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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나로 강하게

(고린도후서 12:7-10) 내가 받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것을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1. 누구나 약점이 있다.

일리아드에 나오는 아킬레우스는 천하무적의 용장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인간이 아니라 바다의 요정 테티스입니다. 테티스는 아킬레우스를 낳고는 스틱스 강에 담가 천하무적의 몸을 만들어 줍니다. 그는 자라면서 켄타우로스 족의 현자 케이론에게 검술과 지식을 배웁니다. 전쟁에 참여할 때에는 올림푸스의 신이자 대장장이인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갑옷으로 무장합니다. 당대에 어떤 인간도 이런 아킬레우스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단 하나의 약점이 있었는데 바로 발목입니다. 테티스가 아킬레우스를 스틱스강에 담글 때 그의 양쪽 발목을 잡고 담그다 보니 아킬레우스의 발목에는 스틱스 강물이 묻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킬레우스는 결국 자신의 발목에 화살을 맞아 죽게 됩니다. 천하무적의 영웅도 약점이 있으며 결국 그 약점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현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슈퍼맨입니다. 아킬레우스가 신의 아들 이듯이 슈퍼맨은 외계종족입니다. 1938년에 슈퍼맨이 처음 등장할 때만 하더라도 슈퍼맨의 능력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습니다. 기차보다 조금 빨리 달리고, 빌딩을 뛰어 넘지만 날지는 못하고, 큰 바위를 들지만 행성을 들지는 못하고, 자동차보다 빨리 달리지만 빛의 속도로 달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슈퍼맨의 능력은 점점 커져서 상상을 초월할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슈퍼맨이 초월적인 힘을 가질수록 인기가 점점 떨어졌습니다. 화끈하긴 한데 공감가지 않는 캐릭터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슈퍼맨을 만든 DC코믹스는 자신들의 대표캐릭터가 인기를 잃어가자 라이벌 회사인 마블코믹스의 존 번 작가를 영입합니다. 존 번은 슈퍼맨의 능력치를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슈퍼맨에게 치명적인 약점을 하나 만듭니다. 그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크립토나이트라는 광석입니다. 이 광석 앞에서 슈퍼맨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오래 노출될 경우에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슈퍼맨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생기자 슈퍼맨은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약점이 있어야 극의 긴장도도 높아지고 재미가 있겠지요. 사사기에 등장하는 삼손도 그렇습니다. 유일한 약점인 머리카락 때문에 결국 힘을 잃고 두 눈이 뽑힙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위기에 빠지는 이야기를 좋아할까요? 천하무적이어서 모든 악당들을 멋있게 압도적으로 물리치는 것이 재미있지 않을까요?

 

2. 하나님께서는 왜? 겸손

아마도 천하무적은 비현실적이고 인간적이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약점이 자신을 파멸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침팬지 무리에서 대장이 약점을 보이게 되면 라이벌 관계에 있는 녀석이 철저히 물고 늘어집니다. 결국 그 약점 때문에 대장의 자리에서 쫓겨나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천적들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새끼들, 상처입은 동물들은 자신의 천적들에게 먹이가 되고 맙니다. 바다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상어가 나타났을 때 등을 보이거나 출혈이 있으면 공격을 받습니다.

사람들의 사회나 자연계나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약점을 감추려고 하지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춘다고 감추어지면 약점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약점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을 보세요. 바울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었지만 예수의 제자들 보다 더욱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도입니다. 그는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면서 로마의 시민입니다. 그는 가말리엘 문하로 누구보다 높은 학식을 갖춘 지성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의 공식 대변인인 것처럼 놀라운 계시들을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영적 능력을 지녔던 사람입니다. 그런 바울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본인이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바울이 육체의 가시 때문에 세번이나 간곡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도 살리는 기도가 정작 자신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을 ‘육체의 가시’를 지니고 살았습니다.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간질, 안질, 말라리아, 편두통, 정신병 등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만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바울이 이 육체의 가시로 인해 지독하게 고통을 당했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왜 이런 약점을 허락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하나의 답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을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놀라운 능력을 가진만큼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야곱도 그렇습니다. 야곱은 잔꾀가 많은 사람입니다. 겸손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러나 환도뼈가 부러지고 불구의 몸이 되면서부터 진중하고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저는 이 겸손이 하나님 앞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안계시는 것처럼 마음대로 까불다가 하나님께서 주신 약점, 혹은 하나님께서 치셔서 겸손 해졌다는 이야기에 저는 반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으로 우리를 굴복시키실 것이면 처음부터 자유의지를 허락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니면 하나님께서도 지능의 한계가 있으셔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이렇게 될 줄 예상하지 못하셨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의 굴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을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가장 잘 난 사람은 하나님도 없고 사람도 없습니다. 반면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강점을 보는 눈이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왜? 사랑과 연대

