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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말씀은?        

(요한의 복음서 5: 39) 너희는 성서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들거니와 그 성서는 바로 나를 증언하고 있다.

(히브리서 4: 12, 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요한의 복음서 10:35) 이렇게 성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모두 신이라고 불렀다. 성경 말씀은 영원히 참되시다.

 

  1. 사랑과 자유

두 주 전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사랑의 방식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인으로 부르시고 자유롭게 관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문 밖에 서서 두드리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사랑의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자유만큼 중요한 것이 없지만 우리는 자유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자유에 대해 깊이 성찰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상 가장 자유로운 시대, 자유로운 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거에는 자유인 보다 노예나 종이 더 많았습니다. 여성과 아이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권리를 가진 소수 성인 남성에게만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성인남성도 왕 앞에서 자유롭지는 못했습니다.

그에 반해 오늘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은 역사상 어느 때 보다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 자유인일까요? 오래 전에는 신분적 노예, 육체적 노예들이 많았다면 오늘 자유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은 온건한 노예가 많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자유로우나 상징과 욕망 앞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본능과 쾌락 앞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본능과 쾌락 대로 사는 것에 해방감을 느끼고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유감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스스로 본능과 쾌락을 선택했다면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본능과 쾌락에 빠져 살다가 벗어나려고 하면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본능과 쾌락중동의 노예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사랑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 안에서 내 실존의 결단, 자유의 결단으로 주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의 종은 자유로운 종입니다. 자유로운 종은 매 순간 생각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1. 주의 종이 되기 위한 첫걸음

결론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없이는 주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말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종교개혁의 3대 모토 중 하나가 “솔라 스크립투라”입니다. 오직 말씀이란 말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오직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함을 말합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만져 지지도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사랑도 알아야 사랑합니다. 말씀이 하나님을 아는데 유일한 도구는 아니라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도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생긴 이래로 말씀을 금과옥조로 여기다보니 더하거나 빼거나 변형시키는 것을 매우 엄격하게 금해왔습니다. 그러한 전통은 지금까지도 다수의 보수교회에서는 여전히 내려옵니다. 축자영감설을 믿는 사람들은 성경에 담긴 한자 한자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집니다.

옛날에 몸이 아픈 사람이 성경을 달여먹고 나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즘도 어떤 교회는 신년이 되면 성경구절이 적혀 있는 종이쪽지를 뽑기도 합니다. 뽑은 말씀이 올 한해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꼭 일본 신사에 가면 동전을 놓고 운세 뽑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보수교회는 성경을 많이 읽는 편입니다. 성경 암송대회, 성경 일독, 성경 필사 등을 통해 성경을 가까이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진보교회는 어떤가요? 홈페이지에 나온 저희 교회 소개를 보면 “비판적 성서 이해”를 지향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비판적으로 성서를 읽고 계십니까? 지난 한 주, 아니면 올 한해라도 여러분께서 읽은 성경 중에 비판적으로 독해해서 음미하고 있는 구절이 있습니까?

저를 비롯해 우리를 돌아보면 비판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주변 목사님이나 신학자들의 비판적 성서 해석을 여기저기서 조금씩 듣다 보니 성경에 대한 애착 자체가 사라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보교회건 보수교회건 성경의 기반 위에 교회가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해석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잣대가 된다는 사실은 변함 없습니다. 말씀은 영의 양식입니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않고 하는 일마다 잘된다고 말합니다.

 

  1. 무엇이 말씀인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며 항상 묵상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말씀일까요? 먼저 좁게는 구약과 신약으로 이루어진 성서가 말씀입니다. 말씀에는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섰던 경험들이 녹아 있습니다. 또한 인생의 지혜와 위로가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삶의 규범과 가치를 설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이것이 말씀의 전부는 아닙니다.

