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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이냐, 부활이냐

(고린도전서 3:10~15)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가와 같이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 위에다가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집을 지을지 각각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이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습니다.

누가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으면,

그에 따라 각 사람의 업적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날이 그것을 환히 보여 줄 것입니다. 그것은 불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이 각 사람의 업적이 어떤 것인가를 검증하여 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만든 작품이 그대로 남으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요, 어떤 사람의 작품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불 속을 헤치고 나오듯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 31)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감히 단언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하신 그 일로 내가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입니다.

 

  1. 신발보다 중요한 것

저는 신발을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운동화를 특별히 좋아합니다. 허리를 다친 이후로 좋은 운동화에 대한 욕심이 커졌습니다. 허리를 다치고 난 이후는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질이 좋지 못한 신발을 신고 나면 반드시 다음날 허리가 아픕니다. 제 몸이 좋은 신발인지, 나쁜 신발인지 말을 해 줍니다. 그러다 보니 운동화에 대한 욕심이 많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발을 사야할 때가 아닌 데도 가끔 스포츠첵을 들려서 신발을 구경합니다. 어떤 브랜드에서 어떤 제품이 나왔는지, 어떤 제품을 세일하는지 살핍니다. 가끔 좋은 제품을 크게 세일하는 것을 보면 새 신발이 필요 없음에도 사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한참 살펴보다가 그냥 내려 놓고 나옵니다. 그리고 며칠 지나서 다시 갔을 때 세일이 끝나고 정상가격표가 붙어 있는 걸 보면 그때 샀어야 했나 하는 후회도 듭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릭 엘리아스가 겪은 경우가 된다더라도 신발이 생각 났을까요? 릭 엘리아스는 2009년 1월 15일 뉴욕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상 사이렌이 울리고 연기가 납니다. 맨 앞좌석에 있던 릭 엘리아스는 승무원들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승무원은 새떼와 충돌한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말고 침착하게 있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침착하라는 승무원의 눈빛이 이미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지금 릭이 탄 비행기는 3,000피트 상공에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불에 탄 엔진을 꺼버린 것입니다. 이제 비행기는 연기가 자욱한 두 날개만 의지한 채 떨어지고 있습니다. 릭은 “아,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이 무엇일까요? 비행기 사고로 지키지 못 할 약속일까요? 아니면 가지고 싶었으나 가지지 못한 물건, 집, 차가 떠올랐을까요? 저 같으면 그때 세일할 때 사지 못했던 운동화가 생각났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비행기에 경고음이 울리고 창 밖으로 연기가 자욱한 날개가 떨리는 것을 보며 릭은 꼭 하고 싶었지만 미뤄두었거나 하지못한 일들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할 꺼라 생각 했었는데 이제는 영원히 할 수 없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로 비행기의 엔진이 꺼지고 점점 고도가 떨어지면서 워싱턴 다리가 보일 때였습니다. 자신이 낭비했던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충분한 시간을 나누지 못했던 것들이 후회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상에 가까워 왔을 때입니다. 죽음이 코 앞에 닥쳐왔다고 느꼈습니다. 그때가 되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슬픔이 밀려와서 아이처럼 울었습니다. 한 달 뒤에 참석하기로 한 딸아이의 연주회를 참석하지 못하겠구나 생각하니 너무 슬펐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가족과 함께 행복해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언제나 함께 할 줄 알았던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제 함께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슬퍼졌습니다.

그러나 릭 엘리아스는 기적처럼 살았습니다. 이 비행기의 조종사가 그 유명한 체슬리 슐렌버거

였기 때문입니다. 체슬리는 엔진이 꺼진 기체를 뉴욕 허드슨 강 위로 무사히 불시착시켜서 모든 승무원과 승객들을 살렸습니다. 바로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사건입니다.

