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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사람아

(느헤미야 9:31) 그러나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을 끔찍이도 불쌍히 여기셔서, 멸망시키지도 않으시고,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1. 한 남자와 한 여자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전라도 출신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한 곳만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강직한 성품이지만 융통성은 없습니다. 말을 돌려 할 줄 모르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쏟아 냅니다. 정직하고 착한 사람이지만 강하고 직선적인 어투로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경상도 출신입니다. 사람들과 섬세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예민하고 섬세하면서 융통성이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돌려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사람 사이에서 상처도 잘 받습니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을 했습니다. 둘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하나도 맞는 것이 없었습니다. 신혼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남자의 여자에게 가지는 불만은 꿈을 향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할 망정 사사건건 사소한 간섭과 잔소리로 심려를 끼친다는 것입니다. 결국 꿈을 이루면 가족이 함께 기뻐하고 나눌 것인데 말이죠. 같은 꿈을 가지고 함께 나아갈 파트너가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는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이 서운하고 화가 납니다.

여자의 불만은 꿈만 쫓아 산다고 바빠서 가정의 일들과 아이들의 일들을 소홀히 하는데 있습니다. 꿈꾸는 것이야 말릴 수 없지만 자신의 꿈이 최우선이라면 왜 결혼해서 자신을 외롭게 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조금만 더 가정의 일에 신경 쓰고 자신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면 좋겠습니다 마는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어 보여 우울하고 답답합니다.

서로 평행선을 달리며 시간이 지날수록 골이 깊어지기만 하는 두 사람은 결국 아이들이 제법 컸을 무렵 헤어집니다. 오랜 시간 두 사람은 아이들 때문이라도 참아보려고 했습니다만 더 참다가는 제명에 죽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남자는 센스 없고 좋은 말 할 줄도 모르고 자기 고집이 아주 센 나쁜 남편입니다. 그에게 여자는 큰 뜻을 품은 남자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고 사사건건 염려를 끼치고 옹졸하고 답답한 아내입니다.

그들 사이에서 자란 아들의 기억속에는 가족이 다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 기억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결국 엄마와 아빠는 헤어집니다. 가족의 붕괴는 아들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아들은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잘 자라서 이곳 캐나다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아들이 접니다.

저에게는 이와 같이 성향이 정반대인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십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두 분이 그나마 그때 헤어지신 것이 다행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사랑하는 아버지가 헤어져서 남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자신과 동생을 두고도 그런 결정을 한 부모님들이 이기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물론 지금은 두 분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두 분도 서로가 서로에게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정의와 사랑

한해 재수해서 1996년에 신학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는 미국 북장로회의 선교헌금으로 지어진 미션스쿨입니다. 그러나 당시 총장이 학교를 사유화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학교를 들어가서 얼마되지 않아 학교사유화 반대를 기치로 내건 총학생회 주도의 데모에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당시에 자신의 보신을 위해 바른 소리 못하고 조용히 숨어있던 신학교수들에게 배신감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총장을 비롯한 학교 당국과 관계자들이 다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에도 더욱 큰 분노를 느꼈습니다. 본관 점거농성에는 심한 몸싸움도 있었습니다.

그런 일들로 기독교 윤리, 기독교의 정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은혜를 마치 면죄부처럼 여기며 여전히 불의를 저지르는 목사들과 기독교인들을 볼 때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불타는 심정이 있었습니다. 이 땅에 정의가 물같이, 공의가 하수같이 흐를 날을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교단을 알면 알수록, 한국교회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불의가 만연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사람들에게 한국교회가 망할 것이라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저를 ‘예레미야 조’ 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를 만든 손봉호 교수도 당시 점점 부패하고 불의가 만연하는 기독교를 바로 세우는데 일조하고자 ‘기윤실’을 만들었는데 그동안의 수고에도 자신들의 노력은 실패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고 참담해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필요한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대에 필요한 목회자는 예레미야나 하박국과 같이 공의와 정의를 외치고 실천하는 목회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이 마음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때보다 더 못한 오늘날 한국교회를 본다면 더욱 절실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우여곡절과 굴곡진 시간을 보내면서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기독교인에게 더욱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생각을 요즘은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이미 일년전에도 같은 주제로 설교를 한 바가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당한 유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서 구두수선공 부부인 이반과 마뜨료나가 미하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본문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끔찍이도 불쌍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습니다.

