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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나르시시즘

(사도행전 5:38-39) 그래서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바는 이것이오. 사람들에게서 손을 떼고, 이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오. 사람들의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것이면 망할 것이요, 하나님에게서 것이면 여러분은 그것을 없애 버릴 없소. 도리어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봐 두렵소.그들은 그의 말을 옳게 여겼다.

(마가복음서 9:38-40) 요한예수말하였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지 말아라.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쉬이 나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1. 지구가 중심이 아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나오기 약 300여년 전에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기하학을 이용해서 태양이 지구보다 크다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그러나 수백년 후 로마의 국교가 기독교가 되면서 성경의 원리에 더 들어 맞는다고 보았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정설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후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지동설이 다시 등장하기 까지는 아리스타르코스의 시대로부터 1,800년이 지난 후입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우리가 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지구에서도 지중해 권역이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사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도 아리스타르코스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관장 에라토스테네스입니다. 기독교의 유아론적 나르시시즘으로인해 중세 천년을 암흑기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 천년 동안 과학기술은 거의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지동설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도 신성모독으로 처벌받을 일이지만 오늘날 기독교인 중에 천동설을 주장한다면 같은 기독교인들 안에서도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저는 창조과학회에서 주장하는 젊은 지구론과 같은 이론도 이런 기독교 나르시시즘의 유치한 발상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구는 어떻습니까? 약 2조개 이상(2016노팅엄 대학교 발표) 되는 은하들이 펼쳐져 있는 우주 가운데, 우리 은하는 약 5,000억개의 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은하의 지금은 약 10광년 정도 되는데 우리의 태양계는 은하의 중심에서 약 3광년정도 떨어져서 은하 중심을 공전하고 있습니다. 태양은 1초당 220km속도로 공전하는데 우리 은하를 바퀴 도는데 약 2억5천만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작은 항성 태양의 세번째 행성 지구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 믿었던 천동설은 얼마나 유치한 생각인지 느낄 있습니다. 그러나 철없는 아이와 같은 유치한 생각들이 때로는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지구가 우중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믿었던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신념에 반대되는 주장들을 처절했습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갈릴레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과학자가 실험과 연구를 통해 지동설을 주장했음에도 종교인이 신념에 반한다고 종교재판에 회부된 것입니다. 그는 "맹세코 포기하며, 저주하고 혐오한다"고 선선언한 후에야 죽음을 면할수 있었지만 가택연금형에 처해졌고 자신의 모든 저서는 금서목록에 올랐습니다.

교회는 진리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 사람들을 종교회의에 회부하여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많은 여자들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마녀사냥을 당했습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종교와 그 지도지들은 하나님의 종이 이니라 하나님의 수호자 노릇을 자처하는 교만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교만과 독선이 권력을 만나면 무서운 재앙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역사에서 드러납니다.

초기 종교회의를 주최한 사람이 누군가를 생각해보시면 압니다. 성직자들이 아니라 황제가 종교회의를 주최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국교화 하는 대신 하나의 기독교를 원했습니다. 하나의 기독교가 자신의 황권에 명분을 제공해준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권력과 야합한 종교의 나르시시즘은 무서운 칼이 되어서 다양성을 파괴하고 사람을 죽였습니다.

