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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롭고 평화로운 말세

(디모데후서 3:1-5) 그대는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말세에 어려운 때가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사랑하며,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그대는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1. 우리가 알고 있던 말세

어릴 적 요한계시록을 자주 읽었습니다. 당시 믿음이 너무 좋아서 계시록을 읽은 것은 아닙니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에 방에서 혼자 읽으면 내용이 오싹한 것이 무서운 호러와 판타지 소설을 읽는 기분이라 그랬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말세때에 닥쳐올 재앙과 고난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령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8: 7~12)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우박과 불이 피에 섞여서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땅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푸른 풀이 타버렸습니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타는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그래서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다에 사는, 생명이 있는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부서졌습니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나가 횃불처럼 타면서 하늘에서 떨어져서, 강들의 삼분의 일과 샘물들 위에 덮쳤습니다.

별의 이름은 '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물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고, 많은 사람이 물을 마시고 죽었습니다. 물이 물로 변하였기 때문입니다.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의 삼분의 일과 달의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입어서, 그것들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고, 낮의 삼분의 일이 빛을 잃고, 밤도 역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일곱천사가 나팔을 불때마다 지구상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큰 재앙들이 닥칩니다. 한때 이런 해석도 있었습니다. 가 나팔을 불 때 떨어졌던 “박과 불이 피에 섞인 것”은 네이팜탄이나 미사일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떨어졌던 “불타는 큰 산”은 핵미사일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떨어졌던 “쑥이라 불리는 횃불처럼 타는 큰 별”은 화학탄을 말하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저도 이런 해석에 심취해서 세기말의 암울한 분위기를 한껏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기말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고 21세기도 벌써 20년이 지나갑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일어나고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극빈층의 비율은 반으로 줄었고, 세계 인구의 다수가 중간 소득 국가에서 산다고 합니다. 자극적인 내용들만 뉴스가 되는 사회에 있다 보니 착시효과가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말세로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2. 풍요롭고 평화로운 말세

현재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간식시간이 되면 어려운 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는 장로님이나 권사님은 이것저것 먹어보라고 권하시지만 우리들은 안 먹는다고 손사래 칠 때가 많습니다. 요즘은 못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많이 먹는 것이 문제가 되는 사회입니다. 어떻게 하면 적게 먹느냐 고민합니다. 그리고 운동을 한다고들 체육관에 가서 돈을 주고 무거운 것을 들었다 놓습니다. 예전 같으면 부역으로 끌려 나가서 원치 않아도 무거운 돌이나 나무를 들어 날라야 하는데 돈을 주고 쇳덩어리들을 들었다 놓았다 반복을 하는 세상입니다.

라디오에서 TV가 나올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것 같았습니다. TV가 있는 집에 사람들이 모여 함께 TV를 보는 진풍경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컬러TV가 나오고 가정마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집집마다 TV가 보급됩니다. TV의 대중화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발전시키는데 원동력이 됩니다. 초창기 TV시절에는 채널 3-4개였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수십개의 채널이 있고 해외채널까지 포함하면 수백개까지 될겁니다. 얼마나 볼게 많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 세상인지 모릅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TV보는 데 소모합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우리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원하는 컨텐츠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TV는 가지고 다닐 수 없지만 스마트폰은 언제나 가지고 다닐 수 있기때문이죠.  그리고 TV의 기능은 단순한데 스마트폰은 전화, 문자, 쇼핑, 게임 등 다양한 기능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보니 우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필수품이 스마트폰이 되었습니다. 조그만 스마트폰 하나가 100만원 가까이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값을 치르고 삽니다.

이제 스마트폰은 내 가족이나 친구보다 나와 더 오래도록 가까이 있는 물건입니다. 길을 걸을 때도 어떤 사람은 운전 중에도 화장실에서도 잠자리에서도 나와 같이 붙어 다닙니다. 이렇게 같이 붙어 다니는 것은 스마트폰 그 자체의 매력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연결해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봤던 TV프로그램 중에 이런 실험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주일 동안 집 밖을 나오지 않고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실험입니다. 물론 전화로 음식배달 주문도 가능하고 컴퓨터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일주일 사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것 같은데 스마트폰이 있는 지금은 한달도 충분히 집밖을 나가지 않고 살수 있을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제 곧 유토피아가 도래하는 것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말세는 이미 지나가버린 것일까요?

 

3.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저는 지금이 새로운 말세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는 시기라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말세가 아닙니다. 전쟁과 재해가 일어나는 폭력적인 말세가 아닙니다. 평화로운 말세, 풍요로운 말세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이 가져가 할 기본적인 세계관으로써 세가지를 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나와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소망으로써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며 근본입니다.

둘째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타인에 대한 사랑과 존중입니다.

셋째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과의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과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며 선용하는 것입니다.

더욱 핵심만 말한다면 보이지 않는 소망을 품은 자”그리스도인입니다. 제가 예전에 상징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소망을 품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많은 상징들이 있습니다. 십자가도 그렇고 성경책도 하나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십자가 형상, 성경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의 상징일 뿐입니다. 그래서 실체를 체험하고 깨닫는데는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대에 와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점점 하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쉴새 없이 쏟아지는 스크린의 데이터를 처리하는데도 우리의 뇌가 과부하 걸릴 지경입니다. 그리고 인내란 것도 점점 꼰대의 미덕정도로 치부되는 것 같습니다. TV시대만 하더라도 프로그램이란 것이 방송국에서 짜준대로 순차적으로 진행됩니다. 내가 원하는 컨텐츠를 보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스마트폰 세대들은 인내할 필요가 없습니다. 보고싶은 컨텐츠에 바로 접속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다가 지루하거나 재미없으면 금방 다른 컨텐츠로 옮겨갑니다.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는 이런 디지털 중독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뇌의 가소성으로 인해 우리는 쉽게 환경에 적응합니다. 좋은 쪽으로 적응하기도 하고 나쁜 쪽으로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우리의 뇌는 이상 깊이 사고 하고, 묵상하고, 반성하는 기능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오랫동안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능력을 잃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다 보니 쏟아지는 컨텐츠도 자극적이고 단순합니다. 너머에 복잡한 현실과 진실은 외면하게 됩니다.

오늘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시대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큰 특징 중 하나로 공감능력의 부제를 듭니다. 깊은 공감은 내가 아닌 타인의 말과 생각을 인내하고 경청하며 숙고할 때 가능합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쉽게 내 중심에서 타인을 판단하고 재단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말씀에서 말세 때에 일어날 일들 중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자기만 사랑하는 이기주의가 스마트폰 중독 시대에 딱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SNS에서는 자기를 뽐내기 바쁩니다. 멋진 여행과 풍경, 맛있는 음식과 분위기 있는 카페 그 가운데 있는 잘 생기고 예쁜 나가 있습니다. 2NE1의 노래제목처럼 내가 제일 잘나간다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이런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저는 말세의 위기가 닥쳤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에 있어 기본적인 세가지 요소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보이는 스마트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소망에 대해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너지니 나와 사람, 나와 자연의 관계도 순리를 따르지 않고 역리를 따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선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악용해서 자연 즉 돈과 재화를 소유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근본이 무너질 때 오늘 본문과 같은 말세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소망,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여러분의 세계관에 중심이 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위해 자연을 선용하며 생명을 존중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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