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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시편 131: 1~3) 주님, 이제 내가 교만한 마음을 버렸습니다. 오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 나서지 않으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합니다.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뗀 아이와 같습니다.

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히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라.

(요한 1서 4: 12, 13)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에베소서 4: 13~15)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요한 1서 1: 3)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욥기 42: 3, 5)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1.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

지난 주는 엔도 슈샤쿠의 소설 침묵을 통해 성도의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왜 침묵하시는가? 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엔도가 말하는 침묵은 하나님의 침묵 보다 죄책감 속에 살아가는 배교자들의 침묵을 더욱 주목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엔도는 오히려 배교를 앞둔 로드리고에게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밟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은 밟히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하십니다. 오히려 자신을 밟는 로드리고의 발을 걱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소설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지 하나님을 만나거나 본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지금까지 세상 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본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구절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모세는 하나님의 현현을 가장 많이 체험한 사람일 것입니다. 모세가 불붙은 가시떨기 나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가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제대로 본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호렙산에서도 모세가 하나님께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하자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면 죽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모세를 바위 사이에 세워 두고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가실 때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가리웠다가 그의 앞을 지나가고 나서야 그 손을 치우시는데 그러면 자신의 등은 볼 것인데 얼굴은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33: 21~23) 주님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너는 나의 옆에 있는 한 곳, 그 바위 위에 서 있어라.

나의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바위 틈에 집어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나의 손바닥으로 가리워 주겠다.

그 뒤에 내가 나의 손바닥을 거두리니, 네가 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도 하나님을 정면으로 본 사람이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사인을 통해 하나님의 현현을 체험한 것이 전부입니다. 모세가 그나마 많이 체험했다고 했지만 전 생애를 통틀어 몇 번 되지도 않습니다.

하물며 지금 우리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을 보았다는 사람은 사기꾼이라 생각해도 됩니다.

 

2.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으니 믿는 사람들은 불안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조롱합니다. 시편에서 사람들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사람들을 조롱합니다. 당시 바알신은 거대한 신전에 거대한 신상으로 위엄을 나타냅니다. 그리스 신전에 가면 올림푸스의 신들이 거대한 석상으로 만들어져서 위용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더더구나 그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불친절한 하나님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안 했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간 후 백성들은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광야에서 유리하던 백성은 자신들을 이끌어 내신 하나님도, 하나님의 종 모세도 보이지 않자 극도로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형 아론을 종용해 만든 것이 금신상입니다. 금신상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나니 사람들은 마음이 놓였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모세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보고 한심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으시니 저마다 자신의 편견과 욕망을 투영하여 우상을 만들고는 하나님이라고 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하나님은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시고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들은 벌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면서 말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은”, “내 기도의 응답으로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바로는” 전제를 붙여서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처럼 권위있는 말로 둔갑시킵니다.

요즘 한기총의 대표라는 목사의 발언을 보면 딱 이런 식입니다. 그의 발언들 몇 가지만 보겠습니다.

대선은 뭐 할 것 없어! 올 12월달 대선은 무조건 이명박이가 할 거니까! (아멘!) 왜냐면 장로님이니까! (아멘!) 만약에 여기서 이명박 안 찍는 사람은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청중 웃음) 생명책에서 안 지움을 당하려면 무조건~ 이명박 찍어야 돼. 아셨지? (아멘!) 알았지? (아멘!)

'박 전 대통령은 나라를 이슬람에 팔아먹어서 탄핵당했다 교회 로비에 모 정당원서가 있으니 서명하고 가라면서, 안 하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겠다

"메르스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메르스는 전부 강남에 있고, 내가 (강북으로) 못 올라오게 막고 있다. 모처럼 강북이 혜택을 받는다"고 했다. 이어 "모든 인간은 잠복기 100년짜리 죄의 메르스에 걸려 있어. 여러분은 이미 보균자야. 어차피 (언젠가는) 죽을 건데 왜 그렇게 난리야"

이 말을 들으면 하나님께서 이 목사에게만 특별히 놀라운 초능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생명책도 맡기신 것 같습니다. 이분 스스로도 거짓말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재로 그렇게 믿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서 신학교 다닐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어떤 교수님께서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학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처음 그말을 들었늘 때는 일정의 소명의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또한 미약하고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연구한다는 것이 오만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이끄시고 지혜주시는대로 공부하는 “하나님에 의한 신학”이 겸손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하나님에 의한 신학을 한다는 마음 때문에 독선과 아집에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의 신학은 하나님에 의한 신학임으로 틀릴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학문에서 오류나 반증을 받아들일 마음에 준비가 없다면 그 학문은 금세 훈고학이 되어버립니다. 답습만 있고 반성이 없습니다. 분열만 있고 연합이 없습니다. 다른 신학자 혹은 교단과 99가지가 맞아도 한가지가 다르면 서로 정죄하고 갈라서기에 바쁩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이란 곧 하나님과 다른 생각, 악하거나 어리석은 생각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직통으로 통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특별계시를 강조합니다. 흔히 하나님을 아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연(일반)계시, 다른 하나는 특별계시입니다. 자연계시는 인간의 양심, 삼라만상의 법칙성, 조화와 경이 느끼고 보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습니다. 일반 계시는 만인에게 열려있지만 그 깨달음이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며 막연할 수 있습니다.  

