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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 21~25) 총독이 그들에게 물었다. "이 두 사람 가운데서, 누구를 놓아주기를 바라오?" 그들이 말하였다. "바라바요."

그 때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는,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요?" 그들이 모두 말하였다.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빌라도가 말하였다. "정말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일을 하였소?" 사람들이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빌라도는, 자기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과 또 민란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고 말하였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니, 여러분이 알아서 하시오."

그러자 온 백성이 대답하였다. "그 사람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시오."

기택-충선-기우-기정, 근세-문광, 박사장-연교

1. 선을 넘지마

영화 <기생충>은 대표캐릭터들 간의 분명한 데칼코마니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이중으로 데칼코마니 설정을 볼 수 있는데요. 먼저 반지하에 사는 기택과 윗동네 대저택에 사는 박사장의 저택의 데칼코마니입니다. 박사장 저택의 창은 통유리로 훤하게 밖이 내다 보입니다. 아래로는 푸른 잔디밭과 나무, 위로는 드넓은 하늘이 보입니다. 박사장이 사는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반면 기택이 사는 반지하의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전기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가난한 동네 풍경입니다. 밤이면 취객이 창문 앞 전봇대에서 노상방뇨를 해서 오줌 지린내가 집안까지 풍깁니다. 그러나 기택의 집보다 못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박사장 집 지하에 숨어사는 근세의 거처입니다. 그곳에는 창이 없습니다. 맑은 공기와 햇살을 느낄 수조차 없는 곳입니다. 근세는 한때 한국에서 열풍이 불었다가 순식간에 사그라든 대만 대왕 카스텔라 사업에 했다가 망하고는 자신의 부인이 일하고 있는 박사장네 지하에 몰래 숨어들어 살고 있습니다. 대만 카스텔라는 창업자본이 적게 드는 반면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많은 서민들이 창업했던 사업 아이템입니다. 그러나 한 대중매체 고발프로그램에서 식용유 과다사용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면서 한순간에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처음 영화에서 각각의 위치와 선을 지킵니다. 지하에 사는 근세는 밖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지하에 오래 있다 보니 어느 새부터는 제집처럼 편안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조차 모르는 박사장에게 고마움 마음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부인 문광도 가정부로서 자신의 본분에 충실합니다. 선을 넘지 않고 일을 잘합니다. 그래서 박사장이 좋아합니다. 기택도 마찬가집니다. 박사장의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선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택은 박사장이 누리는 부유함과 안락함을 동경합니다. 박사장네 가족이 집을 비울 때는 기택의 식구들이 박사장의 저택을 자기집처럼 누립니다.

박사장을 상대로 기택과 근세는 선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기택과 근세사이는 다릅니다. 근세는 한때 기택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몰락해서 기택보다 아래인 지하에 살고 있지만 기택의 선을 지키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기택의 아내 충숙은 근세의 아내 문광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갈등은 더욱 고조됩니다.

결국 을과 병의 싸움이 모든 갈등의 시발점이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로마인 빌라도 총독과 유대인들과 예수가 나옵니다. 예수 또한 유대인입니다. 그러나 유대인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유대인을 압제하는 빌라도가 아닙니다. 같은 유대인들입니다. 최상위의 포식자 계급에 있는 사람들은 을, 병, 정들과 엮이는 것 조차 좋아하지 않습니다. 선을 넘어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물론 역사에서는 프랑스 혁명이나 볼셰비키 혁명과 같이 을이 갑을 죽이고 승자가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갑이 된 사람들은 다른 을들이 힘을 모아 자신들을 죽이고 자신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을들이 선을 넘어오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혐오합니다. 이후 그들은 을을 견제하는 좋은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을과 병끼리 경쟁하고 싸우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말콤 엑스가 말한 것처럼 백인 주인들이 집노예와 들노예로 나누어서 서로 감시하게 만든 것도 그런 구조입니다.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여 길들일 때 친일파를 이용한 것도 그러한 원리입니다. 기업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어 차등을 두는 것도, 최저 임금자와 소상공인들 간에 최저임금을 놓고 갈등하게 만드는 것도 그러한 구조입니다. 을과 병들이 서로 싸우는 동안 갑은 을과 병들의 노동력의 소산물들을 기생충처럼 가로채 갑니다.

이 영화에서 겉으로는 근세의 가족과 기택의 가족이 착한 박사장의 가족에게 기생하는 기생충처럼 보이지만 큰 그림에서는 박사장이 이들의 도움을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이기도 합니다.

 

2. 착한 부자가 아니라 부자라서 착한 것이다

이 영화는 기존의 영화나 문학이 취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대중예술에는 돈 많은 부자를 악하게 그리고 돈 없는 서민을 착하게 그립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박사장의 가족들을 겉으로 보면 딱히 나쁜 사람이 없습니다. 박사장은 기택이나 문광, 충숙에게 젠틀합니다. 단 선을 넘지 않는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박사장의 부인 연교는 박사장보다 더 착해 보입니다. 쉽게 사람들의 말을 믿고 속습니다. 순진하고 순수해 보입니다. 그래서 기택이 박사장과 부인은 돈도 많고 사람도 좋다고 하니 그의 부인 충숙이 부자라서 착한 거라고 비꼽니다. 충숙의 말처럼 연교는 돈이 많으니 좀 속아도, 돈을 낭비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요리도 못하고 살림을 못살아도 돈이 해결해 줍니다. 가진 돈으로 여유를 부리고 선심을 쓰면 사람들도 금방 따릅니다. 그러나 근세와 같은 처지는 한번 망하면 다시 일어나기 힘듭니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사람은 여유가 없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기택의 가족은 돈을 벌기 위해 사기를 칩니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정당화합니다.