넓은 의미로 본다면 로고스가 곧 말씀입니다. 로고스는 이법, 혹은 법칙을 뜻합니다. 우주만물의 법칙들도 로고스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물리학이나 수학도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사는 도리, 인륜도 로고스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원리와 인생의 원리를 주관하는 초월자에 대한 앎도 로고스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에는 로고스가 육신이 된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말씀의 본체가 하나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학문과 경험에는 말씀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말씀을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의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로의 말씀을 살펴 보았습니다. 대개 보수교회에서는 좁은 의미로써의 말씀에 집중하고, 진보교회에서는 넓은 의미의 말씀에 집중합니다. 그러다 보니 각각 집중하지 않는 쪽이 소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두 가지 모두 중요합니다. 보수신학자건 진보신학자건 여기의 이견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교회가 보다 소홀해 지기 쉬운 좁은 의미로써의 말씀을 좀 더 나눌까합니다.

 

  1. 말씀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우리 교회는 좁은 의미로써의 말씀, 즉 성경에 소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런 성경을 사람들은 어떻게 읽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할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지식적인 읽기가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성경구절, 사건, 인물, 숫자 등을 외우는 것입니다. 학생시절 수련회를 가면 성경구절을 외우고 암송해야 밥을 줍니다. 인간들 중 가장 오래살았다는 므두셀라가 969세까지 살았다는 내용들을 외웁니다. 십계명, 주기도문, 시편 등을 외웁니다. 이런것들을 잘 외우면 성경퀴즈 대회에 나가 상을 타기도 합니다. 대학원 입시에 치는 성경 고사도 이 수준입니다. 이 단계에서 고수가 되면 사복음서에서 같은 사건이 어떻게 다르게 기술되고 있는지, 신약에서 인용된 구약과 구약의 실재 본문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요한계시록이 어떻게 복층 구조로 이루어지는지 보다 구조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이 단계가 깊어지면 다음 단계로 쉽게 이행됩니다.

둘째는 해석적인 읽기입니다. 성경의 숨은 뜻, 어려운 예언서나 비유에 대한 해석과 의미를 깨닫고 배우는 것에 희열을 느낍니다. 그 동안 성경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나고 보입니다. 이 단계를 깊이 있게 공부한 사람들은 신학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그들이 몰랐던 세밀한 부분까지 지도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해박하고 깊은 지식에 탄복합니다.

 그러나 이 단계가 끝이 아닙니다.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이 단계에서 머무르면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단계에만 오래 머무르다 보면 예수님 당시의 율법학자들처럼 종교지식은 넘쳐나는데 정작 하나님을 모릅니다.

마지막 단계는 말씀 체화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말씀 한구절이 가치관과 삶을 변화시키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를 평생 겪어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 단계를 처음 경험할 때는 본문의 말씀처럼 날 산 검이 영과 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체험을 합니다.

어거스틴도 이와같은 체험을 했습니다. 그의 저서 고백록에는 그때의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죄의 노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참함 가운데 계속 부르짖었다...'왜 나의 추한 죄들을 끝나게 하지 않으십니까?' 나는 이렇게 자문했고 마음속에 가장 쓰라린 슬픔을 품고 줄곧 울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까운 집에서 나는 어린아이의 노랫소리를 들었다.'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 나는 홍수처럼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며 서 있었고, 이것이 성경을 펼쳐 나의 눈길이 닿는 첫 구절을 읽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성경을 펼쳤다. 그리고 시산이 닿는 첫 구절을 읽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나는 더 읽을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문장의 끝에 이르자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나의 마음 안에 넘쳐 들어오는 신앙의 빛 같았고 의심의 모든 어둠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체험은 꾸준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끝나면 안됩니다. 꾸준히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꾸준히 읽다보면 시편의 기자가 “금보다, 순금보다 더 탐스럽고, 꿀보다, 송이꿀보다 더 달콤하다.”(시편 19: 10) 라고 고백한 의미를 깨닫습니다. 이 때가 되면 성경은 더 이상 이천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나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됩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돈오점수라고 합니다. 꾸준히 읽는 중에 번뜩이는 깨달음이 온다는 것입니다.

비판적인 성경해석, 역사적인 성경해석, 구조적인 성경해석, 메시아 중심의 성경해석 다 좋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가 읽어도 이해되는 단순한 구절 하나가 내 마음과 삶을 변화시키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말씀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에 한 구절도 좋습니다. 우리 성도님 모두 말씀을 읽고 듣는 중에 신과 같이 되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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