그래서 자신의 약점은 퍼즐 한 조각의 움푹 들어간 부분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에게는 비어 있고 채워지지 않은 공간입니다. 내 스스로 채우려고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다른 조각이 와서 그것을 메워줍니다. 그리고 다른 조각의 약점은 또 다른 조각이 와서 메워줍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연대할 때 하나의 그림이 완성됩니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 사회는 약육강식의 원리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원리도 있습니다. 타인의 약점을 물어 뜯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타인의 약점을 사랑으로 보완해주고 함께 연대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4. 정말 하나님께서?

앞에서는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완전한 존재로, 약점이 있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을 가정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고 약점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약점을 가진 인간의 책임이 아니라 약점을 가진 인간으로 만든 하나님의 책임인 것 같습니다. 착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전가된 책임을 가볍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이유들을 만들어 대는 것 같습니다. 겸손하게 하기 위함이다, 서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만들기 위함이다 와 같은 말들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의 약점이 불안한 자유의지들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항력이 현저히 약한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아이가 약점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를 가지기 전 부모의 생활 습관이 좋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부모가 젊을 때 자주 먹던 인스턴트 음식의 어떤 성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음식을 만든 제조업자는 그 첨가물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유통기간, 맛, 단가의 문제 때문에 첨가물을 포기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의 안전과 건강보다 이익을 더 생각하게 된 것은 부모의 영향이 클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돈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가치를 그 제조업자에게 가르쳤을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선택한 나쁜 결정들이 누군가에게 약점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심리적인 약점도 마찬가집니다. 자유의지와 자유의지가 만나는 가운데 나쁜 선택, 어리석은 선택들이 서로 맞물리다 보면 그것이 누군가의 심리를 취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5. 약점을 강점으로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잘 난 사람이 아니라 약점 많고 허점투성이인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대표적으로 성질 급하고 무식한 베드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급한 성정을 용기로 바꾸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왼손잡이 에훗을 사사로 삼으셨습니다. 당시 왼손잡이는 큰 약점이었습니다. 장자가 아닌 차남, 남자가 아닌 여자, 큰 지파가 아닌 작은 지파를 들어 쓰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도 겸손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기 위해 그러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단점, 약점들을 가만히 보면 진짜 약점이 아닌 것들도 많습니다. 차남이란 것이, 여자라는 것이, 왼손잡이라는 것이 오늘에 와서는 약점이 아닙니다. 우리가 약점이라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사회와 집단이 만들어 낸 낙인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낙인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물론 정말 약점이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신체의 결함이나 심리적 불안정은 단순히 낙인효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나쁜 의지의 선택들로 인한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것 마저도 강점으로 바꾸는 역사들이 있습니다.

1980년 3월 캐나다 횡단 마라톤을 도전했던 테리 폭스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횡단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감동하고 지지했습니다. 그는 골육종이라는 암에 걸려 오른쪽다리를 절단했습니다. 절단한 오른쪽 다리 대신 의족을 하고 하루에 42km씩 달렸던 것입니다. 그는 달리기를 시작한지 144일째만인 9월 1일에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 동안 암세포가 폐에까지 전이되어서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도전은 실패한 것 같지만 그가 목표했던 국민 1인당 1불씩 총 2,400만불을 암연구를 위해 모금하겠다는 목표는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22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지만 지금까지 매년 9월이면 그를 기념하여 마라톤 대회가 열립니다.

앞의 영웅 이야기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듯이 우리는 완전무결한 사람 보다 약점과 결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사람에게 지지를 보냅니다.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과정에는 우리의 의지와 이웃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합니다. 기독교는 역설의 종교라고도 말합니다. 죽음을 통해 삶을 얻고, 약함으로 강하게 하는 종교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도 약점을 강점으로 바꿀 뿐만 아니라 이웃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꿀 수 있도록 사랑으로 돕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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