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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기야는 왜?

(예레미야서 34:4-5) 유다 왕 시드기야야, 나 주의 약속을 들어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시드기야야, 너는 칼에 찔려 죽지 않고, 평안히 죽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네 조상 곧 너보다 먼저 살았던 선왕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향불을 피웠던 것처럼, 네 죽음도 슬퍼하여 향불을 피우며 ‘슬픕니다, 임금님’ 하면서, 너를 애도하여 조가를 부를 것이다. 이것은 내가 친히 약속하는 말이다. 나 주가 하는 말이다.”

(예레미야서 39:6-7) 바빌로니아 왕은 리블라에서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처형하였다. 바빌로니아 왕은 유다 의 귀족들도 모두 처형하였다. 그리고 왕은 시드기야 의 두 눈을 뺀 다음에, 바빌론으로 끌고 가려고, 그를 쇠사슬로 묶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기본덕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 이진식 목사님께서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욕심과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과 용기로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증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순종은 그리스도인의 미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먼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악한 세력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순종을 요구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오늘은 성경의 역사와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 올바른 순종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까 합니다.

유다왕국의 말기는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주변의 강대국들로부터 많은 침략을 받았고, 제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 했습니다. 정세가 꼭 구한말의 한국과 닮아 있습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은 시드기야입니다. 시드기야 또한 살아남기 위해 고민이 많았던 왕입니다. 이 시대에 유다에서 활약한 선지자가 예레미야입니다. 예레미야는 선대왕 때부터 유다에서 경고의 메세지를 전했습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위기에 처할 때 마다 몰래 구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와 독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말에 순종하기보다 거짓선지자 하나냐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멸망할 것이니, 큰 재앙을 피하려면 항복하라고 하는데 비해 하나냐는 바빌로니아의 그 왕을 꺾어버리겠다고 합니다. 말로만 따지면 하나냐의 말이 얼마나 달콤합니까? 그러나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을 누구나 압니다. 이미 앞서서 바빌로니아의 침공을 받은 적 있는 유다의 국력은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드기야 왕은 어리석게도 하나냐의 말을 듣고 바빌로니아에게 저항합니다. 그 결국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시드기야 왕은 밤중에 몰래 도망가다 잡혀서 결박당한 채로 자신의 두 아들과 유대의 귀인들이 사형당하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두 눈이 뽑힌 채로 바빌로니아에 끌려가 평생 옥에서 보내게 됩니다.  

우리는 쉽게 시드기야를 어리석고 악한 왕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쉽게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시드기야가 왕이 되는 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시드기야는 요시야 왕의 셋째 아들입니다. 그의 아버지 요시야는 유다의 마지막 전성기를 누린 왕입니다. 요시야의 치세를 끝으로 유다는 점점 쇠락해 갑니다. 요시야가 이집트 왕 느고와의 전투에서 죽자 왕위를 두고 회의가 벌어집니다.

요시야에게는 네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 아들 요하난은 이름만 언급됩니다. 남은 세 아들 중에 둘째가 여호야김, 셋째가 시드기야, 넷째가 여호아하스입니다. 유대도 상자를 우선시하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요하난에 왕위를 계승해야 하지만 뜻밖에도 넷째 아들인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오릅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지만 몇 가지 사실로 추측을 해본다면 이렇습니다. 일단 첫째는 제외하고 나머지 세 형제는 한 배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아닙니다. 둘째 여호야김의 어머니는 소비자에게 셋째 시드기야와 넷째 여호아하스의 어머니는 하무달입니다. 요시야의 사망 당시 그의 부인 중에 하무달이 가장 영향력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넷째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는데 역할을 한것 같습니다. 그러면 같은 어머니의 아들이자 여호아하스의 형인 시드기야는 왜 요시야의 계승자가 되지 못했을까요?

아마도 사람들이 보기에 왕의 자질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올랐지만 석달만에 이집트 왕 느고에 의해 포로가 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둘째인 엘리아김을 왕위에 올려서 친이집트 정권을 만듭니다. 그리고 11년을 통치하는데 통치 말기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쳐들어와 3년 동안 조공을 바칩니다. 그러다가 반기를 드는데 학자들은 당시 바빌로니아에서 내란이 일어난 것으로 추측합니다.

