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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갱신

(누가복음 5: 36~39)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새 옷에서 한 조각을 떼어내서, 낡은 옷에다가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그 새 옷은 찢어져서 못 쓰게 되고, 또 새 옷에서 떼어낸 조각은 낡은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다가 넣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그 가죽 부대를 터뜨릴 것이며, 그래서 포도주는 쏟아지고 가죽 부대는 못 쓰게 될 것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새 포도주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묵은 포도주를 마신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한다."

(고린도후서 5: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1. 새 것은 항상 이상하다?

여기 있는 가은이, 가영이를 비롯에 많은 10대들이 방탄소년단을 좋아합니다. 한국뿐 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세대들이 그 노래를 들어보면 뭐가 좋은지 이해기 안간다고 합니다. 가사가 잘 들리지도 않고, 멜로디는 산만하고 비트는 지나치게 강합니다. 며칠전 이진식 목사는 오랜만에 변진섭의 새들처럼을 다시 들어보니 참 좋더라고 했습니다. 가사가 서정적이고 노래도 잘 부르고 멜로디도 좋습니다. 요즘 노래와 달리 말이죠. 제가 고등학교 때쯤 노래방이 인기를 끌기 시작 했습니다. 노래를 누구보다 좋아했던 저는 노래방에서 몇시간씩 노래를 불렀습니다. 신곡이 나오면 항상 노래방에서 불렀습니다.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방도 재미없을 때가 있는데 명절과 같은 때 어른들과 노래방을 가게 되는 경우입니다. 어른들이 부르는 노래는 얼마나 촌스러운지 모릅니다. 대체로 느리고 지루합니다. 이런 노래들을 듣고 있는것이 고역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생각했던 것이 있습니다. “난 나중에 나이가 들더라도 최신곡만 부르리라. 절대 옛날 노래만 듣고 부르는 촌스러운 어른이 되지 않으리라.”

수많은 결심과 다짐에도 저는 아이들에게 촌스러운 어른이 되어있습니다. 저도 여전히 제가 어릴 때 들었던 노래들이 지금 노래보다 더 좋게 느껴집니다. 시대가 바뀌고 문화 트랜드가 바뀌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현대 문화는 시대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것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합니다.

 

  1. 기독교 갱신과 개혁의 역사

먼저 아브라함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중근동 문명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입니다. 갈대아 우르 사람이라고 나와 있듯이 당시에 가장 큰 도시에 살던 사람입니다. 수메르의 수도였으며 고고학적으로 가장 큰 지구라트가 발견되기도 한 곳입니다. 이런 문명권에서 아버지를 따라 떠나와서 하란으로 다시 가나안으로 이주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근동의 대표되는 수메르 종교 속에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연고 없는 가나안으로 향합니다.

아브라함 이전은 타락의 역사였습니다. 선악과 사건 이후 죽음이 들어오고 에덴동산에서 쫓겨 났습니다. 가인을 통해 최초의 살인이 저질러 졌습니다. 바벨탑 사건을 통해 민족들의 언어가 나누어졌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멀어져 가는 역사가 이어지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성경의 역사가 바로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됩니다. 이것이 첫째 갱신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모세의 개혁을 들 수 있습니다. 한 가족, 부족의 야훼 하나님에서 한 민족, 창조주 하나님으로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모세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작은 부족이 아닙니다. 큰 민족을 이루고 있었고, 이집트를 떠나면서 새로운 국가건설을 눈 앞에 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 십계명과 율볍들, 제사제도, 민족의 역사 정리 등 다양한 개혁작업을 완수 했습니다. 가족의 신에서 민족의 신으로 인식을 전환하게 됩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의 개혁을 들 수 있습니다. 민족의 신에서 유일신으로 보편적 종교로 거듭나게 된 것이 이 때입니다. 바울 이후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더 이상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종교회의를 통해 오래도록 지켜온 전통을 혁파했습니다. 할례 문제와 정결법을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닌 사람에게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너무나 큰 변화여서 기존의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바울도 초창기에는 이 반대자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반대자였던 바울을 통해 개혁이 완수되게 됩니다.

넷째로 루터의 종교개혁을 들 수 있습니다. 앞서도 많은 종교개혁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던 1517년을 종교개혁의 원년으로 삼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종교지도자들의 특권을 타파하고 만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종교갱신 또는 개혁은 시대의 정신을 담아 새롭게 거듭나고 보다 보편적인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사회학적으로 볼 때 역사상 수많은 종교가 나고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담아 부지런히 개혁과 갱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갱신과 개혁의 중심에 있습니다. 언제나 개혁과 갱신에는 많은 도전이 뒤따릅니다. 구태 세력들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때는 본토와 친척과 아비가 구태였습니다. 모세 때는 친 이집트파 사람들이 구태였습니다. 예수와 바울 당시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때는 구교세력이 구태가 되었습니다.

