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과 투사 그리고 분노

by Jung posted Nov 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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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죄)를 믿게 되면 반드시 따르게 될 엄청난 두려움, 공포, 자기 혐오, 죄책감을 의식하면서 생존하기는 어렵다. 불안과 공포는 우리를 삼켜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에고에게 해결책을 청하게 된다.


에고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부인(denial)과 투사(projection)이다. 



부인 (denial)

부인과 억압은 같은 말이다. 그것은 단순히 죄책감과 죄의 느낌, 우리가 느끼는 모든 공포심이 없다고 믿는 것이다. 자각하지 못하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눌러버리는데, 바로 이 눌러버리기(억압)가 부인이다. 기적수업에서는 억압 대신 부인을 사용한다.

쉬운 예로, 청소하기가 너무 귀찮아 장판 아래로 쓰레기를 밀어 넣어 버리고는 쓰레기가 없다고 믿는 것이다. 겁에 질린 타조가 무언가 두려운 대상을 만났을 때 모래 속에 머리를 박아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더 힘든 상황에 처하게 한다. 장판은 울퉁불퉁해서 불편해지고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게 될 것이다. 타조는 위험에 처하고 잡혀 먹힐지도 모른다.  그 다음 방법으로 에고가 제시하는 것이 바로 투사이다.


투사 (projection)


기적수업에서 투사보다 그 이해가 중요한 개념은 없다. 투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기적수업의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다.


투사란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서 그것이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투사는 말 그대로 던져버리는 것, 무언가에서 혹은 무언가를 향해 세게 내던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투사할 때 하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보는 죄를 꺼내어 이것은 실은 내게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바로 너에게 있다. 죄인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다. 내 고통과 불행의 책임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에게 있다고 떠넘기는 것이다.


에고의 입장에서는 “너”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느끼는 불행의 책임을 떠넘겨 투사할 수 있는 한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상관이 없다. 가족, 친구, 정부, 학교, 선생, 정치가, 사회제도, 경제적 여건, 종교 등등 그 대상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이것이 에고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죄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분노 (anger)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 안에서 죄를 꺼내어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투사하고 내 불행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분노는 이러한 투사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이다. 우리는 투사의 대상을 공격하고 가능하면 멀리하려고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분노나 판단 혹은 비판을 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자신 안에서 부인한 것을 다른 사람 안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안에서 본 죄를 그 사람에게 투사하고 거기서 그것을 공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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