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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 5)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받을 것입니다.

 

1.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이 구절은 제가 대학 입시를 앞두고 고민할 때 당시 저희 교회 목사님께서 저에게 들려주셨던 성경구절입니다. 딱 한번 들려주신 구절인데 마음에 박혀서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구절입니다. 저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고등학교를 가고 싶지 않았지만 부모님께서 중졸은 안 된다고 만류하셔서 학교에 있는 시간이 인문계보다 짧은 상고를 갔습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공부는 해 본적이 없습니다. 당시 상고 출신으로서 기본이 되는 주산, 부기, 타자 뭐 하나 할 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나중에 지금까지 살면서 유일한 신앙체험을 한 경험 때문에 신학대학을 가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을 때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다음해였습니다. 실업계 출신에 공부에 뜻이 없었기 때문에 첫해는 수능을 보지도 않았습니다. 대학을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고 학원을 갔었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루하고 이해되지 않는 수업을 못 견디고 나와서 학원 근처에 있던 오락실을 전전했습니다. 당시 오락실에는 철권이라는 오락이 막 처음 나왔을 때인데 학원 빼먹고 오락실을 다니다 보니 공부는 안 늘고 철권 고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가 대학도 못 가고 인생의 낙오자가 되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들었던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때가 수능까지 100일 조금 넘게 남아있었던 때로 기억합니다. 학원은 이미 문제풀이나 마무리 단계여서 가지를 않고 친구들과 셋이서 독서실에 갔습니다. 그때는 절박한 심정이었습니다. 다 같은 교회의 친구들이라 매주 수요일마다 함께 모여 기도 드리고 주일을 제외한 나머지 날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공부란 것이 이렇게도 되는 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시 하루 공부 했던 분량이 모의고사 풀기, 영어시험에서 모르는 단어 암기, 암기과목 교과서 한 권, 문제집 한 권을 풀었습니다. 그 뒤로도 그때만큼 공부를 한적도, 공부가 잘 된 적도 없었습니다. 결국 기적적으로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신학대학을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신다는 것을 확고히 믿었습니다. 그분이 지혜가 부족한 나에게 꾸짖지 않으시고 지혜를 후히 주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2. 지혜가 부족하지 않은 사람들

그러나 신학을 공부하면서 오히려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진리의 담지자가 신학자에서 철학자로, 철학자에게서 과학자로 옮겨간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님은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뉴턴에서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데카르트에서 니체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에서 하나님은 점점 더 멀어져 갔습니다. 특히 과학만이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자부심이 극에 달했던 20세기 초까지 모든 것이 인과율에 따라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결정론이 사상계를 지배했습니다.

이러한 결정론은 기독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쪽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결정론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첫 번째로 복음주의 계열에게는 과학의 결정론이 강한 예정론의 근거로 활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에게는 예정론이 받아 들이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주의 계통의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창세전부터 우리를 선택하셨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복음처럼 들립니다. 나는 모르지만 선하신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선택하시고 나의 갈 길을 예비해 놓으셨다고 생각하면 불안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잠시 고난과 역경이 있다하더라도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에 따라 내 인생은 해피엔딩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돌아보면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보기에는 비극적인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하는 아기, 극악무도한 죄를 짓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형수, 선하게 살았지만 끝까지 기독교를 알지 못하고 죽었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은 이방인들도 예정이란 말입니까? 이런 물음을 복음주의자들에게 던지면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귀하게 쓰시든, 아니면 천하게 쓰시든 하나님의 주권 문제이니 토 달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운명을 가지고 장난하는 악동이란 말인가요?

과학의 결정론이 복음주의와는 전혀 다르게 적용된 것도 있습니다. 기독교 지성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이신론(deism)입니다. 신은 우주를 창조하셨지만 우리의 삶과 역사에 관여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적이나 성령의 은사 같은 것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적이나 성령의 은사 같은 것들은 자연법칙에 위배됩니다. 결정론자들이 받아 들일 수 없는 것들이지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원리와 법칙을 창조 때 심어놓으셨고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규칙 안에서 자연이 움직인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발견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 멀리 계신 초월자 하나님은 내 삶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죽을 것 같은 고통 중에 있더라도 신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한 고통도 수많은 인과율의 법칙에서 일어나는 것 뿐입니다. 생로병사가 다 자연의 원리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니 신이 인간의 삶에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3. 다시 어린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이런 이론과 공부들이 저를 회의주의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회의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겠죠. 회의주의에서 벗어난 과정을 여기서 모두 이야기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오늘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회의주의의 터널을 벗어나서 다시 이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인 이론이나 논리적인 변증으로 여러분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변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변증의 노력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겠지만 오늘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지혜가 부족한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예배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만나고 체험해야 합니다.

저는 저 우주 너머에 있을 것 같은 신이 아니라 엄마처럼 아빠처럼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지혜를 찾다가 하나님이 멀어진 것 같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면 다시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느낍니다. 공기가 손으로 만져지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불면 내 살결에 부딪치는 그 느낌으로 공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 가운데에도 여러분과 동행하시고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엄마, 아빠 하나님께서 계신가요? 지혜가 부족할 때 후히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하나님, 실의와 상심 속에 함께 마음 아파하시는 하나님이 계신가요? 여러분은 다시 하나님 엄마, 아빠 앞에 어린 아이로 돌아갈 수 있으신가요? 그렇지 않으시다면 오늘이라도, 아니면 언젠가는 고난 뒤 욥이 만난 하나님처럼 살아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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