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린 김신묵 회고록: 북간도 독립운동과 기독교 운동사

by 운영자 posted Jul 1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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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연합교회를 통해 캐나다 임마누엘 신학교를 졸업한 문재린 목사와 부인 김신묵권사의 회고록이 나왔습니다.

문영금 문영미 엮음. [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 서울: 삼인, 2006


이 책이 우리 교회에 비치되어 있으니 관심있으시면, 문영환 의장께 문의 바랍니다.


문재린 목사는 캘거리에 있는 최초의 한인교회 창립예배를 주재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한인연합교회도 거슬러 올라가면, 문목사님과 역사적으로 연관됩니다.

아래는 출판 기념회

아래는 국민일보 기사

http://www.kmib.co.kr/html/kmview/2006/0628/092023399923111412.html
북간도서 서울까지 사랑과 정의를 외치다… 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




기린갑이와 고만녜는 문재린 목사와 김신묵 여사의 어릴 적 이름이다. 두 사람은 자신의 이름보다는 문익환 문동환 목사의 부모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김신묵 여사는 1895년 함북 회령에서,문재린 목사는 1896년 종성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은 각각 네살과 다섯살 되던 해 한날 한시에 부모님 손에 이끌려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로 이주,광복 후까지 그곳에서 치열하게 살다 쉰이 넘어 남한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1980년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땅에 사랑과 정의를 이룩하고자 한결같이 살았다.

두 사람의 아들 문익환 목사는 단절돼버린 북간도의 역사와 기독교 운동의 산증인인 부모님이 살아오신 발자취가 파묻히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아버지께 회고록을 쓰시라고 권유했다. 문재린 목사는 1976년께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고 자신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음에 감사하는 뜻으로 ‘옹기장이손의 흙덩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김신묵 여사는 남편이 글을 쓰면서 자꾸 옛일을 물어보자 응답하다가 아예 당신도 직접 써야겠다고 생각해 글쓰기에 참여한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직접 쓴 회고록은 초안 단계에 그쳤다. 문재린 목사와 김신묵 여사는 민주화·통일운동의 소용돌이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에 회고록을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각각 1985년과 1990년 하늘나라로 떠났다. 회고록 완성을 생의 마지막 과제로 생각했던 맏아들 문익환 목사마저 1994년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를 가까이 지켜봐왔던 큰딸 문선희씨,꼼꼼하게 여쭤가며 할머니의 구술을 녹음테이프에 남긴 맏손자 문호근씨도 2001년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두 사람의 회고록은 30년 가까이 미완성 상태에 있었다.

회고록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건 두 사람의 손녀인 문영금 문영미씨에 의해서였다. 손녀들은 조부모의 삶과 신앙적 신념을 정리,역사의 증언으로 남기는 일은 한 가족사를 넘어선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은 자료들과 구술 테이프,사진들을 꼼꼼히 정리하고 보완해 책을 완성해냈다.

이 책엔 우선 북간도 조선인들의 삶이 풍부하게 녹아있다. 오늘날 남한에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북간도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구한말 그곳에서 실제 살았던 사람들,있었던 일에 대해 우리는 고구려만큼도 알지 못한다. 이 책은 이런 공백을 훌륭하게 메워주고 있다. 북간도라고 하는 지정학적 조건에서 살아온 한민족 공동체의 삶이 실감나게 복원되고 있다.

특히 문재린 목사의 회고록은 자신의 전기적 서술이자 20세기초 북간도로 집단 이주,새로운 삶을 펼쳐간 문씨 문중의 가족사이자 개인 및 가족의 삶과 얽힌 한민족의 사회사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그런 한편 김신묵 여사의 회고록은 구술로 복원된 ‘북방 여성의 삶’이다. 김 여사의 회고록엔 당시의 일상생활과 풍습,문화가 세세한 부분까지 묘사돼 있다. 이를 통해 당시 북간도 한인들이 살았던 집의 구조,한인 여성들의 옷차림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쇠똥으로 벽을 만들고 해마다 구들을 손보았으며 여성들은 삼으로 베를 짰다. 생활사와 문화사적 가치가 만만치 않다.

김신묵 여사는 북간도에서 여성지도자,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여자 비밀결사대원으로 활약했다. 광복 후 남한에 내려와서는 “가정에서 살아온 것밖에 없다”며 겸손해 했지만 유학이다,독립운동이다,목회다 하며 남편이 밖으로만 나돌 때 집을 지키고 살림을 일구며 아이들을 키워낸 것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

이 책에서는 또 캐나다 교회의 개방적인 선교활동,이를 통해 현재 남한 기독교의 주류로 비쳐지는 친미적 보수 기독교와는 다른 기독교 전통이 한국 사회에 생성된 점,명동촌을 중심으로 벌어진 독립운동과 여성들의 생활사 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져 읽는 재미가 녹록지 않다.

문재린 목사의 일생을 관통한 ‘평신도 운동’의 실체를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얻는 소득이다. 문재린 목사는 1961년 목회에서 은퇴하고 60년대를 평신도 운동에 전념했다. 그는 늘 “교회는 목사의 것이 아니라 평신도의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다. 그래서 평신도신도회를 조직하고 남신도회전국연합회 조직을 선도했다. 그에겐 지상의 불의와 싸우는 것도 천국운동이었다. 그의 이런 신념은 아들 문익환 문동환 목사에게도 전수되었음은 물론이다.

“한국 교회 가운데 할 일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아는 교회가 매우 적다. 좋은 목사를 모시고 많은 신도를 모아서 예배를 성대히 드리면 모두인 줄 안다” “많은 한국 기독교도에게는 천당 가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고 예수 믿기만 하면 천당 간다는 것이 신앙의 전부이다. 예수님이 공생활에서 하신 그대로 행함이 우리의 책임이요 참신앙이라는 생각은 자리잡을 데가 없다”(본문 247쪽)는 문재린 목사의 지적은 오늘날의 한국 교회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는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의미는 “문익환 문동환 등 우리에게 귀에 익은 사회 유명인사들의 가족 이야기를 듣는 데 있지 않고 그 가족 이야기를 통해 20세기 한민족이 겪은 ‘도전과 응전’,빛과 그림자를 파노라마처럼 보게 되는 데 있다”고 말한다. 민족사 정치사 사회사 교육사 여성사 교회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은 물론 일반 기독인들도 필독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박동수 편집위원 d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