정말 대단하군요. 당신은 패소를 했지만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샀습니다.” 키아누는 우쭐한 기분으로 웃습니다. 볼 일을 마친 기자는 화장실을 나가는데 그 얼굴이 알파치노로 변합니다.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고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욕심은 욕구보다 욕망에 가깝습니다. 욕구는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육체적 본능 입니다. 배고프면 먹고 싶고, 자고 싶고, 싸고 싶은 것이 욕구입니다. 우리의 신체는 물리적이고 유한하듯이 욕구는 유한합니다. 반면 욕망은 정신적인 욕심입니다. 정신은 비물질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이 욕망이 지나칠 때 사람들을 죄로 이끕니다. 욕망은 암세포와도 같아서 우리의 욕구와도 깊이 얽혀서 자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과 신체를 갉아 먹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 세상은 우리의 욕망을 더욱 자극합니다. 욕망과잉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욕망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키아누에게 알파치노처럼 딱 붙어서 우리를 놓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도 예수님처럼 살지 못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도 자신을 ‘비참한 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죄의 법에서 떠나 하나님의 법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던가요? 그러나 그리스도인 중 온전히 하나님의 법으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욕망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아직 우리 속에 욕망세포들이 여전히 우리를 간섭하고 있습니다.

 

부활절에 진정한 의미는 죄가 죽고 의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죽고 다시 사신 이야기만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에 사는 내가 죄와 함께 온전히 죽고 새로 사는 것입니다. 참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온전한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욕망과 죄가 죽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부활이 나의 일로 다가 오지 않는 것은 나에게 죽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있으려면 죽음이 먼저입니다. 부활의 영광은 죽음의 참혹함을 견디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합니다. 죽는 것은 고통이지만 우리에게는 죽음이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부활의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절망하지 않습니다. 힘들지만 희망과 소망이 있습니다.

 

온전히 죽고 다시 산 사람의 의와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의 의는 다릅니다.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의 의는 의의 중심이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선행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합니다. 남이 오해하면 괴롭습니다. 다른 사람 사람들과 자주 마찰이 생깁니다. 의를 행할수록 교만해집니다. 부활한 사람의 의는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옛사람은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의가 새사람을 통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사람은 의를 행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합니다. 의를 행하면서도 낙망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부활한 새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죄를 붙들고 있는 옛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한 차원 더 나아가서 내속에 있는 욕망세포를 죽이고 제어해야 합니다. 오늘날은 바울의 시대보다 더욱 욕망이 증폭된 시대입니다. 무엇이 욕망을 증폭시킬까요?

 

바로 자본주의입니다. 크게 자본주의의 두 가지 속성이 우리의 욕망을 부추깁니다.

첫째로 ‘소비가 미덕’이라는 생각입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자본주의는 움직입니다. 생산성이 높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생산성과 함께 수요가 따라가야 합니다. 생산성은 높은데 수요가 따라가지 못해 생긴 것이 1928년의 대공황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수요를 늘리기 위해 인간의 욕망을 부추깁니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광고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소비를 조장합니다. 

 

둘째로 ‘소유권’개념 입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소유권 개념을 분명히 하면서 생겼습니다. 우리와 상관이 없는 자연 조차도 개인의 소유에 귀속시킵니다. 개인의 소유권은 법과 국가가 지킬 정도로 강력한 개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세금입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소유를 강제로 징수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미덕은 기부입니다. 여기도 나 중심적 사고가 깊이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기부는 개인의 소유를 자발적으로 베푸는 것입니다. 의의 중심이 자기에게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기부문화를 기독교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 기독교 정신은 이와 다릅니다. 재화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나는 관리자일 뿐입니다. 나의 생명까지도 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선행을 한다더라도 내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나의 선행 또한 일만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행을 하면서도 내가 자랑할 것이 없고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고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 분란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부활은 참 그리스도인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일년에 한번씩 2000년전의 일을 기념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부활하여 새사람이 되기 위해 죄의 관성을 쫓는 옛사람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의 원인이 되는 욕망도 함께 제어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로 새사람이라 칭함을 받는 것은 단번에 되는 것이지만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욕망을 제어하는 것은 단번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새사람으로 살아갈 때 자족의 비결을 배웁니다.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부활절을 2000년 전의 이야기로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욕망에서 자유로워져서 자족하는 삶을 사는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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