내란은 쉽게 정리가 되고 느부갓네살은 반기를 든 유다를 재차 침략랍니다. 이러는 와중에 여호야김은 갑작스레 죽어버리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릅니다. 여호야긴도 석달만에 느부갓네살은 포로가 되어 바빌로니아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이 왕위에 앉힌 사람이 시드기야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왕위에 오른 시드기야는 예레미야가 충고를 듣지 않고 바빌로니아를 배신했다가 처참한 결말을 맞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사실을 추론할수 있습니다. 첫째로 시드기야는 왕이 될만한 자질이 충분치 않고 유약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한번 배신을 당한 느부갓네살이 정복지의 왕으로 능력좋고 인기많은 사람을 왕으로 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로 여호아하스가 이후로 엘리아김을 통치기간 동안 궁 내에는 친이집트 파가 장악했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바빌로니아에게 항복하라고 권고하는 예레미야가 그토록 많은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

셋째로 유약한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믿으면서도 그의 말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는 왜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을까요?

첫째로는 친 이집트 파가 득세하고 있는 귀족들 때문입니다. 여호야김 시대에 자리를 잡은 친이집트파 귀족들은 느부갓네살 왕이 꼭두각시로 세운 시드기야 왕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왕으로써 권위를 세워야 하는 시드기야는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시드기야가 예레미야를 보호하고 있는 중에도 찾아와 예레미야를 내 놓으라고 성토하는데 시드기야는 이를 물리치지 못합니다.

둘째로 여전히 영향력이 있어 보이는 이집트 때문입니다. 시드기야 9년에 유다를 침공한 느부갓네살 군대가 이집트의 공격으로 포위를 풀고 잠깐 퇴각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시드기야가 이집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셋째로 시드기야의 유약함과 자존심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때 시드기야는 심성이 고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제법 착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신의 동족이 같은 동족 아래서 노예로 사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 개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노예 소유주들인 귀족들의 반발로 무산되고 맙니다. 친 이집트파 귀족들이 예레미야를 여러 번 죽이려 할 때도 시드기야가 사람을 시켜 살려주고 왕의 뜰에서 보호해 주기도 합니다. 그는 여린 사람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의 말을 따르지 못했던 것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친이집트파 귀족들, 바빌로니아에 있는 여호야긴과 그의 세력들이 자신을 해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불안하고 두려운 가운데 나타난 하나냐의 말은 시드기야에게 힘과 위로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말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고 따르고 싶었겠죠. 만약 여러분이 시드기야의 위치에 있다면 이러한 어려움을 물리치고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있었을까요? 쉽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시드기야를 그냥 악하고 유약하고 어리석은 왕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서 배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시드기야는 그냥 어리석고 나쁜 사람이라 그랬지만 자신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시드기야의 전후 상황을 잘 살펴본다면 우리 또한 시드기야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느낄 때 배움이 있습니다. 우리 또한 서로 상반되는 선택지가 있을 때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냐가 거짓 선지자라는 것을 알고 보지만 시드기야의 입장은 다릅니다. 시드기야의 입장에서는 하나냐도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입니다. 한참 고민이 있는 여러분에게 유명한 목사 두 사람이 찾아와서 상반되는 의견을 내놓는다면 여러분도 쉽게 판단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자리와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귀족들과 여호야긴 세력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하나냐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른 분별력과 함께 용기와 결단이 따릅니다. 가끔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뜻도 있지만 대체로는 지혜로운 분별력으로 이해할 수 있는 뜻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 뜻을 가리는 데는 깊은 신앙과 용기도 필요하지만 세상을 이해하는 지혜와 분별력도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냐는 왜 거짓 예언을 하였을까요?

이것도 정답을 내릴 수 없지만 몇 가지 사실들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냐는 기브온 사람입니다. 기브온 사람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가나안 사람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전쟁을 치룰 때 꾀를 써서 화친을 맺은 민족이 기브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유대민족의 국가인 이스라엘이나 유다에서 기브온 사람들은 2등 백성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하나냐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가문에 한계를 극복하고 주류로 진입하고자하는 열망이 컸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언제 바뀔지 모르는 꼭두각시 왕 보다 귀족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 출세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강하게 있다 보면 자신이 하고 있는 예언이 정말 하나님이 주신 예언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속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컴플렉스와 욕망을 가진 하나냐에게 시드기야는 끌렸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래도 만약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의 말을 믿고 결단했다면 그렇게 비참한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2,500년 전의 이야기로만 듣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따르는 것이 쉽지 않은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교훈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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