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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2 11:41

[설교요약] 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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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세계

(야고보서 3: 1~12) 우리는 다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말을 부리려면, 그 입에 재갈을 물립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말의 온 몸을 끌고 다닙니다.

보십시오. 배도 그렇습니다. 배가 아무리 커도, 또 거센 바람에 밀려도, 매우 작은 키로 조종하여, 사공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끌고 갑니다.

이와 같이, 혀도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랑을 합니다. 보십시오, 아주 작은 불이 굉장히 큰 숲을 태웁니다.

그런데 혀는 불이요, 혀는 불의의 세계입니다. 혀는 우리 몸의 한 지체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며,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 결국에는 혀도 게헨나의 불에 타버립니다.

들짐승과 새와 기는 짐승과 바다의 생물들은 어떤 종류든지 모두 사람이 길들이고 있으며 길들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혀는 겉잡을 수 없는 악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또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샘이 한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을 낼 수 있겠습니까?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짠 샘은 단 물을 낼 수 없습니다.

1. 언어는 존재의 집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나쁜 말 듣기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나 사랑스런 말, 격려의 말, 칭찬의 말, 위로의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은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큰 강점을 가집니다. 그러다 보니 처세에 관련된 책들을 보면 말 잘하는 기술에 대한 책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호감을 얻는가?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여기 캐나다에서도 말 잘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제 와이프가 학교에 처음 갔을 때 반복적으로 자주 듣고 배운 것이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는가?” 였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학교에서 교수님들이 질문할 때나 과제로 제출한 페이퍼에는 언제나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말만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점을 모른 척 넘어갔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디가 잘못 됐어.” “말이 안돼”, “형편 없어.”라는 말보다 “내 생각에는 이런 점들에 대해 좀 더 생각하면 훨씬 좋은 글이 되겠다.”, “이 부분은 정말 인상적이구나. 이 부분을 보다 강조했으면 좋겠어” 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긍정적이고 예쁜 말들은 상대방이 기분 좋게 자신의 단점을 깨닫고 수정할 수 있도록 합니다. 상대방의 자존감을 건드리지 않고도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해 냅니다.

그러나 예쁘기만 한 말은 힘이 없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사역할 때 참 대하기 어려운 청년이 한 명 있었습니다. 언제나 생글생글 웃고 예쁜 말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쁜 말처럼 행동이 따라 주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일이나 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한다거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번도 한적이 없습니다. “항상 참 좋은 행사인 것 같다, 참석하도록 노력하겠다” 라고 말은 하는데 거의 참석하지를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Yes는 할 줄 아는데 No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청년이 어떤 긍정적인 말을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항상 저 말이 진심인지, 싫은데 형식적으로 하는 인사치레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속을 알 수가 없습니다. 좋은 말과 웃는 얼굴 뒤에 진심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청년을 보더라도 예쁘기만 한 말은 힘이 없습니다. 그 사람과 말이 따로 놀기 때문입니다. 입으로 하는 말과 몸이 하는 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고 말합니다. 언어는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 이상입니다. 존재가 언어를 통해 드러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 즉 모든 존재가 말씀이 아니고서는 생겨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크 라캉이라는 심리학자이자 철학자는 언어 구조가 곧 존재의 구조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언어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한 개인 뿐만 아니라 공통된 언어를 쓰는 민족이나 국가에게도 적용됩니다.

 

2. 말의 역사

말의 세계에는 다양한 개인과 국가, 민족을 이루는 횡적 세계도 있지만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종적이며 역사적인 세계도 있습니다.

역사적인 언어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예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많은 기혼여성들이 속아서 결혼 했다고 합니다. 연애 할 때는 지금과 너무 달랐다고 말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사랑에 빠지면 다양한 뇌에서 다양한 호르몬들이 나옵니다. 남성답게 하는 테스토스테론, 행복한 느낌을 주는 엔도르핀, 몽환적으로 만드는 페닐 에틸 아민, 그리고 마약과 같은 도파민이 나옵니다. 특히 도파민은 마치 코카인에 취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제 정신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호르몬은 우리의 언어를 담당하는 뇌에도 자극을 줘서 언어체계를 바꿉니다. 한 마디로 예쁜 말, 멋진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 사람을 유혹하는 말이라면 거짓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언어체계가 바뀌면 행동체계도 바뀝니다. 그 사람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작은 편의를 위해 큰 불편함도 감수합니다.