릭은 이후로 부인과 싸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딸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삶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죽음을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변화가 있습니다. 사소한 일에 집착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게 됩니다. 더욱 중요한 것들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삶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이 영원하지 않으며 한시적인 것들임을 깨닫고 소중히 여깁니다. 저는 이것도 부활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내세를 믿고 예수의 부활과 우리가 죽은 후의 부활도 믿습니다. 그러나 피상적인 예수 부활 사건과, 죽은 자의 부활이 현세를 바꾸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만 개인의 심리적 불안을 해소해 주고 죽음의 공포를 덜어주는 것에 일조는 합니다. 그러나 부활은 보다 넓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면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다시 태어나는 것도 부활입니다. 기존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도 부활입니다. 부활은 항상 죽음과 붙어 다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없었다면 부활도 없습니다.

 

  1. 부활이 아닌 불멸을 꿈꾸는 교회들

그러나 번영신학으로 무장한 현대 교회들은 부활이 아니라 불멸을 꿈꿉니다. 물론 말로는 부활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죽음 없는 부활만 이야기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죽음 없는 부활은 부활이 아닙니다. 죽음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부활은 불멸입니다. 영원히 건강하고, 영원히 부요하고, 영원히 잘 살고 싶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를 감내해야하는 부활보다 죽음을 제거하는 불멸에 대한 유혹이 큽니다. 그래서 번영신학을 기반으로한 교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면 불멸할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번영신학의 대표주자 조엘 오스틴은 평생 십자가에 대한 설교를 하지 않기로 유명합니다. 죄, 죽음, 고통과 같은 단어는 그의 설교집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 신학자는 그의 신학을 솜사탕 복음이라 말합니다. 그의 설교는 하나님도 쿨하고, 당신도 쿨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성경을 포춘 쿠키처럼 사용합니다. 그의 말만 듣고 순종하고 헌금하면 어느 순간 쿨한 하나님께서 로또같은 축복을 내려주실 것이라 말합니다. 그 자신이 산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몇 년전 삼백만불짜리 집에 살다가 천만불이 넘는 집을 샀습니다. 비행기도 일등석만 탑니다. 그의 부인이자 레이크우드 교회 공동목회자인 빅토리아 오스틴은 승무원을 폭행하고 조종실에 난입하려고해서 삼천불의 벌금을 내고 피해승무원과 소송중입니다. 그는 일만 육천 팔백석의 교회당의 담임목사입니다. 제작년 그 지역에 허리케인이 덮쳤을 때 그는 위로의 메세지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구질구질한 이재민들이 교회를 더럽힐까봐 과감히 교회문은 닫아버렸습니다. 그가 전하는 불멸의 신화를 쫓아 사람들이 모여들다보니 레이크우드 교회는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와 아주 닮은 교회가 한국에도 있습니다. 오히려 레이크우드 교회의 본이라 할 수 있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입니다. 그들의 번영은 영원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 이래로 불멸을 꿈 꾼 사람은 많아도 이룬 사람은 없습니다. 중국을 통일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시황제도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불멸을 노래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외면하려 듭니다. 현세의 축복와 내세의 구원만 강조합니다. 이런 허약한 약속들은 시련이 다가오면 무너집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불의 시험이 다가오면 다 타버리고 재만 남습니다. 죽음이 눈 앞에 오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것들이 속절없이 사라질 때 그 절망은 더욱 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을 시작하시기전 광야에 계실 때 세 가지 시험을 받았습니다. 사탄이 속삭이는 세 가지 유혹은 돌을 떡덩이로 바꾸는 것,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것, 자신에게 절하면 모든 부귀영화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불멸의 신화에 대한 유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조엘 오스틴의 속삭임과도 유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물리치셨습니다.

참 기독교는 불멸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죽음만 말하지도 않습니다. 죽음과 부활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참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인은 죽음을 준비하고 맞아들이면서도 부활의 소망아래 사는 사람들입니다. 크게는 우리의 인생 전체가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맞이합니다. 사소하게는 매일의 만남들, 사건들에서도 날마다 죽고 날마다 새롭게 부활하는 것이 기독교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합니다. 날마다 죽는 만큼 날마다 부활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최악의 절망에도 최고의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죽음을 부인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겪어내지만 다시 살아나는 소망이 기독교인에게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의 옛사람이 죽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으면 합니다. 그리고 새사람으로 부활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렇게 매주일마다 죽고 새롭게 사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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