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에 대한 침묵의 대가 (펌)

by Charley C. Park posted May 0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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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처음 나치가 등장했을때,

처음에 그들은 유태인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엔 사회주의자를 잡아갔습니다.

그때도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노동운동가들을 잡아갔습니다.

나는 이때도 역시 침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노동운동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톨릭교도들과 기독교인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내 이웃들이 잡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잡혀가는 것은

뭔가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내 친구들이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나는 침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가족들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내 주위에는 나를 위해

이야기해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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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명한 인용문의 주인은 독일의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마틴 니묄러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틴 니묄러의 생은 극과 극이었습니다.

목사와 평화운동가가 되기 전의 그는 1차 대전 때 독일 잠수함(U 보트)의 지휘자였고, 또한 한 때는 히틀러와 나치당의 지지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그가 나치의 교회문제 간섭으로 인해 반대 입장에 서게 됐습니다.

니묄러는 1931년 ‘목회자 긴급 동맹’을 결성하여 나치에 대한 저항에 나섰고 전국적으로 설교를 하러 다니던 중 1937년 비밀경찰에 체포됩니다. 나치 수용소로 보내진 그는 전쟁이 끝날 무렵까지 수감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종교인으로서의 그는 고백교회의 창설자이기도 하고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의장도 지냈습니다.

전후 평화운동가로서 활약한 그는 서독의 서구와의 군사 동맹에 강력히 반대했고, 핵무기 경쟁에 반대하며 세계적 화해와 군축을 위해 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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