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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 없는 자아는 없다

(고린도전서 12: 23~27) 우리는 몸 가운데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부분을 더욱 조심스럽게 감싸고 또 보기 흉한 부분을 더 보기 좋게 꾸밉니다.

그러나 보기 좋은 지체들에게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도 변변치 못한 부분을 더 귀중하게 여겨주셔서 몸의 조화를 이루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몸 안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모든 지체가 서로 도와 나가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아파하지 않겠습니까? 또 한 지체가 영광스럽게 되면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다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지체가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8: 19, 20) 내가 [진정으로] 거듭 너희에게 말한다. 땅에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1. 연고 없는 자아는 없다

저는 개인주의자입니다. 국가나 민족보다 개인이 먼저라 생각합니다. 대체로 실존주의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개인주의자라 봐도 무방합니다. 그러다보니 설교에서 저의 성향이 반영됩니다. 얼마전 했던 ‘nobody or somebody’라는 설교에서는 자발적인 nobody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세상의 인정, 세상의 가치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설교 ‘나와 우리’에서는 신 앞에선 단독자로서 개인의 중요성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요즘은 특히 공동체, 국가, 민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만한 때인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은 대법원의 위안부 보상 판결에 불만을 가진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연일 시끄럽습니다. 예전과 달리 시민들을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매우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재계도 이번 사태에 대해 힘을 모아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인사들의 친일 발언과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나경원을 비롯한 자유 한국당은 힘을 함께 모아야 할 시점에 오히려 일본보다 문재인 정부 때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몇몇 보수교회 목사들은 식민지 시절이 우리에게 축복이었다는 망언을 설교시간에 합니다.

그와 더불어 이곳 캘거리의 CN드림 게시판에서도 이 문제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습니다. 한국의 분위기와 달리 이곳에서는 현정부를 비판하는 글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어떤 분이 쓴 글에 대한 답글 중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요지는 “당신 캐나다 시민 아니냐? 한국 국적 버리고 여기 와서 복지혜택 다 누리고 살면서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지느냐? 그러려면 한국 가서 항일운동 해라.”

캐나다에 사시는 한국 사람들, 캐나다 시민권자, 영주권자이신 분들에게 조국과 민족의 문제는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1세대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내 부모님의 조국이자 내가 나고 자란 고향입니다. 이곳 캐나다에서 영주권과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전에 한국의 시민이라는 자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큰 공동체인 국가의 경우는 우리가 일상에서는 쉽게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호흡하는 공기와 같습니다. 있을 때는 모르지만 나빠지거나 없어지면 바로 개인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그것을 경험한 분들이 우리 선조들입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면서 조선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당하고 매맞고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오니즘에 경도되어서 국가에 대해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나라 없는 사람들의 서러움을 긴 역사 속에서 뼈 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라를 잃고 난민신세가 되어 버린 시리아 사람들도 나라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고대로부터 국가가 패전하게 되면 패전국가의 시민들은 졸지에 노예가 돼버립니다. 국가가 사라지면 개인의 인권과 권리도 지킬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개인으로서 누리는 자유와 인권은 내 스스로 획득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피를 흘려 싸우고 희생한 값비싼 대가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연고 없이 혼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정직하게 기른 농산물을 먹고,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랍니다. 수도, 전기, 도로 등 국가가 관리하는 여러가지 공공재를 편리하게 사용하면서 자신의 꿈이나 자아실현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타자와 공동체 없이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는 각각 하나의 지체입니다. 저마다 고유한 개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지체가 몸에서 떨어져서는 살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장기와 기관들이 연결되고 소통될 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사회 철학자들 중에 공동체주의자들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자들에게 이렇게 비판합니다. “세상에 연고 없는 자아가 어디 있는가?”

 

2. 세상은 저절로 발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공동체는 저절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굴곡은 있었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발전하는 국가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당연히 저절로 발전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시리아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어떨까요? 브라질도 마찬가집니다. 한때 자유와 번영을 누렸던 나라들이 독재국가가 되어서 개인의 자유가 탄압받고 경제적으로 극심하게 어려운 나라가 되는 일이 오늘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지나면서 점점 약해지고 결국 멸망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국가를 비롯한 모든 공동체들이 그렇습니다. 저절로 이루어 지는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가만히 두면 퇴보합니다. 그리고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한국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대한제국이 일본과 을사늑약을 맺고 외교권을 빼앗기는데 앞장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박제순, 권중현이 그들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을사오적이라 합니다. 이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모두 장관들이며 대법관 출신입니다. 일본의 장관과 대법관이 아닙니다. 조선의 장관과 대법관들인데 나라를 파는데 앞장섰습니다. 대법관이 되고 장관이 되면 뭐합니까? 그 권력으로 나라와 백성을 팔아 자신의 배를 불리는데 사용한 이들을 보면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합당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면 많은 민족지도자들이 나라를 되찾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습니다.

