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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연인들

 

(요한계시록 2:2-4) 나는 네가 한 일과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 나는, 네가 악한 자들을 참고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과,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 낸 것도, 알고 있다. 너는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견디어 냈으며, 낙심한 적이 없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다.

 

90년대에 한참 유명했던 015B라는 그룹이 부른 노래 중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가 이렇습니다.

1절: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를 묻곤 하지 가끔씩은 사랑한단 말로 서로에게 위로하겠지만 그런 것도 예전에 가졌던 두근거림은 아니야

2절: 주말이 되면 습관적으로 약속을 하고 서로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을 하지 가끔씩은 서로의 눈 피해 다른 사람 만나기도 하고 자연스레 이별할 핑계를 찾으려 할 때도 있지

후렴: 처음에 만난 그 느낌 그 설레임을 찾는다면 우리가 느낀 싫증은 이젠 없을 거야.

 

1. 뜨거웠던 에베소교회

최근 요한계시록 2장에 나오는 에베소교회에 대해 읽으면서 이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교회가 에베소교회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초대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이곳에 들러 처음 전도를 하였습니다. 바울이 에베소를 처음 들렀을 때 아볼로라는 사람이 세례 요한의 세례와 말씀을 전하고 난 이후입니다. 아볼로의 선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입니다. 이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를 따라 고린도로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바울을 처음 만납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데리고 에베소에 들러 복음을 전하고 유대인들과 변론을 합니다. 그러나 다음을 기약하고 오래지 않아 떠납니다.

3차 전도여행 때 다시 에베소를 들릅니다. 이미 고린도에서 아볼로에게 예수와 성령에 대해 가르쳤던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에게도 예수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안수를 통해 성령의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두란노서원에서 2년 3개월을 밤과 낮으로 쉬지 않고 눈물로 가르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교회에서 바울이 머문 기간이 1년 6개월로 에베소교회보다 짧습니다. 바울이 전도 여행을 하며 가장 오랜 기간 정성을 쏟은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결실로 에베소교회에는 쟁쟁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아볼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디모데, 오네시모 등이 에베소교회 출신들입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남다르게 사랑했다는 것은 다음의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3차 전도여행에서 돌아 올 때 예루살렘에 급히 돌아가기 위해 에베소를 들르지 못하고 밀레도라 도시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전도여행에서 에베소교회가 걱정 되었던 바울은 밀레도로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거기서 유언과 같은 말을 합니다.

“보십시오.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내게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성령이 내게 일러주시는 것뿐인데, 어느 도시에서든지,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하기만 하면, 나는 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 나라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여러분 모두가 내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 21~25)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잘 살피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을 양 떼 가운데에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28)

그러므로 여러분은 깨어 있어서,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눈물로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31)

나는 이제 하나님과 그의 은혜로운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을 튼튼히 세울 수 있고, 거룩하게 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유업을 차지하게 할 수 있습니다. (32)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목을 끌어 안고 울고 서로 입을 맞췄습니다. 에베소교회 장로들은 바울이 배를 타는 곳까지 배웅했습니다.

 

2.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교회

이와 같이 뜨거운 열정과 사랑으로 세워진 교회가 에베소교회입니다. 바울이 죽고 난 후 오래 전부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에 살고 있었던 사도 요한이 에베소의 감독을 맡게 됩니다. 그러다가 95년경 도미티안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 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요한계시록을 씁니다. 바울의 전도 이후 에베소 교회가 발전하던 시기가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이 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기록되던 95~100년 사이는 약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습니다. 1세대의 신앙인들은 늙거나 죽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디모데는 순교했습니다. 다른 초기 지도자들의 행적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시기에 요한은 에베소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랑을 버렸다는 말은 소홀해졌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 받을 만한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던 것이라기보다 점점 교회와 신앙에 소홀해져 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열정과 사랑은 왜 오래가지 못할 까요? 위의 노랫말을 이렇게 바꾸면 교회에 그대로 적용이 될 것입니다.