 

  1. 의인의 자리에 앉기 전에 죄인이었을 때를 기억하라

오늘 본문 앞부분에는 예수님께 베드로가 다가와 이렇게 묻습니다.

“주님, 저에게 죄를 지은 형제에게 제가 몇 번을 용서하면 될까요? 일곱 번이면 될까요?”

라고 묻습니다. 이렇게 묻는 베드로의 모습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와 많이 다릅니다.

처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그는

“저는 죄인입니다. 죄인입니다. 제발 저를 떠나주십시오.”

라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당시에는 비참한 죄인으로써 낮은 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자신의 형제를 얼마나 용서해야 하나를 고민하는 의인의 자리에 서 있는 베드로를 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중심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첫 대답은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 주십니다. 일흔번이 일곱번이 되도록 용서하란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베드로의 본심을 들추어 내는 예를 드십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만달란트 빚진자의 비유입니다. 만 달란트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돈이지만 주인은 그를 불쌍히 여겨서 아무런 조건 없이 탕감해 줍니다. 그러나 주인이 만 달란트 빚진 종이 백 데나나리온 빚진 친구를 옥에 가두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종을 다시 불러들입니다. 그때 그 주인이 만 달란트 빚진 종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베드로에게 이렇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의 형제가 너에게 조금 빚진 것을 생각하기 이전에 네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빚을 진 자였는지 다시 기억해 보거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너의 큰 빚을 조건없이 탕감해주신 은혜를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께서 먼저 너를 끔찍이도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그것을 잊지만 않는다면 너의 형제에 잘못에도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겠느냐?

이것이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1. 불쌍한 사람들

노파심에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공적인 자리에서 부정과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고자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소박하게 나와 나의 가족, 이웃을 돌아보며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따라 생각해보면 저희 아버지는 참 불쌍한 분입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정치싸움에 휘말려 일찍 돌아가시고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와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셨던 분입니다. 그런 분에게 관계의 소소한 기쁨과 관심은 사치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너무 없다 보니 그런 부분에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기쁨도 모르고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느라 고생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면 참 불쌍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도 참 불쌍한 분입니다. 세 딸 중 둘째로 태어나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고 할머니 손에서 컸습니다. 형편은 어렵지 않았지만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항상 주변의 눈치를 보며 자라야 했던 어머니, 결혼마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변의 인정과 눈치로 해야 했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참 불쌍합니다.

저는 지금이 되어서야 맹자가 왜 측은지심을 인간이 가진 근본 성품으로 보았는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가 됩니다. 맹자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측은지심 비인야 (無惻隱之心 非人也)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 인지단야 (惻隱之心 仁之端也)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짐의 극치이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저는 이렇게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히 보면 불쌍하다.

오래 보면 안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와 친척들, 친구들, 교회동료들, 이웃들이 나에게 했던 섭섭한 일들 때문에 마음문을 닫기 전에 원망하기 전에 한번 더 그들을 돌아보십시오. 종적으로는 그들 삶의 역사를, 횡적으로는 그의 현재상황과 처지를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그렇게 모나게 깎이게 된 좋지 못한 역사들이 있을 것입니다. 모나게 된 상황과 처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들여다보면 불쌍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타인뿐 만 아니라 자신도 그렇게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십시오. 내 스스로가 용납되지 않는 일들, 자괴감이 들던 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시고 이렇게 말씀해 보세요. “OO야 참 불쌍하구나. 참 안스럽구나.” 우리의 구원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지신 그런 불쌍한 마음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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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중이 2019.11.24 23:01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개인도 가족도 교회도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조직 속에도 나름의 사연과 시름과 고민이 반드시 있다는 그 사실이 곧 우리의 인생인 것 같습니다. 물론 만족을 모르는 우리의 탐욕도 그 원인 중 하나이겠지만 우리의 무지하고 나약하고 천한 본성이 늘상 성령의 법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교회를 다니며 조금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ㅎㅎㅎㅎㅎ. 최소한 교회에 오는 때 만큼은 뇌와 간과 쓸개를 모두 비우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섬기고자 노력하면 좀 더 나은 신앙 생활이,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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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에르 2019.12.03 07:05
    뇌와 간과 쓸개를 마음대로 비웠다 채웠다 할 수 있으면 득도한 도인이겠는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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