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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마태복음서 16:13-16) 예수 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 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 나 예언자들 가운데에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 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시몬 베드로 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십니다.”

 

  1.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두가지 질문을 하십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이고 다른 하나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입니다. 첫번째 물음의 답으로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예언자 중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이 질문이 있기전에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동생이 기간중에 많은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열광적인 반응이 있었던 이적이 오병이어 사건입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에게는 먹고 마시는 문제가 가장 큰 일입니다. 당시 유대에도 먹고 사는 것이 문제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생산되는 농작물이 충분하지 않은데도 로마와 소리가 끌려가는 세금은 높았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헤롯과 제사장 무리들이 뜯어가는 성전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빚을 지고 노예로 팔려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많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연히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을 보면 동막골 사람들이 촌장을 믿고 따릅니다. 북한군 대장이 촌장에게 가서 이렇게 묻습니다. 고함 한번 지르지 않고 부락민들을 휘어잡는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요?” 촌장이 이렇게 답랍니다. 뭐를 많이 맥여야지 뭐.”

그래서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은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된것만 보더라도 이 사건이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절정일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혹은 그와 같은 선지자로 여긴 것입니다.

첫째로 새로 요한은 메시야의 예비자로써 능력있는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요한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낙타털옷을 입고 광야에서 외칩니다. “회계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 앞으로 나아와 세례를 받고 회계를 했습니다. 그는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처럼 당대 권력자들에게 날 선 비판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런 세례 요한과 같은 사람으로 본것입니다.

둘째로 엘리야는 놀라운 이적을 베푸는 권능을 가진 선지자입니다. 그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850명을 단독으로 가야해서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한 사람입니다.

성경 역사상 에녹에 이어 두번째로 세상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예수의 이적을 보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권능이 있는 선지자 엘리야를 떠올렸던것 같습니다.

셋째로 예레미야는 유다의 패망을 예견랬던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정치와 종교가 부패하던 시절, 서민이 억압받고 희망을 가질수 없던 절망의 시대에 예레미야는 용감하게 권력자들의 패망을 예언하고 이스라엘 민족의 멸망을 애통해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도 유다 말기의 서민들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이 서민들의 등골을 뽑아먹고 살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자국의 멸망만을 예언하지 않고 회복과 구원의 말씀을 함께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해 애통한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로 본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도 성전의 돌 하나도 쌓여있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이 예언은 주후 70년에 이루어집니다.

 

  1.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사람들이 예수를 생각한 모습들은 크게 틀린 것은 없습니다. 단지 이와같은 설명은 부분일 뿐입니다. 예수에 대한 이런 생각은 지금도 기독교 밖에서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슬람교에서도 예수는 선지자로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4대 성인 중 한 사람으로 추앙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다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 즉 메시야(구원자)로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 물으신 다음 제자들에게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 물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항상 나서기 좋아하고 성격이 급한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십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이 고백이 정답처럼 여겨졌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대답을 들으시고 베드로에게 칭찬을 퍼부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반석 위에다가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복은 16:17~19)

‘바요나’는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에서 사람의 이름 앞에 그의 아버지 혹은 그가 사는 지명을 붙이는 것은 그의 명성을 인정해준다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대답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이라고 칭찬합니다. 이어 그를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베드로라 부르시고 교회를 이 반석위에 세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늘 나라의 열쇠도 주신다고 합니다. 이런 격찬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카톨릭에서 교황의 권위를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린 이 축복을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베드로의 고백이 반은 알고 하고 반은 모르고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에게 이 고백이 스스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이라 말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이후의 베드로에 말과 행적을 보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칭찬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시고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며,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습니다.”마태복음 16: 21)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이렇게 다시 말합니다.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스승을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은 정색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말 속에서 자신이 광야에서 받았던 사탄의 시험이 생각나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이런 말들을 볼 때도 베드로가 생각하는 메시야와 예수가 생각하는 메시야가 달랐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다윗왕과 같은 인물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사람들을 규합하여 군대를 만들고 정치조직을 만들어서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다시 번영하는 유대민족의 왕국을 건설하는 메시야를 떠올린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십니다. 사람들에게 핍박받고 죽임을 당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당시의 상식으로써는 메시야가 핍박받고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셨는데도 베드로와 제자들은 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을 하실 때만 하더라도 예수님은 유대에서 인기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당황한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모습만 보더라도 베드로와 제자들은 고난당하고 죽임당하는 메시야에 대해 아무런 개념이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비로소 제자들은 깨닫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집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물으시면 여러분은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베드로의 고백 말고 바로 여러분 자신의 실존적인 고백을 해야한다면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당신은 나의 구원자”라고 말할 때 도대체 어떤 점에서 무엇이 예수님이 당신의 구원자가 되십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으셨듯이 오늘 우리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물으십니다. 그리고 당신만의 대답을 기다리십니다. 그 대답이 당신에게 있습니까?

만약 없으시다면, 사람들이 한 고백이나 베드로의 고백을 되뇌일 뿐이라면 바로 여러분이 단독자로 만나신 예수님, 구원자로 만나신 주님의 경험이 있으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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