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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사도행전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1. 진상과 허상

한국 게임 중 리니지라는 악명 높은 게임이 있습니다. 이 게임은 많은 사람을 게임폐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을 폐인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는 게임 아이템들이 비싼 값에 현거래가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유튜브에서 리니지 유저 랭킹 1위인 사람의 인터뷰를 본적이 있습니다. 무려 22년을 다른 일 없이 리니지를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가 가진 진명황의 집행검+8의 가격은 무려 3억원(약 33만불)이라고 합니다. 이 가격도 많이 떨어진 거고 잘나갈 때는 6억(66만불)이상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현피라는 일도 일어납니다. 현피란 말은 현실PK를 줄인 말인데 게이머가 다른 게이머를 직접 찾아가서 싸운다는 뜻입니다. 게임 중에서의 다툼이 현실 다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게임을 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재가 아닌 허상입니다. 게임 캐릭터나 아이템도 실재가 아닌 가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허상을 위해 사람이 많은 시간을 공들이고, 허상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끼고, 싸움까지 일어난다면 이것은 더 이상 허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 매트릭스는 많은 분들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알고 보니 인공지능이 만들어 놓은 가상세계라는 설정에서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인큐베이터 속에 갇혀서 인공지능이 뇌로 입력하는 가상현실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몇몇의 소수가 인큐베이터에서 탈출해서 시온이라는 지하 깊숙한 은신처에 숨어 있습니다. 이들은 인간들을 해방하기 위한 레지스탕스가 됩니다. 이 레지스탕스를 이끌고 있는 인물이 모피어스입니다. 모피어스가 주인공 레오를 처음 찾아 갔을 때 알약 두개를 내밉니다. 하나는 빨간색, 하나는 파란색입니다. 둘 줄 하나를 선택해서 먹어야 하는데 선택의 결과는 되돌이킬 수 없습니다. 빨간색은 혹독한 현실이 기다리는 진실의 알약이고, 파란색은 거짓이지만 현실을 잊고 지금처럼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약입니다. 물론 주인공 레오는 빨간색 물약을 선택함으로써 영화가 진행됩니다. 그런데 레지스탕스에서 배신자가 생깁니다. 싸이퍼라고 하는 인물인데 레지스탕스가 움직이는 경로를 노출해서 동료들을 죽게 합니다. 싸이퍼가 배신을 결심하고 매트릭스의 한 레스토랑에서 요원들을 만날 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이 스테이크가 가짜인 걸 안다. 이 스테이크를 입안에 넣으면 매트릭스는 내 뇌에 맛있다는 신호를 보내준다. 내가 9년만에 깨달은 것이 무엇인 줄 아나? “모르는 게 약이다.” 난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 다시 나를 인큐베이터에 넣어 달라. 그리고 매트릭스 세상에서 부자로 프로그램해 달라. 유명 인사로 만들어 달라.

이 영화와 같은 이야기는 이미 이 천년도 훨씬 전에 플라톤이 국가라는 책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동굴의 비유’라고 말합니다. 제가 작년 3월에 ‘페리아고게’라는 제목으로 설교할 때 말씀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이 비유를 보면 평생 진실이라 믿었던 것이 알고 보면 허상인 그림자에 불과하고 동굴 밖에 진리의 세상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시대에도 플라톤은 사람들이 허상을 쫓아 살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참 진리를 바라보고 깨닫는 사람은 소수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을 보면 무엇이 진상인지, 무엇이 허상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이 종교와 신은 진실이고 이 세상의 부귀영화는 허상일까요? 아마도 저기 금융권에 종사하는 한 무신론자에게는 돈이 진실이고, 종교나 신은 허상이라 말할 것입니다. 종교와 종교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믿는 신은 진상이고 네가 믿는 신은 허상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런 논쟁은 인간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2. 허상과 진상의 역전

(빌립보서 3: 8~10)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회심 후 한때 자신이 자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오물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태어나서 8일만에 할례를 받은 정통 유대인이며, 가말리엘의 제자이며, 로마 시민인 바울은 세상에서 자랑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알고 난 후로부터 이런 것들을 오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예수를 알기 전에 진상이었던 것이, 예수를 알고 난 이후에는 허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명예와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목매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회심의 경험이 있으십니까? 바울만큼 극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삶의 우선순위나 가치가 바뀐 경험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소중하다고 믿었던 것이 알보고니 허상이고, 허상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진상으로 나타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예수를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은 허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이 진상입니다.

