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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면서 염려하지 않기

(누가복음 12: 29,30)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이런 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고린도후서 11: 26~29)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그 밖의 것은 제쳐놓고서라도,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염려가 날마다 내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넘어지면, 나도 애타지 않겠습니까?

 

  1.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근심하지도 말라고 합니다. 근심 걱정을 다 주께 맡겨버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겠다고 이미 말씀을 통해 약속하셨으니 믿기만 하라고 말합니다. 더 강하게 말하면 이미 평안이 우리에게 와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더 이상 근심이나 염려가 없을 것처럼 말합니다. 염려하고 근심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 치부되기도 합니다. 어떤 교계 지도자들은 정말 염려도 없고 근심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제나 돌처럼 단단한 얼굴을 하고 교인들에게 믿는 자가 되라고 외칩니다. 그런 분들은 가족이나 가까운 교인, 친구들이 어려움 중에 있어도 마음에 요동 없이 꿈쩍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염려와 근심이 정말 없을까요? 근심하고 염려하는 사람은 모두 믿음이 없는 사람들일까요?

 

  1. 사랑은 염려로부터

옛 속담에 우산장수와 부채장수를 둔 어머니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어머니는 맑은 날엔 우산장수 아들을 염려하고 비 오는 날엔 부채장수 아들을 염려하니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날마다 걱정하는 어머니를 보고 옆집 아주머니가 이렇게 조언을 합니다. “맑은 날은 부채장수 아들이 장사가 잘 될걸 생각하고, 비 오는 날은 우산장수 아들이 장사가 잘 될 걸 생각하면 되잖아요.” 이야기는 이 조언을 들은 어머니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요?

잘 되는 자식보다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식이 눈에 밟히기 마련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자식에 대한 염려는 끊이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과 성령께서도 근심한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실 때 마음이 근심과 번민이 싸여 있었다고 합니다.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 지 알지 못할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고 합니다.(롬8:26) 그래서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라는 구절(엡4:30)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도 자신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세상과 육체의 시련보다 교회라고 고백합니다. 날마다 교회에 대한 염려가 마음을 누른다고 고백합니다. 특히 말썽 많은 고린도교회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누구보다 강한 강철과 같은 신념과 의지를 가진 바울이 교회의 누군가가 약해지면 자기도 약해지고, 누군가가 넘어지면 애가 탄다고 고백합니다.

 

  1. 염려와 염려

그렇다면 성경은 왜 모순된 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에게 걱정 근심도 말고 염려하지 말라고 하고서는 정작 예수님과 성령은 근심하고 염려하는 것일까요? 성경을 자세히 보면 근심, 걱정, 염려 등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염려와 세상 일로 하는 염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염려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염려는 교회를 위한 염려, 선교를 위한 염려, 목회자를 위한 염려 등과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공적 사역을 위한 염려를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 세상 일로 하는 염려는 의식주에 대한 염려, 자녀나 배우자에 대한 염려, 세상 정치에 대한 염려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적이거나 공적인 것도 교회 외적인 것에 대한 염려입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먼저 세상 일로 하는 염려는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염려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돈에 대해 염려를 하더라도 개인의 허영과 욕망을 위한 것이라면 세상 일로 하는 욕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부양하고 먹이고 입히는 것 때문에 하는 염려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염려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간단하게 말하면 개인의 욕망과 이기심을 위해 하는 염려는 세상 일로 하는 염려입니다. 반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염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는 염려라고 생각합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탕자가 돌아오기를 노심초사 기다리며 하는 염려가 곧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는 염려입니다. 교회에 대한 염려를 하더라도 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는 염려는 아닙니다. 명성교회 세습에 분주한 김삼환 목사와 아들 김하나 목사는 교회 문제로 많은 염려가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저항 없이 순조롭게 부자세습을 할까 염려합니다. 교회를 두고 하는 염려지만 이런 염려는 세상 일로 하는 염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염려와 세상 일의 염려는 염려하는 대상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대상이라도 사랑으로 하는 염려냐 자기 이기심으로 하는 염려냐의 차이입니다.

 

  1. 염려하는 존재

지난 주 설교 [함부로 공감하지 않기]에서 사람은 섬과 같은 존재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개별적이고 고유한 존재들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고독한 존재입니다. 고독한 존재와 존재를 연결시켜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그 사람에게 마음을 기울여서 관심을 쏟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으로 하는 염려가 이런 것입니다. 세심하게 관심을 쏟는 것, 나의 마음이 사랑하는 대상에게 지향하고 있는 것이 곧 사랑입니다. 염려 즉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의 지향이 다리가 되어 섬과 섬을 연결합니다. 섬과 섬이 하나가 될 수 없지만 염려를 통한 사랑으로 다리를 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로, 사랑으로 염려 하면서도, 세상의 일로, 욕망으로 하는 염려를 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사랑으로 염려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염려하는 대상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웃이나 친구를 진심으로 염려하고 있습니까? 교회와 교우들을 염려하고 있습니까? 국가나 민족을 염려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반려동물을 염려하고 있습니까? 세심하게 염려하고 마음 쓰고 있는 것을 가만히 살펴 보시면 여러분이 사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딱히 염려하고 있는 것이 없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외롭고 고독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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