반면 지하의 근세는 박사장을 존경하기까지 합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부자라 그렇습니다. 정작 박사장은 이들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며 관심도 없습니다. 이런 모습은 현실에서도 종정 볼 수 있는데요. 가난한 서민들이 삼성이란 기업을 신성시 하거나 재벌 총수그룹의 가족들을 왕족처럼 생각하며 존경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업이나 재벌들이 불법을 저질러서 뉴스에 오르내리면 나라라도 망할것처럼 그들을 걱정하고 두둔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정작 재벌들은 그들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오히려 근세가 망한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론재벌의 황포, 높은 임대료를 받는 건물주의 횡포가 있을 것입니다. 부자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면서도 부자를 존경하는 아이러니가 이렇게 현실에도 존재합니다.

이천년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천년전 유대에서는 세 가지 신분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첫째는 빌라도와 같은 로마관리 들입니다. 그들은 지배국가의 시민이자 관료입니다. 이들이 갑입니다. 둘째는 헤롯이나 제사장들처럼 로마관료의 인정아래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거기 사는 일반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은 착쥐와 억압의 대상입니다. 예수도 마지막 계급으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같은 계급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사람들도 유대의 서민들입니다. 이들 중 다수는 태극기 부대처럼 일당 받고 나와서 시키는 대로 외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의 매수에 넘어간 사람들입니다. 당장 하루 일당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의 이러한 구도는 냉소적이지만 현실적입니다. 예수의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가난하다고 착한 것이 아닙니다. 가난이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가난이 아름답다고 미화하는 사람들은 한때 가난했으나 지금은 부자인 사람들입니다. 부자가 되어서 여유를 누리는 그들의 기억에는 가난한 시절의 서러움과 팍팍함은 잊고 몇 안되는 즐거운 추억만 간직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가난하다고 무조건 불행하라는 법은 없지만 가난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고 악하게 만드는 큰 요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부자들의 가난했던 시절의 추억은 쓰레기통에 처박기도 아깝습니다.

 

3. 선을 넘는 자, 예수와 그리스도인

기택의 아들 기우는 수석을 들고 근세를 죽이려고 합니다. 수석은 기우를 비롯해 기우가족의 출세 욕망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돌로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근세를 죽여야만 박 사장의 가족 옆에서 기생하며 집노예처럼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세 또한 순순히 당하고 있지 않습니다. 근세는 결국 기우의 수석으로 기택을 쓰러뜨리고 기정을 죽입니다. 기택이 다치고 기정이 죽고 근세도 결국 죽어 널브러진 상황에서 박사장은 기택에게 키를 던지라고 외칩니다. 박사장은 바퀴벌레들끼리 싸워서 죽어 널브러진 현장을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근세가 죽든 기택이 죽든 박사장은 자신의 영역에서 선을 넘어 벌이는 이들의 아귀다툼을 혐오할 뿐입니다. 그런 박사장을 기택이 죽입니다.

한때 박사장의 집에서 자기 집처럼 양주를 마시며 호기를 부리던 기택은 이제 반지하보다 더 깊은 지하로 유폐됩니다. 그리고 기우는 그 집을 사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게 됩니다. 이 영화는 지극히 염세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코미디스러운 설정이 비극적인 현실을 희화화 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을 죽이라고 했던 유대인들 과도, 자신을 잡아 죽인 로마인들과도 차원을 달리 합니다. 그는 사랑과 평등의 메시지로 을이 갑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갑과 을이 없는 세상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정신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까지 적용됩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압제하에서 을로 지냈지만 다윗과 같이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서 로마를 이기고 자신들이 갑이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로마는 갑의 신분을 유지하게 위해 유대인들을 탄압했습니다.

결국 모두가 갑이 되기 원하는데 예수는 갑도 을도 없는 세상을 말하니 갑들도 을들도 예수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런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려운 사람들 위해 기부하고 봉사하는 것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갑과 을이 없는 평등한 사회,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 존중을 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분입니다. 종교라는 권력을 이용해 교회 안에서 갑 노릇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종교인일 뿐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갑과 을, 부자와 가난한 자, 인종과 성별의 담과 벽을 허물고 넘는 사람들입니다. 담과 벽을 허문 자리에 사랑과 평화를 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구조와 상징에 굴복하는 자가 아니라 부수는 자들입니다. 개혁가요, 혁명가들입니다. 저를 비롯해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와 삶을 따라 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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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2019.09.28 11:03
    잃어버린 자들을 간절하게 찾으시고 또 갑과 을이 없는 그런 사회를 이루기 원하신 예수님의 그 크고 깊은 뜻이 이 시대에 더욱더 값지게 느껴집니다. 반면에 그러한 뜻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그에 비례하여 더 부족해 보입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전해지는 예수님의 복음이 정말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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