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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듯 춤추듯

(전도서7: 29, 8: 1)그렇다. 다만 내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평범하고 단순하게 만드셨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인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지혜는 사람의 얼굴을 밝게 하고 굳은 표정을 바꾸어 준다.

  1.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이 진리다.

과학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물체의 운동에 주목 했습니다. 모든 운동하는 것에는 운동을 하게끔 하는 원인이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렇게 운동을 하게 하는 원인을 따지고 따져서 올라가면 모든 것에 최초의 운동 원인이 나올 것입니다. 최초의 운동원인은 자신이 최초이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동의 원동자]라고 하는데 중세에서는 이러한 생각을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논리로 이용합니다.

그래서 가장 궁극적인 진리는 움직이지 않고 불변하며 영원한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은 2000년이 넘도록 강력하게 영향력을 미칩니다. 사람들은 불변하는 진리, 영원한 진리를 찾는 것을 인류의 목표처럼 생각하게 되죠.

이러한 생각은 우리의 우주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천동설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지구가 중심에 있고,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별이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운데 있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우주관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고대세계관.png

 

 

성경의우주관.jpg

 

그러나 16세기 말 갈릴레이의 자유낙하 실험을 기점으로 이러한 생각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뉴턴을 지나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이르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 진리가 됩니다. 모든 물체는 자유낙하 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냅니다. 오히려 움직이지 않는 것이 마찰력과 같은 힘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과학적 발견은 우리의 생각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앞에서 말한 바 있듯이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을 추구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진리라 생각합니다. 운동이 없는 것이 고상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죠. 그래서 서양전통에서 [존재]란 현상을 있게 하는 원인입니다. 현상은 운동하고 변하는 것이고 그 원인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는 운동하는 것이 진리 입니다.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태양도, 지구도, 달도 모든 사물과 인간, 인간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 하나 까지도 생성하고 변화하고 운동합니다. 점잖게 가부좌 틀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움직이고 춤추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태양계.mp4

  1. 모든 물체는 텅 비어 있다.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만약 세상에 멸망이 와서 몇 사람 밖에 살아 남지 못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제 얼마 살지 못하는 나와 몇 명의 아이들만 남았다고 가정하자.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단 한마디만 이야기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해줄까? 이제 과학의 모든 기반이 무너져 내리고 백지에서 시작할 아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 할까?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

원자구조.jpg

세상의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습니다. 이미 이천 수 백년 전에 데모크리토스라는 철학자가 예견 한 것입니다. 더 이상 나눠지지도 쪼개지지도 않는 최소의 단위가 원자입니다. 모든 사물은 원자의 구성물입니다. 원자가 듬성듬성 결합해 있으면 기체가 되고, 좀더 모이면 액체가 되고, 서로 촘촘히 붙어 있으면 고체가 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이 원자를 제대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원자의 크기는 머리카락 한가닥 굵기 안에 최소 10만개에서 100만개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만큼 작죠. 그런데 과학이 더 발전하고 보니 원자 안에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 있었습니다.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이 있고, 전자가 원자 핵을 돌고 있습니다. 보통 원자 구성 그림을 보면 원자핵과 전자가 가까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멉니다. 원자핵을 농구공 크기 정도로 확대해서 캘거리 중앙에 둔다고 가정하면 가장 가까이 도는 전자가 아마도 스토니 트레일 정도의 위치에서 돕니다. 가장 멀게 도는 것은 지구표면을 도는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원자 내부는 텅 비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텅 빈 원자들도 띄엄띄엄 연결 된 것이 물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물체들이 꽉 찼다고 느낄까요. 시각적으로 투명하게 보이지 않고 꽉 차 보입니다. 그것은 전자의 전자기력 때문입니다. 전자가 밀어내는 힘 때문에 가시광선도 통과 하지 못하고, 다른 것들도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는 거의 비어 있다시피 한데 꽉 차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몸은 꼭 우주와 비슷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원자들의 세계가 꼭 우주와 비슷합니다. 이것은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사물이 알고 보면 비어있고, 비어있는 것이 곧 사물인 것이지요. 그렇게 사물을 들여다 본다면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집착이나 아집에서 좀 더 자유로워 질 수 있지 않을까요?

 

  1. 필연의 세계에서 자유의 세계로

원자를 너머 전자까지 들어갔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원자의 세계와 우주의 세계를 같은 원리로 설명 된다고 보았습니다. 원자핵을 도는 전자는 태양을 도는 지구와 비슷한 것 같죠. 그러나 이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전자의 움직임이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규칙적이지 않습니다. 사실 모든 것이 필연적이고 규칙적이고 인과율에 따라 움직인다면 이 세상의 근원부터 지금까지 결정론, 예정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의 세계에서는 이런 결정론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입자로 있으면서 파동으로 움직이는 전자. 실험하기 전에는 파동으로 움직이다가 관찰을 할 때는 입자로 나타나는 전자의 움직임은 지금까지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없습니다. 전자 하나 하나의 움직임은 불확실하고 예측불가능 합니다. 어떤 과학자는 마치 의지가 있는 자유로운 존재와 같다고도 말했습니다. 수 많은 전자의 움직임들을 모아 보면 확률로 전자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열려 있습니다.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불확실한 것이 불안이 될 수도 있지만 자유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파동으로 움직이는 전자는 노래하고 춤추는 인간과 닮아 있습니다. 목소리는 파동으로 전파됩니다. 춤은 우리 신체의 파동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하나의 주체로 입자처럼 있습니다.

 

  1. 진리는 단순합니다.

진리는 단순합니다. 뉴턴은 자신의 이론을 F=ma라는 짧은 수식으로 표현했고, 아인슈타인은 E=mc2로 표현했습니다. 지엽적이거나 특수한 부분에서는 여러 가지로 복잡해집니다. 그러나 가장 근원으로 돌아가면 오히려 단순해집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더욱 복잡하게 했지만 예수님은 단순하게 설명하셨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입니다. 그래서 큰 진리는 배우거나 배우지 못했거나 어린이나 노인이나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보편적인 원리는 간단할 수 있습니다. 부분으로 들어갈수록 복잡해집니다. 성숙해질수록 부분적이고 특수한 것까지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가장 근원되는 단순하고 보편적인 진리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복잡한 식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본질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수식.jpg

 

이렇게 보면 진리는 춤추고 노래하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어린아이는 자유롭게 움직이고 변화합니다.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몸을 움직입니다. 유연합니다. 그리고 단순합니다. 우리가 어른이 되었어도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잃지 않아야 진리에 가까워 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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