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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호크마와 소피아

(잠언 3: 13~18)지혜를 찾는 사람은 복이 있고, 명철을 얻는 사람은 복이 있다.  참으로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황금을 얻는 것보다 더 유익하다.  지혜는 진주보다 더 값지고, 네가 갖고 싶어하는 그 어떤 것도 이것과 비교할 수 없다.  그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왼손에는 부귀영화가 있다.  지혜의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모든 길에는 평안이 있다.  지혜는, 그것을 얻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나무이니, 그것을 붙드는 사람은 복이 있다.

(요한2서 1:7)속이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야말로 속이는 자요, 그리스도 의 적대자입니다.

1. 레빈과 이반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에서 주인공 레빈이 풀을 베는 장면이 나옵니다. 책의 내용을 잠깐 보겠습니다.

“레빈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다. 만일 누군가가 그에게 몇 시간 동안이나 베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30분쯤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벌써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일에는 지금 그에게 커다란 기쁨을 가져다 주는 변화가 일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은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잊어 버렸다. 일이 쉬워졌다.

그러나 일단 그가 하고 있는 일을 의식하고 보다 잘 하려고 애쓰기 시작하기만 하면 그는 갑자기 일의 어려움을 느끼게 되고 두둑이 잘 깎이지 않는 것이었다.

낫이 저절로 풀을 베었다. 그것은 행복한 순간이었다. 레빈은 오랫동안 베어나감에 따라 더욱 더 무아지경의 순간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때에는 낫 그 자체가 생명으로 가득 찬 육체를 움직이고 있기라도 하듯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데도 일이 저절로 정확하고 정교하게 되어 갔다. 그런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소설 초반부에 레빈은 여러 가지로 부족한 청년이었습니다. 자신의 부인인 키티를 질투하기도 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보다 나은 삶, 진리에 다가가고자 하는 열정이 있던 사람입니다. 느리고 실수도 많지만 보다 나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레빈이 극적인 체험을 하는 순간이 바로 풀베는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귀족인 그는 농부들과 함께 풀을 베면서 참 행복과 기쁨을 체험합니다. 풀베기에 몰입하면서 시간은 순간처럼 흐릅니다. 자신에게 깊이 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평안과 행복을 느낍니다. 모든 일이 쉬워 집니다.

톨스토이는 노동을 통한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의 사상은 다른 소설에도 많이 등장합니다.

단편소설 바보 이반을 보면 권력을 가지고 있는 첫째 세묜과 돈을 가지고 있는 둘째 타라스는 결국 마귀의 꾐에 넘어가 망하고 말지만 농부이자 바보 이반은 마귀들이 유혹에 실패하게 됩니다. 바보 이반은 권력욕이나 물욕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몸을 통해 농사짓는 일에 열심입니다. 이들을 보면 지혜는 똑똑한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노동을 통해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호크마와 소피아

구약에 자주 나오는 ‘지혜’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호크마라고 합니다. 호크마의 형용사형이 ‘하캄’인데 하캄은 “지혜로운 자”라는 명사로도 쓰입니다. 오늘 읽은 잠언에 나오는 ‘지혜’도 호크마와 하캄을 사용합니다. 이 지혜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황금과 진주보다 가치 있다고 합니다. 지혜를 얻는 사람에게 장수과 부귀영화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즐거움과 평안이 있다고 합니다. 지혜를 얻는 사람은 생명 나무를 얻는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지혜만큼 좋은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지혜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성경에서는 하캄은 “지혜로운”이란 뜻뿐만 아니라 “솜씨 좋은”, “경험 많은”, “충실한”이란 뜻으로도 쓰입니다.  조금 전에 하캄이 명사형으로도 쓰인다고 했었죠. 성경에도 하캄을 명사형으로 쓰는 곳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먼저 다윗이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아 성전을 짓지 못하자 자신의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게 합니다. 다윗은 아들이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재료들과 뛰어난 건축술을 지니고 있는 장인들을 준비합니다. 이 장면이 역대상에 나오는데 여기서 나오는 장인을 “하캄”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예레미야에서는 자주색 모직과 자홍색 양모 옷을 만드는 기술자들을 하캄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에서도 장인을 하캄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에게 지혜로운 자는 곧 몸을 통해 뛰어난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장인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바울도, 예수도 모두 손으로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되면서 호크마가 소피아로 바꼈습니다. 호크마는 종교적, 정신적, 육체적 지혜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포괄하는 단어라고 한다면 소피아는 지적이고, 영적인 차원의 지혜에 더 가깝습니다.

호크마에서 소피아로 바뀌면서 몸의 지혜는 천시되고 영적 지혜가 진정한 지혜인 것처럼 생각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으며 결국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육체는 천하고 악한 취급을 받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기독교인들은 몸의 지혜보다 영적 지혜가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자신들만 신비하고 영적인 앍을 깨달아 알며 이런 영적 앎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영지주의자라고 합니다. 그리스어로는 그노시스라고 합니다.

3. 깊이 스며 있는 영지주의

이들은 육체를 제한적이고 악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예수님마저도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정합니다. 오늘 요한 2서의 경고는 이런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속이는 자”, “그리스도의 적대자”라고 공격하며 경계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영지주의자들의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몸으로 하는 일, 몸으로 익히는 기술, 먹고 사는 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천시하고 영적인 차원의 일, 지적으로 깨닫는 지식, 먹고 사는 것과 상관 없는 일, 신, 우주,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자 하는 일들만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들이 영지주의의 뿌리에서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예수, 역사적 예수보다 신적인 예수만 강조하는 것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영지주의의 전통입니다. 성직자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아는 탁월한 계급이라 생각하는 것도 영지주의의 영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일들을 하찮게 여기고 말씀의 진리, 기도의 신비만 강조하는 것도 영지주의의 영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계보다 지나치게 내세를 강조하는 것, 육신과 물리적 사물은 천시하면서 정신과 영은 고결하고 비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도 영지주의의 영향입니다.

오늘 교회는 영지주의의 나쁜 영향과 세속주의의 나쁜 영향이 교묘하게 섞여 있습니다. 헌금을 뜯어 낼 때는 영지주의적 설교를 합니다. 세상 것들이야 금새 사라지고 헛된 것들인데 육신의 영욕을 위하여 꽉 쥐고 있지 말고 선한 하나님의 사업, 즉 영적인 사업을 위해 바치라고 합니다. 반면 교회가 건물을 지어 임대업을 하고, 교인 머리 수에 따라 교회가 매매 되며, 일부 성직자들은 좋은 옷, 좋은 차, 좋은 음식들을 탐닉합니다. 교회봉사나 부교역자들에게는 영지주의식으로 접근합니다. 세상 돈, 물질 밝히지 말고 주님을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헌신 봉사할 것을 요구 합니다. 반면 소위 큰 목사들의 세속주의는 말도 못합니다. 이런 모순들이 교회를 망칩니다.

영지주의의 폐해를 알면서도 지금까지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힘든 세상을 맞부딪히지 않고 달아날 명분을 영지주의가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께서 세상을 피하지 않으시고 정면으로 부딪히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육신이 직접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과 죽음을 감내하셨다는 것입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수련뿐만 아니라 육적인 수련도 게을러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신적이고 지적인 탐구나 지혜가 나쁜 것이고 몸으로 익히는 것만이 바른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몸으로 배우는 지혜든, 머리로 배우는 지혜든 하나만 고집하고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영과 육이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저희 교회 성도님들 모두 영혼뿐만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는 지혜를 가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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