여자가 보기에는 이렇게 자상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재 남자가 호르몬에 취한 환각상태라는 걸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런 호르몬 작용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람은 어떤 환경이나 사람도 익숙해지면 예전처럼 호르몬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제 환각상태에서 풀려 난 사람은 연인에게 원래의 말과 행동을 합니다. 원래의 말과 행동은 곧 이 사람이 어릴 때 듣고 자란 어머니의 말, 아버지의 말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규제하고 통제하는 말을 많이 들은 아이는 커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규제와 통제의 말을 씁니다. 항상 지적당하고 잔소리를 많이 들은 아이는 커서 다른 사람에게도 지적하고 잔소리를 해댑니다. 이런 말의 습관은 익숙해진 연인에게도 고스란히 나옵니다. 이런 사람과 연애를 하다가 결혼한 여성은 결혼하고 사람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데 바뀐 것이 아니라 원래대로 돌아간 것일 뿐입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사랑에 빠진 남자의 말을 믿으면 안됩니다. 그의 말보다 그의 가정이 어떤 언어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 그 남자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3. 은혜의 역사

많은 사람들이 좋은 언어문화에서 자라지 못했을 것입니다. 폭언하는 아버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도 많습니다. 결국 이런 언어문화에 자란 사람들은 어느새 자신들의 언어도 부모와 닮아 있다는 걸 발견합니다. 아니 의식도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비관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가계에 저주라도 흐르는 것 같습니다. 역사적이고 종적인 언어세계뿐만 아니라 가족, 직장, 지역, 민족, 국가와 같은 동시대의 나를 포함한 공동체가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쁜 환경에서 자라도 좋은 언어습관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본문에서도 혀를 길들이기 어렵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말의 문제가 단순히 말 그 자체에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의 뿌리를 따라가면 우리 마음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말과 함께 우리의 마음까지 바꾸어야 가능합니다. 그래도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더더구나 그리스도인은 좋은 언어습관을 기르기 더욱 좋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를 옥죄는 죄의 사슬들, 나쁜 환경, 나쁜 유전을 벗어나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세례는 바로 우리가 새롭게 태어난 것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렇다면 새롭게 태어났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가치관과 세계관이 바뀌고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가치관과 세계관이 바뀌고 믿음의 사람이 되면 언어세계가 달라집니다. 물론 한 순간에 극적으로 바뀌기는 어렵습니다. 성화의 과정을 통해 점점 바뀌어 나갑니다.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언어세계는 단순히 종교적 언어를 많이 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형제님, 자매님이라 부르는 것으로만 형제와 자매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 등 성령의 열매가 말로 맺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언어세계입니다.

 

4. 은혜 가운데서도 유념해야 할 것들

<1>말에는 생명력이 있다.말을 하는 사람은 하고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말에는 생명력이 있어서 내 입에서 떨어져 나가고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심기어 자랍니다. 본문에서 작은 불이 온 몸을 불사른다고 말합니다. 말이 그러합니다. 우리의 말에는 권세와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선한 권세,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2>경우에 합당한 말이 있다.모든 상황에서 좋은 말은 없습니다. 좋은 말은 경우와 때에 합당한 말이 좋은 말입니다. 그래서 잠언에서는 경우에 합당한 말을 “아로 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라고 말합니다. 좋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경우와 때를 읽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상대에 따라 좋은 말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경우에 합당한 말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 계산해서 하는 아첨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처세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우리 존재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와 하나냐를 생각해보시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나냐는 시드기야 왕과 백성들에게 2년 안에 바벨론의 침공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예레미야는 바벨론에게 패망하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시드기야와 백성들은 하나냐의 달콤한 말을 믿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예레미야와 같은 직언이 경우에 합당한 말입니다.

<3>침묵이 항상 금은 아니다.우리 속담에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수한 정쟁 속에서 자기를 지키려면 말을 조심해야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시대의 말입니다. 어리석은 말보다는 침묵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그러나 침묵하는 것 보다 지혜로운 말이 더욱 값집니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비겁함이 될 수도 있습니다.

<4>솔직한 말, 객관적인 말을 조심해야 한다.우리는 흔히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고서는 “나는 너무 솔직한 게 흠이야.” “객관적으로 하는 말이야.” “그래도 난 뒤끝이 없어.”라고 말하는 경우를 봅니다. 독설을 하는 것은 솔직한 게 아닙니다. 그냥 못 된 것이죠. 그리고 자기는 객관적인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중심적인 사람입니다. 자기가 곧 객관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주관적으로 말할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내 생각은 ~이렇다.”라고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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