을사오적과 대비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같은 시대에 법관을 했던 박상진입니다. 그도 유력한 집안의 자제였고 법관으로 임관했지만 일제치하에서 법관이 되는 것은 불의에 앞장서는 것이라 생각하여 법관을 그만두고 항일운동가가 되었습니다. 물론 일본의 달콤한 회유가 있었습니다. 을사오적처럼 출세하고 잘 사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상진이 이런 유혹을 뿌리친 이유는 일제치하에서 자신이 재판해야 될 사람들은 분명히 일본군에서 말하는 ‘불령선인’이기 때문입니다. ‘불령선인’이란 마음 속에 원한을 품고 난을 일으키는 조선인을 말합니다. 일본 입장에서 볼 때 원한을 품은 조선인은 누구일까요? 바로 일본에 저항하여 독립을 추구하는 항일운동가들입니다. 박상진은 일제치하에서 판사를 한다는 것이 독립운동가를 재판해서 죄를 물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직을 하고 말았습니다. 박상진은 판사를 그만두고 쌀가게를 열어서 독립군의 연락처이자 자금을 마련하는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박상진은 이후 대한광복회를 조직해서 활동했습니다. 결국 박상진은 일본군에 붙잡혀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그의 후손들은 일제치하에서 뿐만 아니라 해방된 후에도 친일파가 세력을 얻은 한국에서 오랜 세월 고생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회영 선생은 당대에 거부였지만 재산을 다 팔아 독립운동에 헌신했습니다. 이들 형제와 가족은 독립운동을 위해 살다가 굶어 죽기도 하고 일본군에게 죽기도 합니다.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일본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을사오적들은 일본의 작위를 받고 일본이 빼앗은 토지를 하사 받아서 떵떵거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백성들은 일본군의 수탈에 굶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삼일만세운동 때 목숨을 걸고 만세를 불렀던 우리의 선조들, 독립유공자들의 피 값입니다. 여기 캐나다에 와 있는 한인들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캐나다인이니까 한국일에 신경을 끄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요?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서 다양한 국적을 지니고 있고 수십대를 거쳐왔지만 본인들이 유대인임을 잊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번영을 위해 힘을 씁니다. 이들은 개인의 자유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압니다. 나아가 공동체 안에서 이룩해온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님을 잘 압니다. 목숨 걸고 지킨 선조들의 피 값이라는 것을 압니다.

 

3.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앞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연고 없는 자아는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더더구나 기독교인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 안에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자매와 형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은 한국인으로서 캐나다 시민으로서 캘거리한인연합교회의 가족으로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그리고 무엇을 남기겠습니까?

많은 순국선열들은 자신의 희생으로 조국의 자긍심을 후손들에게 남겼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값없이 조국과 자유를 물려 받았습니다. 일본의 치졸한 무역보복 앞에서 좌와 우, 종교와 신념을 떠나 하나로 뭉쳐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하나로 뭉쳐서 시민이 해야 할 일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만이 우리의 자녀들도 우리의 조국과 그 조국에서 태어난 부모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선조들은 그들의 후손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들 또한 많은 박해와 고난을 이겨내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우리가 믿는 이 믿음과 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사도들과 그 이후의 많은 믿음의 선조들에 피 값 위에 서 있습니다. 그저 누리기만 하고 아무런 책임의식이 없다면 우리 다음 대에서는 믿음의 역사가 끊어질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써 소중한 개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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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중이 2019.08.11 20:11
    이번 노 재팬 운동을 통하여 그간 조명 받지 못했던 한일 간의 불평등한, 불합리한, 부정확한, 불확실한, 부자연스러운 모든 것들이 명확해지고 정의롭게 자리 매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설 때 양국간의 진정한 평화와 화해 그리고 치유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터질 것이 그리고 터져야 할 것이 터진 것이라 여기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느끼며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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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2019.08.19 09:18
    저도 이번 사건들을 통해 한국이 경제적 주권을 확립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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