2. ​제한구원설과 신천지구원설

저는 보수교단에서 배우고 자랐습니다. 보수교파인 만큼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선교라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 따라 최선을 다해 선교를 하지만 그 열매를 거두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라 믿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작은 계기에도 교회를 나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 이죠.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가운데 있는 예정과 선택을 이야기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우리로 서는 거기 까지라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선택하시고 누구를 선택하지 않으셨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다만 결과로 추측할 뿐이며 선택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제한속죄설은 칼빈의 5강령(전적 타락(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제한적 속죄 (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혜 (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 (Perseverance of Saints) 하나입니다. 특히 제한적 속죄와 불가항력적 은혜는 개혁주의자들의 자의식에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칼빈의 개혁주의 교파 안에 있는 사람들은 확고한 선민 의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택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선택받지 못하고 유기된 사람들이 어떤 노력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는 것처럼 선택받은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어떤 짓을 해도 하나님의 선택을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창기 흑인 노예와 인디언들은 백인 개혁주의 신앙인들에게 선택받지 못한자로 간주되었습니다. 죽으면 결국 지옥의 자식들이니 노예로 부려먹든 팔아먹든 큰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종교전쟁의 적들(카톨릭, 재세례파 등)은 당연히 죽여도 되는 지옥의 자식들이라 생각했습니다.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개혁주의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행을 저지른 인물들이 있습니다. 록 펠러나 히틀러를 위시한 나치들도 그들 중 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은 불가항력적으로 이미 선택받은 자고, 자신의 적들은 버림받은 지옥의 자식들이니 이런 악행에도 양심의 가책을 들어줍니다. 이러한 강력한 자기중심적 자의식을 바탕으로 개혁주의 기독교는 성장해왔습니다. 현재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 남부의 복음주의 보수층들, 전쟁광이라 불리는 워싱턴 정계의 매파들도 복음주의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자기중심적 자의식을 보면 콜롬비아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생각납니다. 그는 콜롬비아의 대통령을 꿈꿀 만큼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은 아니면 납(Plata o plomo)”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세계를 키웠습니다. 누구든 돈을 쥐어 주고 자기 편을 만듭니다. 돈을 받지 않고 저항하는 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합니다.

요즘 개혁주의에서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이단 “신천지”는 어떤 면에서 개혁주의와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들은 초창기 하나님이 예정하신 14만 4천명에 들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겁을 줍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세가 커져서 14만명이 넘어가자 새로운 해석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명목상 교회의 일원이 된다고 구원자 명단에 드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신자로써 헌신해야 구원자 명단에 든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명목적인 14만4천명설을 폐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자의식은 제한적 속죄를 받은 예정된 구원자라는 개혁주의 자의식보다 더 강력하고 배타적이고 파괴적입니다.

3. ​우리를 반대하지 않으면 우리를 지지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중심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신은 본질적으로 유목민의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 또한 로마 시민이 아닌 갈릴리 사람입니다. 사두개인이 아닌 변방의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그의 제자들도 마찬가집니다. 황제의 권력과 함께 중심부에 자리잡으면서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은 다시 자발적으로 중심에서 변방으로 나온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도 가말리엘의 합리적인 판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 자처하지만 그것을 우리가 판단할 수 없고, 그 결과를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역 밖인 판단을 자신들이 잘못해서 죄를 지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도 가말리엘과 비슷한 대처를 하고 계신 것을 봅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제자들이 보고 제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뜻 밖에도 막지 말라고 하십니다. 지신의 이름으로 능력을 베풀고 자신을 욕할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며 내버려 두라고 하십니다.

가말리엘의 합리적인 판단으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고, 예수님의 개방적인 판단으로 그를 따르는 무리가 늘어났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의 제자라 자처하면서 자기 중심적이며 옹졸한 우리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의식 과잉 속에 벌어지는 종교의 광기를 묵인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자녀들인 것은 맞습니다만 우리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교단은 장자 교단이다, 우리 교단이 진리를 제대로 수호하고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교회나 교단의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집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내 중심에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저마다 다르고 다양한 면들을 좀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좋고 나쁨, 선과 악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창녀와 세리들과 함께 하셨지만 그들의 행위를 용인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가치판단도 맥락적으로 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 그리고 다양함의 기준을 선악간의 기준으로 착각하지 않는 것에 지혜가 있습니다. 나의 형제들은 나와 다른 존재들입니다. 그들의 다름을 그대로 인정할 때 우리는 마틴 부버가 말한 것처럼 나와 너의 관계로, 존재와 존재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참 우리라 말할 수 있고 참 공동체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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