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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이끌지 못하는 삶 (7월 14일 설교)

(디모데후서 2: 20, 21)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그는 주인이 온갖 좋은 일에 요긴하게 쓰는 성별된 귀한 그릇이 될 것입니다.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2: 13~15)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을 하거나 다투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은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사람이 되어 이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하느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십시오.

 

1. 스파게티 소스 이야기

실험심리학자이자 시장조사기술 분야의 선구자로 불리는 하워드 모스코비츠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이 초창기에 의뢰를 받았던 일 중 다이어트 펩시의 당도를 결정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의 선호가 몰리는 8%와 12% 사이에서 최상의 비율을 찾아내는 임무였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실험했을까요? 8%에서 12%사이의 다양한 시제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고 선호도를 수치화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하워드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실험하면 종 모양의 그래프가 나타날 거라 생각했습니다. 중간 어디쯤에서 최고의 황금비율이 나타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를 보니 데이터 값이 일정하지 않고 들쭉날쭉했습니다. 시장조사를 통해 정확한 황금비율을 찾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펩시에서는 그냥 8%와 12%의 중간 값인 10%로 정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워드는 이 결과에 대해 더욱 근원적인 고민을 했습니다. 그의 결론은 가장 이상적인 하나의 맛, 황금비율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매우 보수적인 식품업계에서 다양성에 대한 성찰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펩시를 통한 깨달음을 가지고 다음 프로젝트인 스파게티 소스 시장조사를 맡았습니다. 미국에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처럼 스파게티 소스 분야에도 프레고와 라구라는 대표적인 라이벌 회사가 있습니다. 하워드가 의뢰를 받은 회사는 프레고입니다. 프레고는 우리도 잘 아는 캠벨 수프의 자회사입니다. 의뢰를 받았던 1980년대에는 프레고가 라구에게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는 라구보다 높은 품질의 스파게티 소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것이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다 보니 경영진은 초조했습니다. 그리고 하워드에게 매출증진을 위한 시장조사를 맡긴 것입니다.

하워드는 펩시때처럼 스파게티 소스의 황금비율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회사인 캠벨 수프에 소속된 요리사들을 총동원해서 만들 수 있는 한 최대한 다양한 스파게티 소스를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45종류의 스파게티 소스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전국적으로 장기간 테스트를 해서 방대한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하워드는 이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해서 미국 사람들이 크게 세가지의 맛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첫째 단순한 맛(mild), 둘째 진한 맛(spicy), 셋째 덩어리진 소스(chunky)가 그것입니다. 이 조사를 토대로 프레고는 세 그룹으로 맛을 나누어서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과육이 씹히는 덩어리진 전 소스는 1980년 초 이전에는 그로서리 마켓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 어떤 토마스 소스를 좋아하는지 물어도 덩어리진 소스를 좋아한다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미국인의 3분의 1이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취향을 찾은 것입니다. 이후 덩어리진 소스는 10년동안 60억불을 벌어들였습니다.

프레고의 반격에 라구도 긴장했습니다. 똑같이 하워드를 고용해서 시장조사를 한 후 36가지 맛의 소스를 시판합니다. 오늘날 그로서리 마켓에 가면 매우 다양한 스파게티 소스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하워드의 통찰 덕분입니다. 이런 파급력은 스파게티 소스뿐만 아니라 다른 제품군에서도 다양화를 추구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음식 맛의 기준에도 보수와 진보가 존재합니다. 보수일수록 보편적인 맛있는 맛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준에 가까울수록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진보적인 쪽일수록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맛이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양극단을 제외한 다양한 스펙트럼이 공존한다고 생각합니다.

 

2. 흑백TV와 컬러TV

이것은 단순히 맛의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잘 사는 것, 바르게 사는 것에는 다양성의 차원과 보편적인 차원이 모두 공존합니다. 저는 이럴 때 자주 드는 예가 있습니다. 흑백TV는 흑과 백이라는 양극단이 있고 그 사이에 음영의 차이만 있습니다. 하나의 기준으로 검은색에 가까운가 흰색에 가까운가 판별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컬러TV는 보다 복잡합니다. 컬러TV는 다양한 색깔이 있습니다. 다양한 색깔들이 어우러져 화면을 보다 생생하게 만듭니다. 다양한 색깔은 하나의 기준이 없습니다. 저마다의 위치와 자리에서 조화를 이룹니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색깔 안에는 음영도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한때 흑백TV 시대를 살았습니다. 선과 악, 북한과 남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좌익과 우익, 진보와 보수 등 선명하게 이분법으로 구분된 사회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어느 한쪽을 이상이라 생각하고 목적을 그곳에 두고는 앞만보고 내달리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오래전 수렵채집의 시대에는 이와 같이 이분법과 목적론적 삶의 방식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수렵채집으로 살아가는 원시부족들을 보면 이런 사고방식이 없습니다. 농경사회가 되면서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그로 인해 계급이 생기고, 전쟁과 분쟁이 생기면서 이와 같은 사고방식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자본주의와 산업시대에 들어서서는 이분법과 목적론적 사고가 극을 달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시대정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고방식들이 기독교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3. 금그릇이 되기를 원하는 종교인들

오늘 본문을 한번 보겠습니다. 두 본문 모두 들어 보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첫번째 본문인 디모데 후서 2장의 그릇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이 있는데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인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정확히 어떤 그릇이 귀하게 쓰이는지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직관적으로 금그릇이 가장 귀하게 쓰이고 이후 순서대로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이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현실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그릇의 용도로는 금그릇과 은그릇은 무겁고 무릅니다. 오히려 나무그릇이 상대적으로 단단하고 가볍습니다. 질그릇은 단단하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가벼워서 쓰기 편합니다.

