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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6 19:12

[설교요약] Give and Give

조회 수 567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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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 and Give

(전도서 11:1-2) 너는 물질을 후하게 나누어 주어라. 언젠가는 그것이 너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이 땅에 무슨 재난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요한일서 4:10-12)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제물로 삼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토록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1. 연옥과 면죄부

카톨릭에서는 내세관은 개신교와 다릅니다. 그 중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연옥 교리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지옥과 천국만을 말하지만 카톨릭에서는 지옥과 천국 사이에 연옥이란 것이 있습니다. 연옥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가톨릭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연옥(燃獄, 라틴어: Purgatorium)로마 가톨릭교회의 내세관 중의 하나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에 따르면,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기 때문에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았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해 일시적인 정화를 거치는 상태를 말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030항)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보속을 다하지 못한 소죄들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죽으면 자신의 죄를 씻고 정화의 과정을 거치는 단계로 연옥을 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연옥의 기원을 유대인들이 드리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에서 찾습니다. 가톨릭 성경 마카베오 하권에 보면 이런 관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초기 신학자들도 연옥에 대해 말합니다.

연옥교리의 장점은 죽어서도 죄를 해결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이교도거나 대죄의 경우는 연옥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곧장 지옥행입니다. 그렇다면 개신교의 연옥 없는 내세가 더 매력적일것 같기는 합니다.

그래도 연옥 교리는 교회입장에서 매우 유용한 교리라고 할수있습니다. 부모나 조상들이 연옥에서 덜 고생하고 천국행을 앞당긴다는 명목으로 돈이나 어떤 정성을 요구하기 좋지요. 대사나 보속을 명분으로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누릴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십자군 원정입니다. 십자군에 참전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보속행위로 보았습니다. 교황청에서도 대놓고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대사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대사가 다른 말로 면죄부입니다.

십자군 원정 이후로 면죄부는 교황청의 히트상품이 되었습니다. 교황 레오10세 때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비 마련을 위한 면죄부 판매는 매우 유명합니다. 당시 독일의 대주교 ‘테첼’은 이렇게 설교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죽은 친척들과 친구들이 여러분을 향해 애원하며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오. 우리는 무서운 고통 중에 빠져 있는데 당신들은 적은 돈으로 우리들을 건져낼 있지 않소!여러분은 저들을 건져내기를 원치 않습니까?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애원하며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동전이 여러분의 부모들을 구해낼 수가 있습니다. 동전이 속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영혼이 연옥에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이런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면죄부를 샀습니다. 연옥에서 천당으로 가는 특급열차 티켓이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당시 평민들에게 흔하게 팔던 면죄부는 4분의 1플로린이었다고 라는데 이 돈이면 몇 달을 쓰지 않고 일해서 모아야 하는 돈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돈을 주고도 사는 이유는 연옥의 생활이 생각보다 길고 고통스럽게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헨리 8세가 가지고 있었던 기도문을 이런 기억이 있다고 합니다. 주님의 기도 5회, 성모송 5회, 사도신경 1회를 헌신적으로 바침으로써 보속을 치르면, 연옥에서의 52,712년 40일을 탕감받을 있다”

연옥에서 보내는 총시간이 아니라 기도 한번에 탕감받는 세월이 5만년이 넘습니다. 그런데 몇달치 일한 돈으로 면죄부를 사면 연옥에서의 수십만년을 탕감받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오히려 면죄부가 헐값이라 생각될 것입니다.

 

  1. 개신교의 축복권

오늘날 보면 교회들도 온갖 명목의 헌금을 만들어서 하나님의 축복권을 헌금을 사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도 그렇게 변질된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런 종교꾼들은 내세나 축복을 담보로 해서 권력과 돈을 추구합니다. 무당이 부적파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들입니다. 이런 종교와 종교꾼들이 말하는 기본 원리에는 기브앤 테이크식 사고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네가 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신도 너를 위해 구원이나 축복을 줄것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기브앤 태이크식 사고에 길들어 있는 종교인이 제법 나옵니다. 바리새파나 사두개파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또한 옛 님께서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탕자의 형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종교꾼들은 기브앤 테이크식 종교를 선전하는데 성경을 이용합니다. 우리가 앞서 읽은 전도서의 본문도 자주 애용되는 본문입니다. 그리고 또 유명한 본문으로는 말라기 3장 10입니다.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성전에 바쳐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내가 하늘 문을 열어 쌓을 곳이 없도록 너희에게 복을 쏟아 붓나 붓지 않나 나를 시험해 보아라.”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도 그렇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서 빚을 탕감해줍니다. 그렇게 탕감해주면 주인에게 쫓겨났을 때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본문들을 보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기브앤 테이크의 관계로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종교꾼들은 이런 구절들을 악용하기 좋습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기브앤 테이크식 장사를 합니다. 불교에서는 기와불사가 있습니다. 절을 짓는데 필요한 기와를 비싼 돈 주고 사서 거기에 자신 혹은 가족의 이름을 쓰고 소원을 씁니다. 공덕을 쌓는다는 이유로 돈이나 현물을 바치는 다양한 보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연옥교리와 면죄부처럼 불교에는 49제가 있습니다. 죽은 자는 저승에서 칠일동안 일곱번 명부시왕들에게 재판을 받은 후 환생을 한다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가족들은 정성을 들여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 제사가 좋은 재판을 받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종교에서 내세와 죽음, 고인을 상품으로 팝니다. 위안과 평안을 제공하는 대신 실질적인 금전이나 재화를 요구합니다.