반면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구약과 신약 성경에 새겨진 활자라기보다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메시지가 곧 특별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주의 계열에서 특별계시를 특별히 강조합니다. (물론 계시에 대한 정의는 신학자들 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나 제가 보이게는 강조를 너머서 일반계시는 무시하고 특별계시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특별계시를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입법자가 되고 권위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 특권에 취해서 자신이 하나님처럼 군림하는 부작용도 생깁니다.

이렇게 거창한 말은 아니 라도 기독교 내에서 비슷한 말들을 종종 듣습니다. 제가 아는 한 청년은 같은 교회를 다니는 이성청년이 찾아와 자기가 기도를 하니 하나님께서 너와 결혼하라는 응답을 받았다면서 자신과 결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친구과 가깝게 지낸 적이 없던 청년으로서는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살면 자신의 생각과 말이 곧 하나님의 생각과 말이 되는 것이니 불안할 일이 없습니다. 다만 주변의 사람들이 괴롭습니다.

 

3. 자라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을 볼 수 없다 보니 생기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유한자가 무한자를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는가? 알려고 해봤자 헤맬 뿐이고 허송세월 할 뿐이다.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그냥 인정하고 겸손하게 살아라. 신학 공부 많이 해봤자 아무 소용없더라. 교회 열심히 다니고 기도 열심히 하고 목사님 말씀 잘 듣고 따르면 된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 신학을 많이 공부한다고 해서 영성이 충만해지지도 않는 것 같고 혼란만 더 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이 많아봤자 번뇌만 있을 뿐 해답도 없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질문만 생길 뿐입니다. 회의에 들기도 합니다. 단순하게 실천하며 사는 것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생각할 때 이런 반지성주의적 태도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중세의 면죄부 판매와 같은 행위가 용인될 수 있었던 것은 성경에 무지한 절대다수의 묻지마 복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저는 청년목회로 이름을 날리다가 성폭행과 추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한 목사의 설교가 기억이납니다. 물의를 일으키기 전만 하더라도 그는 새벽에 일어나 다독하는 것을 자랑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사건이 있고 본교회에서 나와 새교회를 설립한 후의 설교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반지성주의적 설교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목사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소박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들 목사가 가장 바라는 성도상입니다. 이런 신자들이 있어야 목회자는 제왕처럼 군림하며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정작 하나님은 무조건 충성하고 하나님에게 기대는 신자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을 다시 한번 곱씹어 봅시다. 이 본문은 시편 131편 2절에 나오는 한 대목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젖 뗀 아이가 아니라 젖먹이 아기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젖먹이 아기는 잠시도 어머니의 품을 떠나려 들지 않습니다. 자고 일어날때도 항상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관계는 일방적인 돌봄의 관계입니다. 젖먹이는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자신의 팔, 다리도 잘 가누지 못해서 스스로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손싸개를 하거나 수건으로 꽁꽁 싸맵니다. 요즘은 편리해져서 손발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옷 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돌봄이라는 일방적 관계보다 사귐이라는 상호적 관계가 가능할만큼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요한 1서에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사귐을 원하십니다.

 

4. 젖 땐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에베소서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까지 자라시기를 원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은 시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양자의 세계를 설명하는 책을 쓰면서 그 제목으로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라고 붙였습니다. 양자의 세계에 들어선 과학자들은 19세기의 과학자들과 비교해 겸손해졌습니다. 다차원, 다중우주까지 생각한다면 거시세계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넓고 광대합니다. 원자보다 작은 입자들의 미시세계는 고전역학에서 말하는 물리학의 법칙을 뛰어 넘습니다. 천재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피조세계도 우리가 아는 것은 정말 부분적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반지성주의로 쉽게 회귀해서는 안됩니다. 작은 발걸음이라도 쌓이고 쌓여서 진보를 이룩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에서도 우리는 쉽게 속단하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항상 조심스럽게 묻고 기도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젖먹이 아기처럼 마냥 안겨서 돌봄을 받고 떼쓰는 아기로만 평생을 지내서는 안됩니다. 또한 쉽게 속단해서 하나님이라 이름하는 우상을 만들어 섬겨서도 안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와 이성으로써 자연계시를 탐구하고, 기도와 말씀을 통해 영적인 성숙과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젖 뗀 아이가 어머니에 품에 스스로 안기듯 하나님과의 사귐 가운데 평안을 얻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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