그러나 세속화 시대를 사는 우리는 바울과 다른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속화 도시를 엄격하게 구분할 수 없습니다. 진상과 허상을 칼로 자르듯 반듯하게 양분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일부 신학자들은 바울을 비판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같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와 세속 나라, 영과 육의 이분법적인 구분이 나타나지 않는데 바울은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구도로 갈라 놓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바울의 신학을 계승하여 기독교 교리의 근간을 세운 아우구스티누스 또한 그의 신학에서 이분법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이 책상머리에서 머리로 만들어 낸 신학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와 역사적 고민속에서 나온 신학임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살던 시대의 고민을 이해한다면 그들의 신학도 이해하기가 편해집니다. 그리고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이 시대와 역사적 문제속에서 그들의 신학을 재해석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튼 실상과 허간을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이 둘에 대한 우리의 구분과 판단이 곧 우리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결정하는 것이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우리는 확실하고 기본적인 것부터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3. 소박한 진실에 대한 깨우침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함께 교제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기도에 힘썼습니다. 사도들의 이런 가르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당연히 그의 스승인 예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성경에도 식사자리가 많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도 우리가 잘 아는 ‘최후의 만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나서도 물고기를 구워 제자들을 먹이시는 일부터 하셨습니다. 흔히들 기독교는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분이라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아십니다. 흔히들 우리는 지금 시대의 관점으로 2000년 전의 성경 본문을 보다 보니 오해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서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불과 200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인구의 85%가 절대빈곤에 시달렸습니다. 흉년이 들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먹고 마시는 일이 지금처럼 쉽던 시절이 아닙니다. 비만을 걱정해야 하는 오늘과 다른 세상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도 일용할 양식을 간구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식사에는 허기를 채우는 것 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서로 교제하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지금처럼 음식이 흔하고 놀거리가 많은 시대에는 음식 없이도 교제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음식이 귀하던 시절에는 음식을 나누는 것이 매우 귀한 일이고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게 하는 것은 귀한 음식을 나눌 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음식을 나누며 제자들과 사귀었습니다.

반면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영지주의자들은 물질적인 것들을 하등한 것, 더 심하게는 악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앞에서 말한 플라톤의 영향이기도 한데요. 이들은 진상이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않고 변함없는 영적인 것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금욕적인 생활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실상 이들은 물질에 대한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플라톤을 비롯한 영지주의자들 대부분은 귀족들이고 잘 사는 사람들입니다. 먹고 사는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 먹고 입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와 닿지 않는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베푸실 때 사람들의 반응이 가장 열광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병이어의 이적은 모든 복음서에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육적인 필요에도 소홀하지 않으셨습니다. 더 나아가 육적인 필요가 영적인 차원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이 잠들어 있을 때 ‘마음은 있지만 육신이 연약하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육적인 필요가 부족하신 분이 얼마나 계세요? 최근에 정말 돈이 없어서 하루를 굶어 보신분이 여기 계십니까? 몸을 누일 곳이 없어서 길거리에서 떨며 주무신 분이 계십니까? 지난 겨울에 입을 옷이 없어서 추운 겨울에 낡은 옷을 입고 벌벌 떨어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이미 여러분께서는 예수님께서 간구하라고 하신 일용할 양식을 받은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허기지게 하는 것은 앞 단락에서 말씀드린 허상들 때문입니다. 허상을 쫓다 보니 먹어도 배고프고 입어도 춥습니다. 집 안에 있으면서 더욱 좋은 집을 상상합니다. 반면 오늘 우리에게 기도는 어느때보다 부족합니다. 육체적인 건강 이상으로 정신적이고 영적인 건강이 중요한만큼 바른 기도의 필요가 어느때보다 절실합니다. 물론 일부 교회에서는 여전히 기도를 많이 한다고 자랑들을 합니다. 대표적으로 명성교회는 새벽기도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속 빈 강정과 같은 기도들이 많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진리와의 소통입니다. 있는 것을 있는 것으로, 없는 것을 없는 것으로 깨닫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허상을 추구하는 기도가 많습니다. 허상과 진상을 바로 알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진리 안에 머무르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욕망을 채우는 기도가 많습니다. 기도는 많으나 참 기도가 적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허상을 더욱 실상으로 보이게 하고 허상을 추구하도록 부추기기도 합니다.

허상을 추구할수록 우리는 사랑에서 멀어집니다. 사랑은 나누고 교제하는 데 있습니다. 앞에서 예수와 제자들이 음식을 나누고 진리를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함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합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목숨을 건 희생, 구제, 정의를 위한 투쟁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먹고, 진리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오늘 우리도 함께 음식을 나누고 교제하며, 서로 기도하고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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