1절: 주일이 되면 의무감으로 교회를 가고 관심도 없는 교인의 안부를 묻곤 하지 가끔씩은 사랑한단 말로 서로에게 위로하겠지만 그런 것도 예전에 가졌던 두근거림은 아니야

2절: 주일이 되면 습관적으로 예배를 보고 교회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을 하지 가끔씩은 핑계 둘러 대고 교회예배 빠지기도 하고 자연스레 이별할 핑계를 찾으려 할 때 도 있지

이런 고민은 모든 성도들의 고민이기도 하고, 사역자들의 고민이기도 할 것입니다. 왜 우리의 열정과 사랑은 오래가지 못할까?

 

3. 회복인가 갱신인가

첫째로는 육체를 가진 인간의 본능과 한계 때문일 것입니다. 몸이 있는 인간으로써 우리는 무한히 집중하고 정열을 쏟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라 느끼는 감정 또한 마찬가집니다. 일전에 사랑에 대해 설교할 때 사랑은 감정만이 아니라 말씀 드린 적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만 놓고 본다면 노래 가사처럼 처음에 만난 그 느낌, 그 설렘을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종교적 체험도 이런 연애의 체험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는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모릅니다. 내 생명을 다 바쳐서 주님을 사랑할 것 같습니다. 찬양을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나고 환희에 벅차 오릅니다. 저와 여기 함께 있는 친구 이진식 목사, 그리고 같은 교회를 다녔던 다른 친구 셋이서 재수시절 참 열정적이었습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은 현재와 달리 열정적이던 시절을 기억하실 것 입니다. 그리고 그 열정이 오래가지 않음도 아실 것입니다.

교회와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열심과 열정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교인들의 열정이 식으면 헌금도 줄어들고, 봉사도 줄고, 교인 출석수도 줍니다. 목회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합니다. 철마다 행사가 끊임 없습니다. 수련회, 부흥회, 특별새벽기도, 철야기도 등 교인들의 열정을 북돋을 프로그램들을 열심히 돌립니다. 그러나 이런 행사들의 약발도 그렇게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시로 행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부작용도 있는데 많은 행사와 프로그램에 지치고 피로해집니다.

둘째로 세계의 세속화를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첫째 문제는 누구나 생각하고 고민하는 문제지만 세속화의 문제는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1940년대에 활동했던 존 회퍼로부터 시작해서 전후에는 고가르텐, 1960년대의 미국에서는 하비콕스가 논의 했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현대 그리고 더더구나 캐나다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엄격한 기준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이 미덕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를 믿고 따르는 것에 제약이 없지만 나의 신앙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일과 세상의 일, 교회에서의 봉사와 세상에서의 봉사, 교회헌금과 자선단체 기부, 교회정의실현과, 세상정의실현, 교회 성도들의 사랑과 이웃공동체 안에서의 사랑의 경계가 모호해 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철저히 고수 했던 주일성수, 헌금, 예배의 의미도 점점 퇴색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양극단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한쪽 극단으로는 아미시 공동체처럼 현대사회와 담을 쌓고 형식과 전통을 고수 하는 것입니다. 다른 극단으로는 무교회주의, 사신신학자들처럼 교회에서 떠나 사회 정의 실현을 신앙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양극단의 스펙트럼 사이에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합니다. 저 또한 무엇이 지혜로운 해답인지 모릅니다. 지금도 고민하고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의식적으로 이런 고민을 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일상에서 부딪히는 일이며 고민입니다. 아마 평생 동안 정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고민하고 찾는 노력의 여정입니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은 고민하고 찾는 노력의 여정조차 없습니다. 아니면 쉽게 자신에게 편리하고 유리한 쪽으로 합리화 하는 것도 문제 입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개인의 고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독공동체의 고민으로 함께 나누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 주는 세속화, 그리고 세속시대의 기독교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눌 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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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중이 2019.03.25 20:50
    우리가 처음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근신하는 삼가하는 인내하는 마음 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중용의 도라고 일컬으면 너무 거창해 보이겠지만 너무 들뜨지 않고 또한 너무 침잠되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성도들과의 교제를 나누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 늘 잊지 않으려 하지만 때때로 망각하고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아서 늘 스스로를 채근해 봅니다. 오랜 세월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아직 완전히 체득되거나 고쳐지지 않은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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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에르 2019.03.27 21:21
    오랜 세월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쉽게 바뀌지 않고 성장이 더딘 것이 모든 사람의 고민일꺼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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