가만히 보면 제가 전에 잔디와 민들레에 대해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들의 가치 기준은 실용성 보다 사치재인가 아닌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치재는 희소성이 있는 것입니다. 용도보다 희소성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동의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희소한 광물이 있다더라도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교환가치가 생기지 않습니다. 반면에 실용성이 전혀 없는 것이라도 사회적인 동의가 있는 것이라면 교환가치가 큰 재화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에 따라서 돈처럼 교환가치가 큰 순서에 따라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수직으로 서열을 매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준을 따르지 않습니다. 금그릇이든 질그릇이든 상관없이 깨끗한 그릇을 귀하게 사용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깨끗하면 귀하게 쓰신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질그릇 같은 인생을 사는 나도 언젠가 금그릇으로 바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을 말로 옮긴다면 흙수저인 내 인생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금수저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되겠지요. 하지만 본문 어디서도 질그릇을 금그릇으로 바꾸신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또한 귀한 그릇이 금그릇이라는 말도 없습니다. 사회적인 가치와 틀이 자리잡은 우리의 생각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은혜로 질그릇이 금그릇이 되고,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었다는 식의 설교와 간증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욕망체계를 들여다보고 그것들이 믿음의 눈, 하나님의 지혜로 볼 때는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게 하기보다 그 욕망을 부추기고 이용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수직적인 계급구조가 생깁니다. 이후 산업시대, 자본주의 시대를 거쳐 왔지만 구조는 바뀌지 않고 내용만 바뀝니다. 왕과 백성, 귀족과 농노, 자본가와 노동자로 바뀌어 왔습니다. 항상 피라미드의 상층부를 이루는 특권층들은 소수이지만 많은 것을 누립니다. 바로 이들이 금그릇입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중세시대처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습니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으면 금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이 피라미드의 상층부로 올라가 특권층이 되기를 원합니다. 한국의 치열한 교육열은 그러한 욕망을 드러내는 증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목적을 위해 공부도 하고 일도 합니다. 신앙생활 조차도 금그릇이 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합니다. 금그릇이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이자 축복이며 훌륭한 믿음의 증거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앞의 본문이 그렇게 읽히는 것입니다.

 

4. 목적이 이끌지 못하는 삶

두번째 본문도 비슷한 오해를 받는 본문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그 사람의 마음에 그 일을 소원하는 마음을 주시고, 아울러 그 일을 감당할 만한 힘도 주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욕망의 늪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것을 거꾸로 해석합니다. 지금 자신이 소원하고 바라는 것이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에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소망을 이룰 힘도 하나님께서 주시고 이루게 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 소원이란 것이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금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든, 권력자가 되든 피라미드의 상층부로 올라가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는 소원은 그런 것이 아니라 흠 없는 자녀, 순결한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앞의 본문인 디모데 후서에서 깨끗한 그릇이 되라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는 것은 깨끗하고 순결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도덕적 결벽증을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깨끗하고 순결한 것은 사랑입니다. 미움과 다툼, 원망과 시기, 질투 등이 깨끗하지 못한 마음입니다. 이러한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자매와 형제들 사이에 원망이 일어나지 않고 시비에 휘말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혜롭고 어진 어머니가 있다면 그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리고 자매와 형제 간에 우애 있게 지내기를 바랄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대로 자연스럽게 살기를 바랄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실현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자식이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등장하는 두 드라마가 있습니다. 하나는 “SKY캐슬”이라는 드라마고 다른 하나는 “허준”이라는 드라마입니다. 스카이캐슬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들이 의사의 관문인 의대를 보내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쉼없이 몰아붙이기도 하고 불법을 자행하기도 합니다. 반면 허준에서 유도지의 아버지 유의태는 유도지가 내의원을 뽑는 과거에 합격하고 돌아왔는데도 아들을 나무랍니다. 과거를 보는 길에 역병이 걸려 괴로워하는 백성들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역병에 걸린 백성을 돌보느라 시험을 보지 못한 허준은 칭찬합니다. SKY캐슬의 부모는 자식이 의사가 되는 것 자체가 목적입니다. 금그릇이 되어서 특권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유의태는 자식이 의사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유의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 목적이며 그 수단으로 의원이 되는 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께서 소원하시는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단을 목적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욕망이 들어서면 아집이 생기고 아집은 목적을 위한 수단을 붙들어서 거짓목적으로 만듭니다.

장황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제목의 목적이 이끌지 못하는 삶이란 말은 목적이 무의미하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중심의 태도 속에 숨어 있는 우리의 그릇된 욕망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단이 거짓목적으로 둔갑해서 우리의 삶을 단조롭게 만드는 것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스파게티의 소스가 다양하 듯이 우리의 목적도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욕망에 덧씌워진 거짓목적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게 합니다. 양쪽 시선을 가린 경주마처럼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고 앞으로만 내달리게 합니다. 이러한 목적중심의 삶은 관계를 파괴합니다. 관계가 있어도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은 나를 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고유한 나와 고유한 타인이 만나서 나와 너로서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내가 온전한 내가 되고 우리가 사랑안에 우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목적이라 생각하는 것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요한의 문안인사로 마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그대의 영혼이 평안함과 같이, 그대에게 모든 일이 잘 되고, 그대가 건강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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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중이 2019.07.25 21:10
    참으로 의미 깊은 설교 말씀 입니다. 언젠가부터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목적이 수단에 불과한 것들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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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에르 2019.07.27 19:43
    의미 깊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대부분의 우상은 수단이나 과정이 목적으로 둔갑한 것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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