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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아고게

(빌립보서3:4~8) 하기야 세속적인 면에서도 나는 내세울 만한 것이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세속적인 것을 가지고 자랑하려 든다면 나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더 많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으며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입니다. 나는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파 사람이며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나는 조금도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유익했던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장해물로 여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장해물로 생각됩니다. 나에게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창세기 13:14) 롯이 아브람을 떠나간 뒤에,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보아라.

(창세기 15: 5) 주님께서 아브람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이사야 40:26) 너희는 고개를 들어서, 저 위를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을 창조하였느냐?

동굴의비유.jpg

  1. 동굴의 비유

철학자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억울하게 죽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모습 또한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은 것 같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플라톤의 초, 중기 철학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의 저서 <국가>를 보면 동굴의 비유가 나옵니다. 전에도 한 번 소개한 적 있습니다만 성경에 나오는 비유를 빼고는 서양 역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비유가 아닐까 합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그림을 보고 설명하겠습니다.

그림

1) 고개를 돌리다.

그림에서처럼 죄수들이 동굴 벽을 바라본 채로 묶여 있습니다. 동굴 벽에는 불빛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들이 보입니다. 죄수들은 평생 그림자만 보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움직이는 그림자가 곧 실재라고 생각 했습니다. 철학적으로 말한다면 그림자가 존재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한 죄수가 쇠사슬에서 풀렸습니다. 죄수는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봅니다. 태어나서 처음 돌아보게 된 죄수는 자신들이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 존재가 아니라 허상이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고개를 돌리다.”라는 말이 고대 그리스어로 “페리아고게”라고 합니다.

고개를 돌리면서 현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한자로 본다면 회심 [回心, conversion]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습니다. 고개를 돌리는 것, 눈을 돌리는 것은 즉 마음의 지향을 돌리는 것을 뜻합니다.

베드로는 먹고 살기 위해 앞만 보고 열심히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돌아보면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울도 마찬가집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통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잘 하는 것이 뒤돌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것입니다. 못 살고 못 먹던 시절에는 가난을 벗어나 굶지 않고 사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뒤돌아 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앞만 보고 내달렸습니다.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어 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한강의 기적이라 말하면서 깜짝 놀랄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압축성장의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터집니다. 한국 사회는 진지하게 페리아고게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2) 깨달음1 : 진상이 허상임을 깨닫다.

고개를 돌린 죄수는 자신이 존재라고 믿었던 그림자가 허상이고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지고 조작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플라톤은 당시 정치인들의 선동과 궤변에 열광하는 대중들을 보며 사슬에 묶여 있는 죄수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죄수들이 사슬에서 자유로워져서 고개만 돌려본다면 자신들이 진짜라고 믿었던 것들이 조작된 허위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플라톤이 당시의 정치지도자들과 소피스트들이 허상을 만들어서 죄수들의 정신을 빼놓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허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 허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지난 번 이야기 한 바 있듯이 상징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허상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성전을 증축하고 복잡하고 화려한 제사를 지냅니다. 제사장들은 저마다 옷들도 화려합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검소한 옷으로 허위를 만듭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내면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이 말하고 행하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 거짓임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또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3) 깨달음2 : 존재를 만나다.

그렇게 쇠사슬에서 풀리고 뒤돌아 본 사람은 동굴 안에 있을 수 없습니다. 한때는 세계의 전부라 느꼈던 동굴이 이제는 좁고 답답한 곳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동굴 입구를 바라보면 새하얀 빛만 보입니다. 그 빛을 따라 동굴을 나가게 되면 한 동안 눈이 부셔 눈을 제대로 뜰 수 가 없습니다. 평생 동굴에만 있어서 밝은 빛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점점 빛이 익숙해지면 그 빛에 반사된 나무, 강, 동물들이 보입니다. 동굴에서 보던 그림자가 아니라 형형색색 저마다 고운 빛을 띤 실체를 바라봅니다.

동굴에서 보던 그림자는 허상이고 동굴 밖에서 보던 자연이 진짜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이 고유한 빛깔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태양 때문임을 알게 됩니다. 태양은 동굴 속에 그림자를 만들어내던 모닥불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동굴 밖에서 태양 아래 자연을 본 사람은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사자나 호랑이의 그림자가 나타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집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과 세상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세상의 풍조가 만들어내는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고 권위에 굴종하지 않습니다. 참 세계를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이미 참 세상을 아는 사람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자신이 사는 세상이 진실이 아니라 가상이며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4) 죄수들에게 돌아가다.

그렇게 참 세상을 만난 사람은 다시 동굴에서 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굴 안이 세계의 전부이며, 그림자가 존재라 생각하는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이 생각납니다. 그들이 불쌍합니다. 그들에게도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시 동굴로 돌아갑니다. 깨달은 자는 죄수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죄수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대부분 받아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평생 동굴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사람에게 동굴 밖은 두려운 곳입니다. 동굴 밖에는 죽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깨달은 자를 핍박합니다. 사회를 어지럽히고 선동하는 자로 정죄합니다.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바로 깨달은 자처럼 핍박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깨달은 자가 되어 핍박을 받습니다. 니체에게는 짜라투스트라가 깨달은 자 입니다. 깨달은 자는 깨닫지 못한 자들이 사는 세상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핍박의 대상이 됩니다. 이것이 깨달은 자의 숙명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사랑하며 진리를 전하는 것이 깨달은 자의 몫입니다.

마무리

성경에는 “고개를 들어”, “눈을 들어”, “눈을 크게 뜨고” 라는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다른 시각, 다른 차원으로 인도하는 말입니다. 세상에 매몰되지 말고 동굴 밖의 참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소돔으로 떠난 뒤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전쟁을 치르고 난 뒤 하나님은 다시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눈을 들어 하늘의 별들을 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고개를 들어서 위를 바라보라고 합니다.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하고 있는 세상 걱정과 근심들이 작게 느껴집니다. 우주를 품으면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않습니다. 세상 근심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사라지고 변하는 것을 붙들어 두려는 생각도 사라집니다. 영원을 사모하게 됩니다. 우리 캘거리한인연합교회 교인들 모두 고개를 돌려 바라 볼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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