 

  1. 솔라 그라치아(sola gratia)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기브앤 테이크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서 적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나 누가복음에 나오는 내용들은 상부상조, 나눔과 베풂에 대한 내용이라 할수있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내용도 성직자의 생활과 성전유지를 위한 인간들 사이의 일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돈이 필요하실까요? 우리의 노력과 충성으로 하나님의 부족한 부분을 만족시킬수 있을까요? 조금만 생각해도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무한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실까요?

그래서 마틴 루터는 “솔라 그라치아(sola gratia)”를 말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기브앤 테이크가 아닙니다. 무엇을 바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인 그 분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써 기쁨과 감격 가운데 할수있는 것은 바로 그 분의 값없는 사랑 덕분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변질시켜서 자기들의 배를 불리고 권력을 드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말을 경계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오직 은혜로 시작합니다. 주시고 돌려받는 사랑이 아니라 댓가없이 온전히 주시는 사랑으로 시작합니다.

이 시작점이 분명해야 교회에서도 분란이 없습니다. 우리의 헌신은 면죄부를 사기 위한 헌신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기브앤 태이크식 헌신이 아니라 기브앤 기브식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 기브앤 태이크식 헌신은 안하니만 못할때도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는 게 없다 보면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 교회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데”, “내가 낸 헌금이 얼만데”

단편소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어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아이랑 나무가 있었습니다. 둘은 서로를 좋아했습니다. 아이는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으로 왕관을 만들어 숲속의 임금 노릇도 하고 나무가지에 그네를 달아 놀기도 했습니다. 피곤하면 나무 그늘에 누워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점차 자랄수록 나무를 찾아오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장성한 아이가 나무를 찾아왔습니다. 나무는 기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타고, 내 가지를 올라타도 좋고, 왕관도 만들수 있게 해줄께. 나랑 놀자!”

아이가 말합니다.

“나는 이미 커서 너랑 그렇게 놀 수 없어. 난 돈이 필요해. 돈을 줄 수 없겠니?”

나무가 말합니다.

“난 돈은 가진게 없어. 대신 내 사과를 팔면 너에게 돈이 될꺼야. 그러면 넌 행복해질꺼야.”

아이는 나무의 사과를 모두 따서 내려갔습니다. 나무는 아이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참을 시간이 흐른 뒤 아이는 나무를 찾아왔습니다. 나무는 반갑고 기뻐서 함께 놀자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나이가 들어서 놀수가 없고 집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꺾어서 집을 만들라고 합니다. 그러면 행복해질꺼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나무의 가지를 모두 잘라가지고 가버립니다. 나무는 아이에게 도움이 된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다시 세월이 한참 흐르고 제법 나이가 든 아이는 나무를 찾아왔습니다. 나무는 여전히 아이를 반기며 자신과 함께 놀자고 합니다. 이번에도 아이는 놀수 없다고 거절하고는 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나무는 자신의 남은 몸통마저 내어줍니다.

“너는 내 몸통으로 배를 만들면 멀리 떠날 수 있어. 그러면 넌 행복해질꺼야.”

아이는 나무의 몸통으로 배를 만들어 멀리 떠납니다.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또 다기 세월 흐르고 노인이 된 아이가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를 찾아옵니다. 나무는 안타까워하며 말합니다.

“이젠 너에게 사과도 무엇도 줄수가 없구나.”

아이가 말합니다.

“이가 좋지 않아 사과는 못먹어. 다만 편히 앉아 쉴 수있었으면 좋겠네.”

나무가 말합니다.

“앉아서 쉬기에는 나무 그루터기만한게 없지. 이리와서 앉아 쉬렴.”

아이는 그렇게 했습니다. 나무는 그것으로 행복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값없이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놀이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른이라는 핑계, 바쁘다는 핑계로 놀지는 않고 원하는 것만 취합니다. 그래도 그분은 우리의 행복을 바라시고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이가 들더라도 그 분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아이입니다. 언제든 주님잎에 돌아와서 함께 신나게 놀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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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중이 2019.12.17 22:29
    사실 우리가 가진 것들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인데 유용하게 쓰라고 주신 것들을 나눔에 인색하고 조금 나누면서도 생색을 내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 나누기도 하는 등 참 치사한 꼴을 많이 만듭니다. 보다 많은 이들이 금전적, 심적인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면 좋을텐데 요즘 같아서는 자꾸 그런 세상과는 멀어지는듯 해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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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에르 2019.12.23 21:42
    큰뜻을 품으면서도 작은 일에 요동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것 같아요. 몸으로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만으로도 녹록치 않다보니 영원을 사모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섬기는 것이 더욱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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