 

  1. 새술은 새부대에

언제나 개혁이 있을 때 반대하고 나선 이들은 같은 종교 내의 권력자들입니다. 이들은 왜 선한 갱신과 개혁을 반대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크게 두 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의도적인 반대입니다. 변화는 새로운 권위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현재 종교 권위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은 변화나 개혁을 바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변화와 개혁은 곧 자신의 실각을 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개혁파들을 탄압하고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습니다.

둘째로는 순수한 반대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개혁을 나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들 일부 종교지도자들을 제외한 다수의 성도와 지도자들이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요구하고 있는 시대에도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노회한 종교지도자들의 마음이 돌처럼 굳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눈에는 변화가 보이지 않습니다. 심리학자들의 어떤 연구가 이러한 결과가 왜 일어났는지 잘 설명합니다.

그들에 따르면 기억에는 크게 세 가지 기억이 있다고 합니다. 절차기억, 학습기억, 신념기억이 그것입니다.

절차기억은 선험적인 기억입니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고도 아는 기억입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젖을 빠는 것처럼 생존을 위해 타고난 선천적인 기억입니다.

학습기억은 학습을 통해 후천적으로 알아가는 기억입니다. 학습기억을 통해 우리의 의식은 확장되고 성숙해집니다. 그래서 학습기억은 같은 것에 대해서도 재해석되고 바뀔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념기억은 학습기억이 더 이상 늘지 않고 망각으로 인해 감소할 경우 나타납니다. 신념기억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오래된 기억입니다. 이 기억은 설사 잘못된 기억이라 하더라도 쉽게 수정되지 않습니다. 고집스럽게 붙들고 놓지 않는 기억입니다. 이런 신념기억이 많아지면 꼰대가 됩니다. 태극기 시위의 노인들처럼 됩니다. 그리고 구태 종교지도자들처럼 됩니다. 저는 이들을 종교꼰대라 부르려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종교 꼰대가 등장합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사실 바리새인의 기원은 성경 중간기에 등장한 종교갱신 운동에서 시작됩니다. 이들은 관습과 형식에만 젖어있고 권력만 탐하는 구세력들을 비판하는 신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고 이들이 권력을 가지게 되자 이들 또한 종교 꼰대가 되버렸습니다.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은 두 가지 이유로 공격을 합니다.

첫째는, 요한과 그의 제자들이나 바리새인들처럼 금식하지 않는 것, 둘째는 세리와 같은 죄인들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재치 있게 이들의 힐난을 받아 넘기십니다. 첫째 비난에 대해서는 “신랑과 함께 결혼잔치에 참여한 손님들에게 금식하라고 할 수 있느냐, 어느 날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인데 그 때가 되면 금식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비난에 대해서는 “의사는 병자들에게 필요한 것이지 건강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계시키러 왔다.” 고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세 가지 비유를 드십니다.

  1. 새 옷을 잘라 헌 옷을 수리하지 않는다. 새 옷과 헌 옷 모두 못쓰게 되기 때문이다.
  2. 새 술을 헌 가죽부대에 넣지 않는다.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으면 터져버려서 새 술도 못쓰고 헌 부대도 못쓰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3. 묵은 포도주를 마신 사람들은 묵은 포도주가 좋다고 하고 새 포도주를 마시려고 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A와 b는 같은 의미를 가진 비유입니다. B가 다른 것은 해결책까지 이야기한다는 점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낡은 형식과 제도가 예수의 새 메시지를 담아내지 못할 것을 암시합니다. 결국 유대교에서 기독교는 분리되어 나옵니다. 새 메시지를 새 부대에 담은 것입니다.

C는 왜 사람들이 낡은 옷, 낡은 가죽부대와 같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묵은 포도주 즉 오래된 관습과 사고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새로운 학습기억은 없고 신념기억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1. 현대라는 새 술을 담기 위해 새 부대를 마련할 때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500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이 바꼈습니다. 성평등의 문제, 자연과 환경의 문제, 진화론과 과학발전의 문제 등 이제 더 이상 500년 전의 부대로 담아 낼 수 없는 문제들이 쌓이고 넘치는 상황입니다. 예전의 개혁세력들은 바리새인들처럼 다시 구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스스로 개혁주의, 개혁교회라고 하면서 개혁을 반대하는 꼰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500년 전에는 개혁이었지만 오늘에는 더 이상 개혁이 아닙니다. 다시 갱신하고 개혁해야 할 때입니다. 이것이 예수정신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 것이 됩니다. 새 것이 되면 이전 것은 지나갑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도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새사람이 됩니다. 그러한 성도들이 모여서 새 교회가 됩니다. 구태를 따르는 것은 더 이상 예수의 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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